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는 지정학 표준 교재로 쓰일 만한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길, 2007)도 들어 있다. 10년전에 출간된 필립 드파르쥐의 불어권 교재 <지정학 입문: 공간과 권력의 정치학>(새물결, 1997)을 가뿐하게 대체할 수 있겠다. 저자인 콜린 플린트는 일리노이 대학 지리학과 교수로서 7년간 펜 주립대학교와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수업의 결과물들을 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현재의 국제정세와 사건들을 보다 큰 그림 속에 위치지어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지정학이라는 이론적인 틀"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돼 있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동아일보(07. 09. 22) 숙명론 걷어찬 지정학…‘지정학이란 무엇인가’

지정학은 한국에선 사회과학의 탈을 쓴 운명결정론이었다. 개인의 운명이 사주에 달렸다는 것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주변 열강의 파워 게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 요소가 강했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19세기 세계제국을 운영한 영국과 이에 도전한 독일에 의해 학문의 영역에 진입했으나 국가전략과 정책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정학의 현실정합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부인 한스 모겐소도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이 책은 그런 지정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국제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지정학의 이론과 모델을 소개한다. 그렇게 재탄생하는 지정학은 지리학과 정치학의 결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공간의 정치학’이라는 더욱 추상적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지정학에선 공간(space)으로 추상화되기 전 좀 더 구체적 장소(place)에 대한 4가지 차원의 표상 이해가 중요하다. 로케이션, 로컬, 장소감각 그리고 규모다.

로케이션은 장소의 역할을 통해 그 장소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용산은 역할에 따라 미군기지로도, 전자상가 밀집지로도 볼 수 있다. 로컬은 장소를 제도나 권력관계의 부산물로 보는 것이다. 광주와 대구가 지역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매김한 게 그 사례다. 장소감각은 특정한 장소와 연결된 집단적 정체성이다. 규모는 지역경제-국민경제-동북아경제-세계경제처럼 장소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그 속에서 표상이 유동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지정학은 공간에 대한 표상을 국가차원에만 적용하던 데서 벗어나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다국적 기업, 테러단체, 젠더 등 다양한 차원으로 확대하고 구조와 행위자 간 상호 작용을 강조한다. 덕분에 지정학은 19∼20세기 국가주의적이고 구조결정론적 학문에서 비판적이고 구성주의적 학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는 미국 일리노이대 지리학자이지만 이성형(이화여대) 김명섭(연세대) 이혜정(중앙대) 교수 등 8명에 이르는 공동번역자는 모두 정치외교학자라는 점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숙명론과 같았던 지정학을 능동적 운명개척의 학문으로서 재정립하려는 문제의식을 읽을 수 있다. 지정학의 발전사와 이론에 이라크전, 북한 핵, 이란 핵 문제 등 최신 사례를 접목해 생동감이 넘치지만,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나 문장의 치밀함이 다소 떨어진다.(권재현 기자)

07. 09. 27.

P.S.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도 준비해야 하는 터여서 보다 눈길이 가는 책은 저자 콜린 플린트가 엮은 <전쟁과 평화의 지리학>(옥스포드대출판부, 2004)이다. 두께가 좀 있는 책이지만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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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9-27 13:2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 알라딘에는 아직 안 들어와있네요(워낙에 굼떠서인지). 덕분에 원서의 먼지도 털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