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아브르에서의 주요 일정은 일명 앙드레말로 현대미술관으로도 불리는 르아브르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모네와 외젠 부댕, 라울 뒤피 등의 작품을 다수 소장,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해변에 있는 미술관의 커다란 외벽창을 통해서 르아브르(항구라는 보통명사가 도시이름이 되었다)의 항만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전시된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바다의 풍광도 그 못지 않았다(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 산책로를 혼자 20여분 걸어보기도 했다). 실제로 모네가 인상파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 ‘해돋이: 인상‘을 그린 곳도 바로 르아브르였다.
르아브르가 여정에 포함되면서 새로 추가해넣은 일정은 생로쉬 정원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르아브르는 사르트르가 고등사범을 졸업하고 20대후반부터 30대초반까지 철학교사로 근무했던 도시다. 이때 집필한 작품이 데뷔작 <구토>(1938)다(사르트르가 33세에 발표한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부빌이 르아브르를 모델로 하고 있고 주인공 로캉탱이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나무(혹은 너도밤나무)를 보며 구토감을 느끼는 장소가 현실에서는 생로쉬 정원이다. 그 마로니에나무를 만나보는 게 르아브르의 방문의 추가 미션이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로 잠깐 이동하여 닿은 정원에서 일행은 벤치 옆의 마로니에나무를 찾았다. 벤치도 많았고 나무도 많아서 바로 찾지는 못했지만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키큰 마로니에나무를 우리는 ‘구토의 나무‘로 특정하고(사르트르가 특정하지 않았기에 마로니에 나무를 정하는 일은 독자의 권리라고 우기면서) 작품의 한 대목을 낭송한 다음에 기념사진을 찍었다(아마 프랑스에서도 전례가 없을 듯싶다). 허구적 소설공간의 나무가 실물화되는 순간이었다.
에트르타와 르아브르 방문이라는 일정을 무탈하게 소화하고 일행은 다시 트루빌로 돌아와 플로베르와 재회했다. 여전히 당당한 풍채의 플로베르는 지긋한 시선으로 엘리자가 묵고 있는 건너편 호텔(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떠난 뒤에도 사뭇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