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의 특집대담인데 김기봉, 박찬승 두 역사학 교수가 민족주의를 화두로 하여 나눈 것이다. 요 며칠 남북 정상회담이 국가적 이슈였는데, 남북 통일의 과제도 '민족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지역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인지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경향신문(07. 10. 05) "脫민족 공화주의로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민족주의는 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우파 쪽에서도 ‘민족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현실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막강하다. 외국인 거주자 100만명 시대에, 왜 우리는 아직도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것일까. 학계 쪽 얘기를 들어봤다. 탈민족주의 사관을 펴온 김기봉 경기대 교수(서양사)와 항일독립운동 및 정치사상을 전공한 박찬승 한양대 교수(한국사)가 27일 오후 경향신문사에서 대담을 가졌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적 정체성이 필요하다”면서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기봉 교수(왼쪽)과 박찬승 교수는 단일민족은 허구이며, 이제 민족의 틀을 넘어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두 교수가 지난달 27일 대담을 갖고 경향신문사 별관 1층 경향갤러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찬기자
박찬승 교수=지난 8월말로 한국 거주 외국인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습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의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한국사회의 다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김기봉 교수=유엔 권고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실은 다민족이었는데, 말로는 단일민족을 주장해온 거죠. 족보들에 따르면 많은 성씨의 시조가 중국에서 왔지만 우리는 모두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라고 가르칩니다. 공적 역사와 사적 역사가 불일치하는 모순이죠. 이는 민족이라는 ‘매트릭스’가 작동해왔기 때문입니다.
박찬승=학습의 효과이기도 합니다. 올해 발간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보면 “우리 민족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학생으로서 하등의 의심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죠. 역사책 가운데 단일민족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손진태 선생이 1948년에 쓴 ‘국사대요’입니다. 하지만 혈통은 씨족을 넘어가면 확인이 안됩니다. 고대의 부여, 삼한, 여진, 예맥 등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현재 민족을 형성했기 때문에 단일 민족이라는 표현은 사실로도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다민족국가가 되는 상황이어서 교과서 표현은 시급히 시정해야 합니다.
김기봉=우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걸까요, 한국인으로 되어지는 걸까요. 민족 개념 속에는 문화적, 선천적, 객관적인 종족이라는 뜻의 에스노스(ethnos)와 정치적 의미공동체라는 뜻의 네이션(nation) 두 가지가 있어요. 특히 네이션은 근대의 산물입니다. 민족에서 민족주의가 나온 게 아니라, 민족주의가 발명한 게 민족입니다. 그 공식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면 단일민족이란 건 말이 안되죠.
박찬승=한국에도 민족과 비슷한 개념은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아족류(我族類)’인데요. 왜족류나 여진족류와 구분할 때 썼는데, 에스노스 개념에 가깝습니다. 갑오개혁 이후엔 ‘2000만동포’ ‘조선동포’ 등에서 ‘동포’가 등장합니다. 이후 일제강점하에서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죠. 여기서 그 주체로 민족이 등장했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민족 내적인 통합이 필요했고 여기서 신분의식의 청산이 필요했어요. 서양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이 등장한 거죠.
김기봉=민족에서 ‘족’은 족류에서 왔을 것이고, ‘민’은 평등에서 왔을 겁니다. 전통의 근대적 변형이 이뤄진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라 일제시대를 통해 강박적으로 이뤄졌고, 또 한편으로 좌절됐습니다. 우리는 민족이라 하면 저항적으로 투쟁해야 된다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연결하는데, 이게 민족 개념이 굴절된 계기입니다. 이제 와서 자신감을 좀 갖게 되니까 그 불일치가 부각되는 거죠.
박찬승=한국 민족주의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식민지배에 저항해 국권을 지키고,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동원될 필요가 있었죠.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남녀평등이나 소수자의 문제는 억압됐습니다.
김기봉=세계화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린민족주의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으로서 탈민족주의적인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반민족주의와는 다릅니다. 봉건적 신분질서의 위계적인 인간관계를 깨고 주권이 민에게 있다는 의식을 확립한 해방적 측면은 민족주의의 빛나는 기능입니다. 하지만 그게 악마적 속성을 갖게 된 것은 정치적 민족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기독교가 더 이상 제시하지 못하자 민족이 그것을 대신했죠. ‘나는 유한하지만 민족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민족 아닌 다른 민족은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종주의와 만나 나치즘이 되고 제국주의, 1·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서구사 경험에서 한국사는 면제될 수 있다고 봐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한국 민족주의도 그에 못지 않다는 얘기죠.
박찬승=1931년 만보산 사건 당시의 중국인 학살은 이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당시 조선의 중국인들 중 100여명의 중국인이 조선인에게 피살됐습니다. 총독부의 농간이 작용하긴 했지만 조선인들의 배타성이 잘 드러났습니다. 해방 후에도 정부 정책은 화교에 무척 배타적이었습니다.
김기봉=인종주의는 구별이 차별로 될 때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의식에 골상학, 비교해부학, 생물학 등 과학이 동원됐습니다. 우리는 과학까지 동원한 경험은 없었지만 인종주의가 분명 존재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처음 심어놓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박찬승=그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요.
김기봉=무리짓기의 원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는 의식이 생긴다’는 겁니다.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같은 우리’라는 의식이 만들어지는 거죠.
박찬승=학계에서는 신라 통일 이후 한국의 원형민족이 형성됐다고 봅니다. ‘우리는 신라인’이라는 동질성 개념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고, 아족류라는 개념이 조선초에 나오게 됩니다. 이 역시 하나의 무리가 되고 나서 ‘우리’라는 의식이 만들어진 셈이지요.
김기봉=해방 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우리 민족 운명이 결정된다는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이 과제였습니다. 식민주의 사학과 비슷한 게 지금의 샌드위치 국가론입니다. 세계화 상황 속에서 식민주의가 변형된 거죠. 하지만 이제는 민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 현실을 사유할 수 없습니다. 탈민족적 관점에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범주를 다시 고찰해야 합니다. 민족국가는 큰 문제 다루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 다루기에는 너무나 큽니다. 환경 문제는 초국가적이지만 자꾸 민족국가 틀 안에 갇히고, 지방분권은 중앙집권적 민족국가 때문에 방해 받습니다. 우리 안의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역시 조승희 같은 사람을 만들어낼 겁니다. 우리는 안으로도, 밖으로도 탈민족해야 할 상황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적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박찬승=유럽이나 미주를 여행할 때 그쪽 사람들은 우리를 중국인, 일본인과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 나의 정체성 중 하나가 ‘아, 아시아인이구나’ 깨닫습니다. 동아시아 교역량도 엄청나서 경제공동체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이미 문화적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그런 사회는 올 것이라면 교육 안에서도 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식인들 사이에는 통일될 때까지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고, 일반인들 사이엔 중국과 일본 틈에서 한국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은 듯합니다.
김기봉=독일은 1964년에 외국인 100만명을 맞았습니다. 100만번째 노동자가 포르투갈인이었는데, 당시 독일 고용주 협회장이 그 노동자에게 꽃다발을 주며 “진심으로 축하한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 뒤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며 이게 부담이 됐습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민족 정체성이 훼손됐다는 정서가 등장하며 네오나치가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도 틀림없이 이런 현상이 생길 겁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출산율이 최저인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결국 우리 연금을 부담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럴 때 민족주의는 틀림없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인스 워드가 왔을 때, ‘대한민국을 품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광고가 만들어졌죠. 하인스 워드를 언제 한국인으로 생각했습니까. 그의 정체성은 미국인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면 환영하고, 필요없으면 내쫓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박찬승=왜 한국사회에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가 오게 됐을까요. 9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학력이 인플레돼 대학 진학생이 80% 이상이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3D 업종 중심으로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졌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초청했습니다. 처음엔 산업연수생으로, 이제는 고용허가제로. 앞으로 3D 업종뿐 아니라 고급인력 시장에서도 부족 현상이 올 겁니다. 결혼이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30년 전부터 태아감별이 시작됐고, 남아선호 사상과 결합되면서 남녀 출산 성비가 엄청나게 벌어졌습니다. 신부를 수입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우스개로 말했는데 그게 현실화됐습니다. 혈통을 잇는다고 남아를 선호한 탓에 결국 외국인 며느리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결국 한국사회의 책임입니다. 법무부에서는 향후 매년 10%씩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 대책이 필요합니다.
김기봉=미국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다문화의 전형입니다. 유럽은 우리와 다른 게 유럽인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해소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여력이 없는 데다, 분단돼 있습니다.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이 헌법에 쓴 생명, 자유, 행복 추구 등의 원칙을 가지고 세운 공동체입니다. 헌법을 통해 미국이라는 민족을 만든 거죠. ‘용광로(melting pot)’로 미국 국민 만들기를 한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시민적 내셔널리즘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조승희는 용서를 받았지만 9·11 테러범들은 못받았어요. 그들은 시민이라는 카테고리로 우리와 타자를 나누는 겁니다. 그래서 용광로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그대로 존중해주는 ‘샐러드 접시(salad bowl)’ 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 모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 모델은 바로 ‘비빔밥’이지 않을까요. 우리 전통은 유교 불교 기독교 모두 밖에서 온 걸 하나로 만들었죠. 서로 다른 문화도 비빔밥처럼 버무릴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신라의 불상이든 뭐든, 우리가 나름대로 소화한 외국 문화를 찾아내는 식으로 민족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찬승=한국정부는 결혼이민자에게는 포섭과 동화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결혼이민 지원센터도 만들었죠. 결혼이민여성만 15만명 이상인 상황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아직 부족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가져온 문화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도 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베트남 문화를 버리라고 할 것인가요. 베트남 출신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그걸 살려갈 수 있도록 돕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아시아인의 동등한 자격으로 당신들은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도 당신들 것을 이해하겠다는 자세를 가질 때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교육, 방송 등이 많이 필요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안좋습니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들은 3년이 지나 자진출국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우리도 60~70년대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가면 대부분 잔류했습니다. 아무리 제한조치를 만들어도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상 다시 돌아가기는 힘듭니다. 그걸 현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단속하며 코너로 몰면 집단거류지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중소기업들은 숙련 노동자도 많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들이 일할 만하면 내보내야 하는 정책은 문제입니다.
김기봉=지난 여름 베트남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문화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이 한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땅은 한반도보다 넓고 인구 8800만의 사람들은 굉장히 젊고 우수합니다. 민족해방전쟁에도 승리해봤고, 손재주도 좋습니다. 그간 우리는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만 사고하느라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과 연대·소통 노력을 소홀히 했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이들과의 공존이 우선입니다. 출산 후 찬물에 샤워하고 싶은 베트남 산모가 한국인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는다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교육하면 뭔가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것입니다.
박찬승=이주자들이 한국에서 문화제 같은 것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참여하는지 궁금해요. 우리도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 통일 이후 외국인들이 이와 같이 파도처럼 몰려온 적은 없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는 한국인들이 다인종사회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됐다는 시각은 아직 적습니다. 골치아픈 존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들이 왜 와 있는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김기봉=최근 혈통 민족주의에서 국가 민족주의로 코드 전환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단일민족주의에서 대한민국 국가주의로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올해 말 대선에서 누가 되느냐에 따라 북한 문제에서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통일과 외국인 문제는 민족이라는 틀로 껴안을 수 없습니다. 건국 60년이 되는 내년 역사학대회의 주제를 ‘역사상의 공화정과 국가 만들기’로 정했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는 민족 정체성이 아니라 공화국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 후 남과 북에 두 개의 공화국이 존재해 왔지만 정작 공화주의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공화주의는 사적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적 덕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공화주의는 남한사회 내 외국인 노동자를 포섭하면서 북한 주민도 담을 수 있습니다.
박찬승=한국사회는 전세계의 600만 해외 동포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잘 적응해주길 바라는 한편, 한국문화를 잊지 말기를 기대합니다. 역지사지로 한국 사회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도 한국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공동체의 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또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문화는 우리 문화를 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정리|손제민기자)
07. 10.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