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학기행 3일차 행선지는 루앙이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쯤 떨어진 센강 하구의 도시로 문학에서는 플로베르의 도시, 미술에서는 모네의 도시(대성당 연작),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잔다르크의 도시(1431년 잔다르크가화형을 당한 곳)다. 관광객이 루앙을 찾는다면 대개는 이 세가지 의미 때문이리라.
파리에서 버스로 한시간반쯤 이동하여 루앙에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구도심 안쪽으로는 대형버스가 진입할 수 없어서 인근에서 하차했고 도보로 투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루앙의 랜드마크인 대성당이다. 후기고딕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교회건축물(이런 대성당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중세 루앙의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노르망디의 중심지이자 파리에 뒤이어 프랑스 제2의 도시가 루앙이었다).
앞서도 적었지만 루앙 대성당은 인상파의 대가 클로드 모네가 30여점의 연작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이 가운데 20여점이 여러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듯싶은데, 오후에 들른 루앙미술관에도 한 점이 있었다). 마침 주일 오전이어서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성당 내부를 조용히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성가대합창과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어서 일행은 플로베르박물관을 찾았다. 플로베르의 생가이기도 한 이 곳은 현재 플로베르박물관이면서 의학사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플로베르의 아버지와 형이 루앙의 손꼽히는 외과의사였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데 당시의 의약재부터 여러 진찰과 수술기구, 인체모형, 심지어 미이라까지도 전시하고 있었다. 플로베르의 방에서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로 유명해진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볼 수 있었다. 플로베르문학에서 의학과 의학적 관점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 새삼 음미해보게 되었다.
플로베르의 방 진열장에는 <마담 보바리>(1857) 초판도 놓여 있었지만 아무래도 생가박물관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플로베르의 전모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독신의 플로베르가 어머니와 조카와 함께 살면서 대표작들을 집필한 인근 크루아세의 저택은 현재 본체는 보존되지 않고 별관만 남아있다. 전날 방문한 졸라의 집이 유족에 의해 기증, 보존돼 나중에 복원될 기회를 얻었던 것과 비교된다. 따로 후손을 남기지 않은 작가로선 감수해야 할 운명인 것인지.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다. 역시나 독신으로, 그리고 플로베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명으로 생을 마친 카프카에 대한 프라하의 예우를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최근에 플로베르 문학호텔도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나로선 루앙시와 시민들의 무심함이 느껴진다. 인간혐오적인(어제 버스 이동중 강의에서 내가 쓴 표현이다) 작가 플로베르라면 개의치않을 듯싶지만.
루앙에서 오후 일정은 구도심과 잔다르크성당을 둘러보고 루앙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지방미술관으로서는 손꼽힐 정도로 좋은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는 곳이다(카라바조와 벨라스케스의 작품도 있어서 이채로웠다). 주로 인상파와 모네의 작품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오전부터 도보 투어를 진행해온 탓에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루앙에서 주어진 단 하루였기에(오늘 아침에는 루앙을 떠나 노르망디의 다른 도시로 향한다) 저녁은 일행 몇분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 나왔다는 유명식당에서 졸음을 참으면서. 루앙의 밤길을 언제 또 걷겠는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