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 센강변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리면서, 비로소 파리에 첫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리 재입성이리고 했지만 문학기행 첫날에는 단지 숙박을 위해 저녁시간에 파리를 찾은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 파리와는 보고도 못본 사이였다. 이번 문학기행은 이틀간의 시간을 파리 투어에 할애했고, 그 첫날이었던 어제의 핵심일정은 발자크의 집(발자크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파리의 작가‘로 꼽을 수 있는 이들이 여럿 되지만 아무래도 첫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작가는 발자크이고, 발자크는 당당하게 그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작가다. 발자크의 집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발자크가 1840년에서 47년까지 궁색하게 숨어살았던 집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예상보다 작은 집이었지만(고급주택가에 숨어 있어서 맘먹고 찾아가야 지만 가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담한 정원과 커피와 당근 케이크가 맛있다는 카페도 옆에 있어서 꽤 ‘실속‘ 있는 방문관이다(에펠탑에 대한 뷰도 좋다).

전시물 중에 인상적인 것은 한 벽면을 채운 초고와 교정원고(무려 11차례의 교정과정을 거쳤다)였다. 발자크는 매일같이 초인적인 정력을 기울여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작품을 써냈는데, 그렇다고 결코 날림으로 소설을 지어낸 건 아니었다. 영화로치면 촬영기간은 짧아도 후반부작업(교정을 그렇게 부른다면)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완벽주의 영화감독과 비슷하다고 할까(완벽주의자라면 플로베르가 우선 떠오르지만).

졸라의 집과 마찬가지로 발자크의 집에도 집필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1850년에 결혼한 한스카 부인의 초상화도 벽에 걸려 있었다. 책장에는 책들도 꽂혀있었는데 소개에 따르면 5000권의 장서를 소장했다고 한다. 또다른 방에는 발자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도와 캐리커처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규모로만 보자면 거장의 박물관으로서는 소박해보였지만 전시내용은 정성이 엿보이는 구성이었다.

발자크의 집 방문을 마치고 이제 남은 일정은 페르라셰즈 묘지를 찾는 것이었다. 발자크와 프루스트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히 가볼 수밖에 없는 곳. 한데 오후에 한두차례 비가 내리더니 바람도 조금 불면서(강풍주의보가 발령됐다고 하는데 강품의 의미가 우리와는 다른 듯싶었다) 묘지가 일찍 닫혔다는 소식을 이동중에 알게 되었다. 결국 일정을 하루 미루고 우리는 숙소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서 공식 일정의 마지막날인 오늘은 공동묘지 방문으로 일정을 시작한다. 한국식 문화에서는 아주 이상한 일이 되겠지만 문학기행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무탈하게 발자크와 프루스트의 무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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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y30 2023-11-1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봐도봐도 볼 때마다 심쿵하는 파리! 여전하네요~ ^^

저 사진 보니까 저곳 방문 기억이 떠오르네요
박물관에서 유유자적하다가 나올 때 아쉬워서 기념품점에 갔는데 별로 살만한 게 없어서 나오려다가
˝우리 둘이 파리에서˝라고 적힌
심플한 엽서를 동행이랑 하나씩 기념으로 샀었죠

근데 숙소에와서 엽서 설명을 자세히 읽어봤더니, ˝파리, 이제 너와나 둘의 대결이다˝라는 고리오영감의 라스띠냑의 마지막 대사였다는ㅋㅋ

가을의 스산한 파리는 너무 ‘문학적‘일듯^^
즐겁고도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로쟈 2023-11-13 21:47   좋아요 0 | URL
가보셨군요.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