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현상'으로까지 의미가 증폭되고 있는 영화 <디워> 신드롬에 관한 좌담기사를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영화이지만(나는 극장에서건 TV에서건 심형래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고, 더불어 '괴수'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디워 현상' 혹은 '디워 신드롬'은 올해의 문화사회학 주제가 될 만하다(관객 천만을 돌파한다면 문제는 좀더 '심각'해진다. 이 경우는 관객층의 분포에 대한 데이터가 요구된다. 아무래도 <디워>는 '방학특선'이란 성격이 강하기에). 굳이 페이퍼로 '기록'해두는 이유이다. 아래 좌담 내용 중 개인적으로는 "<디워>를 굳이 비평적 입장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럴 경우 얻는 것도 적고…. 반면 산업적으로 접근할 경우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에 동감한다. 더불어 "<디 워> 신드롬은 심형래 감독이 건드린 대중 심리, 영화 감상의 주체로 나서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가 결합한 현상"이라는 진단에도.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면 '대중의 반역'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물론 그 반역은 이제 '용가리에서 이무기로'만큼 버전-업됐다. 그런 의미에서도 '디워'는 징후적이다...

한국일보(07. 08. 16) '디워' 관객만큼 논란도 폭발… 영화평론가의 이유 찾기

심형래(49) 감독의 <디워>가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 10’에 진입했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14일까지 총 613만 8,000여명이 <디워>를 관람, <투사부일체>(610만)의 10위 자리를 빼앗았다. 15일 광복절과 뒤이은 주말을 감안하면 <디워>는 이번주 <쉬리>의 기록(9위ㆍ620만)까지 넘으며 1,000만 관객을 향해 맹렬히 돌진할 것 같다.

<디워>의 눈부신 흥행질주 이면에서는 논란도 뜨겁다. 과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괴물>의 흥행을 두고도 충무로 안팎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디워>가 생산하는 논란은 차원이 다르다. 네티즌 대 평론가, 인터넷 토론공간 대 기존 언론매체, 심형래 감독 대 충무로라는 중층적인 전선을 형성하며 하나의 ‘현상’을 낳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이버 테러 수준의 막말이 분출되고, 다른 편에서는 부르디외와 그리스 희곡의 이론까지 동원된다.

괴수가 등장하는 SF오락영화 한편이 이처럼 커다란 담론의 원천이 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화평론가 전찬일(46ㆍ숙명여대 겸염교수), 오동진(43ㆍ동의대 초빙교수), 심영섭(41ㆍ대구사이버대 교수) 씨가 모여 <디워> 신드롬의 겉과 속을 분석해 보았다.(진행= 이대현 문화대기자)

좌담회에 참석한 평론가들은 "<디 워> 신드롬은 심형래 감독이 건드린 대중 심리, 영화 감상의 주체로 나서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가 결합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대중은 왜 <디워>의 사수대가 됐는가
<디워>에 대해 대중들이 보이는 반응은 ‘열광’보다는 ‘보호심리’에 가깝다. 과거에도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고질라>처럼 평단의 혹평을 받고도 많은 관객이 든 영화가 있었다. 그러나 <디워>에 대한 반응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뜨겁고 감정적이다.

심영섭= 이 영화의 흥행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대중도 그런 승자에 환호한다. 미식축구를 봐도 점수를 딴 선수에게 공을 한번 더 찰 기회를 준다. 반면 한국사람들은 패자에 애착과 동질감을 느낀다. 씨름경기에도 ‘패자부활전’이라는 게 있다. 진 사람에게 떡 하나라도 주고 싶은 무의식이랄까. 심형래 감독은 그런 대중의 심리를 건드렸다. 심형래는 꼴찌 인생이라고, 나보다 나을 게 없는 패자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일등이 된 거다. 그래서 장하고 대견한 거다. 영화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그런 잠재된 대중심리를 격발시켰다.

전찬일= 나는 다르게 본다. 심형래 감독이 꼴찌였고 패자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다른 신화고 이데올로기다. 한국 연예 역사에서, 가요계에 조용필이 있었다면 코미디계에 심형래가 있었다. 누구보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도 TV속 바보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약자로 인식됐고,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무의식 속의 심형래는, 심형래가 아니라 아직 영구다. 그걸 이용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심형래 감독은 심할 정도로 악용하고 있다. 이미 <디워>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할 지경이 돼 버린 배경에는 분명 그런 이미지 조작의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

오동진= 언제부턴가 대중이 영화산업의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누구보다 한국영화를 사랑했고, 영화산업이 성장할 수 있게 힘을 준 것이 관객이다. 하지만 평론가와 영화 담당 기자들에 의해 무식한 대중, 즉 꼴찌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감이 <디워>라는 영화에서 표출된 것이다. 가혹할 정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관객 600만명까지 가면서, 나의 정서적 취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픈 욕구가 생긴 것이다.

<디워>의 한계와 가능성
비록 원치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영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들에게 <디워>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돼 버렸다. ‘심형래 대 충무로’라는 갈등의 실체, 애국주의 마케팅, 유사 할리우드(카피우드) 전략 등이 모두 도마에 오른다. 그런 가운데 정작 주목받지 못하는, 혹은 애써 피해가는 주제는 영화로서의 <디워>의 가치다.

= 한국 관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다. 이 원칙은 모든 영화에 적용됐으나 <디워>만 제외된다. 다른 영화는 볼 만한 부분이 있어도 스토리가 약하면 깎아내렸는데, 유독 이 영화만 다른 부분으로 스토리의 허약함을 덮고 있다. 이것이 언론매체를 이용하는 심형래 감독의 파워다. 다른 감독들은 절대 하지 않는, 눈물 마케팅 전략을 썼다. 같은 개그맨 출신이라도 이경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화는 신파가 아닌데, 본인은 신파 전략을 구사했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

= 모두들 ‘특수효과는 뛰어나다’라고 말하고 끝나는데, 특수효과는 사실 시각적 만족을 위한 도구다. 이 영화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이 영화가 로우틴(10대 초반)에 먹혀 드는 이유는 영웅신화다. <용가리>와 <괴물>은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지만, <디워>는 미국이 배경이다. 그런데 그것을 물리치는 것은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주인공이다. 엉성하고 감동을 주지는 못하지만,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이야기다.

= <디워>를 굳이 비평적 입장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럴 경우 얻는 것도 적고…. 반면 산업적으로 접근할 경우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다른 영화 얘기지만,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영화나, 또 <디워> 같은 영화는 영화산업에서 일정한 영역을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디워>는 비주얼의 스펙트럼만으로 7,000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 영화산업과 <디워>
그렇다면 <디워>가 한국영화산업에 미칠 영향은. 그리고 심형래가 앞으로 선택할 길은?

= 한국영화의 위기의 큰 원인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라면, <디워>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 편의 영화가 잘 된다고 해서 영화계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 투자확대 측면에서는 영화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구아트무비는 영화제작보다는 특수효과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 예컨대 동남아시아 영화제작자들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ILM(특수효과 전문회사)처럼 아시아의 특수효과 인프라가 되면 어떨까. 다른 영화인들이 SF에 도전할 때 찾게 되는. 하지만 그것이 영화계 전체가 심형래 감독을 도와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 봉준호 강우석은 아니고 심형래는 도와줘야 하는가? 그러면 과대망상에 빠질 수도 있다. 다음 작품에서도 심형래라는 이름이 <디워>처럼 먹힐지도 의문이다.

= <디워>는 영화 자체보다 심형래의 인간승리를 보러 극장에 간 관객들이 많다. 심형래 감독의 작품이 계속 성공하려면 콘텐츠가 믿음을 줘야 한다. 제리 브룩하이머처럼, 좋은 제작자가 됐으면 좋겠다.

문화 프로슈머시대의 영화평론
<디워> 논란의 가장 첨예한 전선은 언론과 평단의 혹평과 그것을 반박하는 네티즌(대중)의 목소리다. 대중은 더 이상 평론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비평의 방법에도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 관객은 더 이상 영화에 있어서 수용적 입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워>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영화를 소비하는 입장이지만, 텍스트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은 강한 욕망과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으로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자긍심이 기존 평론가들의 권력과 충돌해 이번의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평론가들이 더 이상 텍스트 자체만을 분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 산업적 측면에서 다양한 비평을 해야 한다.

= 네티즌과 평론가의 역할이 다른데,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대중은 비평가를 인정하고 비평가도 대중을 낮춰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엔터테이너가 아닌 스페셜리스트의 영화평을 싣는 언론의 자세도 필요하다.

07.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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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충무로는 왜 "d-war"를 인정하지 않는가..?
    from 깔끄미(입주청소) 2007-08-16 20:51 
    현재 우리나라 영화계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d-war"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영화비평가들이나 전문가들은 디워를 혹평을 한다. 아니다..이정도 수준이면 혹평의 정도를 떠나서 거의 말살이라는 표...
 
 
수유 2007-08-1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카가 보자 그래서 보게 되었는데, 관람객들은 가족단위가 있긴 했어도 이전의 용가리 때처럼 초등학생들만 들어온 영화는 아니었구요, 다른 영화들 관객층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어요. 대중이 그의 영화에 반응하는 것은 용가리나 그 외 심형래의 괴수영화들과는 확 달라진 CG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는 평단의 잣대로 그를 평가하지 말라는 대중들의 욕구가 드러난 것 같아요. 위의 오동진 교수의 어떤 스페셜리스트로 보자는 말과도 연결이 되는데 그런 암묵적 동의가 대중들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신지식인 선정에 관련된 뒤늦은 사회시선도 그랬고.. 그것이 정치적이었거나 우둔한 지도자의 즉흥이라든가..또는 정당하거나 옳거나 비판을 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다르게 말이죠..여하튼 영화자체의 완결성 같은 건 대중에겐 그리 크게 어필하지 않았다는 점, 애초부터 대중은 심형래에게 그런 기대는 안했을 수도 있어요.. 그게 평단과 대중의 갭 일수도 있지만서두...어린조카도 내용은 좀 이상하지만^^ 그래픽은 좋았고 괜찮았어요 라고 말하더군요^^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군데군데 짧은 박수도 있었고.^^

로쟈 2007-08-1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여름방학에 남녀노소 같이 볼 영화가 별로 없기도 하구요. 그나저나 오늘따라 갑자기 서재 방문객이 많아진 게 아무래도 '디워' 탓인가 봅니다. 말로만 신드롬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