'10월의 읽을 만한 책'(http://blog.aladin.co.kr/mramor/1604913)으로 올려놓은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 <생명의 편지>(사이언스북스, 2007)에 대한 자세한 리뷰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책은 아직 구입하지 못했는데 여유가 생기는 대로 그의 생태학 관련서들을 모아놓을 작정이다.

문화일보(07. 10. 12) 생명의 위기… 老과학자는 왜 종교에 도움 청했나

“나에게 우리 사이의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무엇보다 창조물(the creation)을 구원하고자 합니다. 살아 있는 대자연을 지키는 것은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그것은 어떤 종교적 또는 이념적 교의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 교의를 조장하지도 않습니다.”

통섭(統攝·consilience)의 사상가이자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의 창시자,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에드워드 윌슨(78·하버드대 생물학과 석좌교수)이 지난해 펴낸 책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 과정의 결과로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회생물학을 만든 윌슨은 이어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 지식의 대통합(통섭)을 주장하면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젊은 학자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을 만큼 현존 최고의 과학저술가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의 사상적 궤적에서 한 발 비켜나 있는 내용이다. 그는 돌연 생명의 위기를 소리높이 외치며 종교에 손을 내밀고 있다. 과학과 종교가 함께 나서야 할 급박한 위기라고 호소하고 있다. ‘과학의 힘’을 신봉하는 환원주의자인 윌슨이 마치 종말론의 기독교인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종교에 호소하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대과학자가 가진 생명 위기의 ‘절박감’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책은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교파인 남침례교 목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형식을 취한다. 종교적으로 근본주의자에게 호소하는 셈이다. 저자가 책의 원제목을 ‘THE CREATION’이라고 한 것도 기독교적으로 ‘피조물’의 의미와 겹치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왜 종교에 호소한 것일까. “그것은 종교와 과학이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과학이 생명의 보전을 위해 연대한다면 그 문제는 곧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에 손을 내민 것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어 보인다. 말 그대로 ‘현실적 힘’에 기대는 측면도 있고, 저자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바로 기독교가 ‘선택된’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과 그들의 터전을 정복하고 파헤치는 자본주의 이념의 배후라는 측면도 있다. 윌슨은, 현실적으로도 미국인의 60%가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을 믿으며, 단지 지구를 잠시 거주하는 곳 정도로 대한다고 근거를 들어 비판한다.

“이런 유형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생물 1000만종의 운명은 일말의 가치도 없습니다.(…)그것들은 절망과 무자비의 복음입니다. 그것들은 기독교의 본령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내가 틀렸다고 말해주세요!”

윌슨은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완전히 갈라진 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다시 손을 맞잡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옥스퍼드대 생물학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을 과학이 종교에 보낸 ‘외교문서’라고 평가했다.

윌슨은 지구환경의 위기를 절박하게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지구의 산소공장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열대우림의 70%가 파괴됐고, 담수 생태계 역시 80% 이상 파괴되면서 담수생물들의 무수한 멸종은 물론, 인류가 사용할 물도 거의 사라졌다. 지구상 동식물 종의 절반이 금세기 말이면 멸종을 맞거나 그럴 운명에 처할 것이며 4분의 1은 기후 변화만으로도 50년 이내에 멸종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멸종 속도는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 속도의 100배이며, 다음 수십 년 안에는 최소한 1000배는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윌슨은 “문명은 자연에 대한 반역을 통해 이룩됐다”며 이를 그만두고 ‘대자연을 향한 등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풀어야 할 3가지 난제로 제시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무지, 과학교육의 부실, 생물학의 급격한 발달이다. 환경에 대한 무지와 과학교육의 부실은 연관이 깊다. 그는 우리의 아이들은 자연주의자로 키워야 한다고 역설하며 그 구체적인 교육방식까지 설명한다. 과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자연주의자가 많이 육성되면 세번째 쟁점인 ‘생물학의 급격한 발달’로 인한 문제는 해소된다. 모든 사람이 과학적 활동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다보면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든다. 역시 과학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는 결론인데, 생명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상당부분 져야만 할 과학을 통해, 더 나아가 2세들의 과학교육을 통해 과연 생명의 위기가 해소될까. 여기서 과학적 환원주의자인 윌슨의 한계를 보는 듯도 하다.



실상 그의 ‘통섭 사상’도 동등하고 양방향적인 관점의, 말 그대로 ‘통섭’이 아니라, 일방향성의 환원적 통합이며, 여러 학문들 사이에는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 중심에는 항상 과학이, 물리가 놓여 있다. 결국 과학이 왕이고 다른 인문학은 모두 과학으로 ‘헤쳐모여’라는 식이다.

이번 책에서도 종교와 열어놓고 손을 내밀기보다는 결국 과학 우위라는 저의를 숨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생명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과학과 종교가 모두 한몫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시 씁쓸해지기도 한다. “현재의 우리는 종교와, 과학에 기초한 계몽 운동에서 비롯된 문명의 산물입니다”라고 윌슨은 ‘실토’하고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어쨌든 윌슨의 희망어린 제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노학자의 꿈과 열정에 큰 감동을 받을 만한 책이다.(엄주엽기자)

07.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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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16 16:28   좋아요 0 | URL
캬캬캬 저는 구해놓았지요!!

로쟈 2007-10-16 16:36   좋아요 0 | URL
저보단 형편이 좋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