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도서반납을 위해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몇 권의 책을 훑어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들녘, 2006). 작년 늦가을에 나온 이 책은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와 번역자로 잘 알려진 저자의 '내공'을 보여주는 책으로 호평을 받았더랬다. 인문서로서는, 그리고 '개념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상당한 부수가 판매된 것으로 안다. 출간 당시 이 책에 별로 주목하지 않은 나로서는 저자의 고정 독자층이 형성돼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별로 주목하지 않은 까닭? 그건 '한권짜리' 사전이 갖는 불가피한 용적상의 한계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주제별 사전이 아니라면 적어도 '한 가지 개념에 책 한 권' 정도가 내가 흥미를 갖는 분량이다. 아무튼 서문에 따르면 책은 '개념어의 이미지를 내 멋대로 그리다' 정신에 충실하며 저자가 밝힌 책의 원제목은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 정도 수준에서 흥미롭게 읽어봄 직하다. 그래야 "고삐 풀린 망아지가 종횡무진 초원을 누비듯이 한 개인이 지적 세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겪고 부딪힌 개념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책의 특장과 미덕이 도드라진다. 뒤늦게 관련기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옥에 티라 할 만한 것도 지적해둔다.

한국일보(06. 11. 18) "인문학 개념, 사전부터 찾지 말고 그림을 그려보세요"
우리가 많이 보는 대형 국어사전은 인터넷을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개념어 사전>(들녘 발행ㆍ452쪽ㆍ1만3,000원)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시선을 빌어 인터넷을 설명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에서 해방돼 법적, 정치적 자유를 얻는 동시에 새로이 자본에 경제적으로 예속된다는 점에서 이중적이고 분열적이다. 인터넷은 그 같은 이중적, 분열적인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자체의 내용을 가지지 않은 매체-비유하자면 인터넷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도로일 뿐이다-이지만, 광범위한 정보를 매개하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므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는 분열증, 이중성과 닮은 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념어 사전>은 각 개념에 대한 설명을, 그 개념의 탄생 배경 및 역사적 사회적 맥락 등과 연결해 파악한다.

저자인 남경태(45)씨는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등 70여권을 번역한 1급 번역자이자 <종횡무진 한국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등 대여섯 권의 저자이기도 하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의 개념은 단일한 의미보다 복합적인 뜻을 지니고, 하나의 개념도 인접 개념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이해할 때는 사전적 정의보다 그 개념에 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이 올바른 이해의 방법입니다.”
그가 말하는 ‘개념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의 개념을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너, 잘났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잘 났다’라는 뜻이지만, 앞 뒤 흐름을 헤아린다면 ‘너, 잘난 척 하지 마라’라는, 정반대의 뜻이 됩니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각종 개념은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은 권력에 대한 설명에서도,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주장을 차용한다.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을 몽매한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식이 이제는 권력과 하나가 돼 도리어 억압과 질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례를 말해주는 퀴즈를 덧붙인다. 의사가 라틴어로 처방전을 쓰고 약사가 약을 잘게 갈아주는 이유는? 답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가벼운 감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환자가 받은 약이 실은 아스피린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란다.
책에는 가상현실, 담론, 디아스포라, 마녀사냥, 모더니즘, 신자유주의, 엄숙주의, 유물론, 자본주의, 제3의 물결, 창조론, 카오스, 파시즘, 패러디, 하이브리드 등 150여 개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대부분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했거나 익숙한 것들로 저자가 책을 쓰면서 메모해놓은 철학 역사 심리학 예술 등 인문학 전반의 개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용어 사전이 아니라 인문학의 지적 탐색이다. 각 개념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그 자체로 책 한 권씩을 압축한 것 같아 인문학적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은근한 재미를 준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인문학의 개념들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눈으로만 읽지 말고 그 의미를 되씹어 보자고 한다. “책에서 뭔가를 뽑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책을 나의 사고 작용을 촉발하는 수단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가지 개념의 사전적 정의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이 말하는, 혹은 그것이 형성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박광희 기자)
07. 09. 26.




P.S. '개인적인 사전'이란 의미에서 <개념어 사전>이 내게 제일 먼저 떠올려준 책은 다른 사전들이 아니라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6)이다. 이 역시 '사랑의 말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단상과 정의들의 성찬인 책이었다. 시간상 <개념어사전>을 다 훑어보지 못하고 저자가 참고한 문헌들의 목록을 유심히 훑어보았는데, 몇몇 책들에 대한 촌평이 눈길을 끌었다.
가령 렘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1)에 대해서 "국내에 소개된 철학사는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읽을 만한 게 별로 없다. 그중 나은 게 이 책인데, 이것도 서술이 지루한 데다가 미국 철학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엄정하지는 못하다."라고 평한다(이 책은 최근에 '떨이 판매'를 하길래 주문해놓았다. 종이값 정도의 가격이어서). 거기에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지만 러셀의 <서양철학사>(대한교과서, 1989)의 경우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번역이 엉망이니 주의하도록!"이라는 조언도 들을 만하다(하지만 잉여적인 조언이기도 한데, 시중에 나와 있는 건 주로 집문당판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참고문헌을 읽어내려 가다가 두 가지 사항이 다소 놀라웠다. 하나는 참고문헌이 소략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배열 순서가 엉터리라는 것. 때로 간략한 필수문헌만을 제시하기도 하므로 소략한 참고문헌 자체가 흠이 될 수는 없겠다(국외서도 일부러 배제한 듯하다). 하지만 참고문헌의 '개념 없는' 차례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책의 마무리가 옥에 티인 셈(이 차례는 편집부에서 만든 것일까?).
일반적으로 성을 먼저 적는 관행과는 달리 이 책의 참고문헌에서는 이름이 성보다 먼저 제시된다. 가령, <고독한 군중>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리즈먼, 데이비드'라고 표기되는 대신에 '데이비드 리스먼'으로 표기되고 있는 것. 하지만, 문제는 이 '부자연스런' 원칙마저도 언제나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점. 코믹하게도 <정신분석 입문>의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여서 'ㅈ'란에 가 있고, <꿈의 해석>의 저자는 '프로이트'여서 'ㅍ'란에 가 있는 식이다. 간혹 '이름' 대신에 성만이 제시된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처럼 'ㄹ'란에 가 있는데, 자체 원칙을 따르자면 'ㅋ'란에 가 있어야 했다('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니까). 사정이 그러하니 'E. H. 카'가 어찌된 영문인지 <성경전서> 다음에 위치하게 된 것도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잘 씌어진 책에 '코 빠뜨리는' 참고문헌이다.
끝으로 한 가지, 현대언어학의 시조인 소쉬르에 대해서 저자는 '프랑스 언어학자 소쉬르'라고 부르는데, 그의 <일반언어학강의>가 불어로 돼 있기는 하나 소쉬르는 '프랑스' 언어학자가 아니라 '스위스' 언어학자이다. '내 멋대로 쓴 개념어 사전'이라도 사전은 사전이므로 디테일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