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 강의가 있어 학교에 나오는 길에 읽은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7월 24일)'은 아이작 싱어의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두레, 1999)을 다루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만큼 예전에 많이 소개된 작가인데 요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주로 그의 동화들인 모양이다. 싱어와 관련한 몇 안되는 기억을 기사를 따라가며 적어본다.

197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이작 싱어가 1991년 7월 24일 87세로 사망했다. 싱어는 폴란드 태생으로 1935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계 작가다. 그는 헤브라이 문자로 표기하는 동유럽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Yiddish) 어로 작품활동을 했다.

이 동구권 태생의 유대계 작가에 대한 최초의 인상은 아마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1989)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영어 제목이 'Enemies, a love story'이고 국역본은 <적들, 어느 사랑이야기>). 그 전에도 물론 고려원 등에서 나온 책들을 서점에서 보곤 했지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진 않았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는데(싱어의 아버지는 랍비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 기억엔 영화의 예고편 정도만을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어쨌거나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라는 제목만은 기억에 각인이 되었다('적들, 어느 사랑이야기'란 제목보다는 낫지 않은지?).




이디시 어는 지금은 사어(死語)화해 이스라엘에서도 사용을 기피하는 언어이지만, 싱어는 고집스럽게 이 언어에 유대인의 전통과 고난, 지혜를 담았다. <적들, 어느 사랑 이야기> 등 그의 몇몇 작품이 번역돼 있는데,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은 언제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마음 훈훈해지는, 타고난 이야기꾼 싱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싱어와 접하게 된 건 친하게 지냈던 한 체코 여자의 추천 덕분이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이작 싱어'라고 답했고 영어로도, 체코어로도 많이 나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읽게 된 게 (체코와의 관련 때문이기도 하고) <카프카의 한 친구>(중앙일보, 1978). '아이작 싱거 단편선'이라고 소개됐던 책인데, 표제작과 몇몇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자세한 독후감은 일기에 적어두었는데,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둘러보니 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운 책인 듯한데 새단장을 해 출간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싱어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이다). 그나저나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이야기는 이렇다고 한다.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무구한 가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전쟁과 잔인한 박해로 인해 어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에게 바친다”고 싱어는 이 책의 서문에 쓰고 있다. 켈름의 호수에서 잡힌 가장 큰 잉어가 어쩌다 꼬리로 바보 그로남의 얼굴을 후려쳤다. 마을 사람들은 버릇없는 잉어에게 큰 벌을 내리기로 하고 최종판결까지 물통에 가둬 살려둔다. 반 년 후 나온 선고는 ‘잉어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다’는 것. 그리고 켈름의 현자들은 만일의 경우 그 나쁜 잉어가 물에 빠져 죽기를 거부해 다시 잡힐 때는, 특수한 감옥 즉 나머지 일생 동안 죄수로 지낼 연못을 만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잉어가 받은 최고의 벌, 익사’).





추천사로 올라와 있는 뉴욕타임즈의 북리뷰에 따르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아이작 싱어, 찐짜 이야기꾼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지극히 매력적이다. 이 점에서 그에 견줄 만한 사람은 우리 시대에 없다." 동화인지 우화인지 헷갈리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에 있어서 아마도 헝가리 태생의 이스라엘 작가 에프라임 키숀과 견줄 만하지 않을까 싶다(내가 읽은 건 <개를 위한 스테이크>밖에 없고, 후보로 자주 오르내린다는 키숀 또한 아직 노벨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기자의 소감은 이렇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동화이기도 하고 우화이기도 한 스물두 편의 이야기, 그 주인공인 행복한 바보들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무구한 시절을 돌려준다. 세월에 세상에 찌들고 해져버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유대인 작가들 얘기를 하다보니 얼마전 <나이트>(예담, 2007)이 번역돼 나온 노벨평화상(노벨문학상이 아니라) 수상작가 엘리 위젤이 생각난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위젤 또한 동구권(루마니아) 태생이고 홀로코스트를 체험한 작가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가 열다섯 살에 나치 강제노동수용소에 이송되었다가 가족을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와 함께 홀로코스트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고. 요컨대 '대표작'이 번역돼 나온 셈이다(예전에 <흑야>, <밤> 등으로 소개된 것과 같은 작품인 듯하다).
소개를 보태면, "엘리 위젤은 독일군이 자신의 고향 마을 시게트를 점령하면서 운명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부나 수용소,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겪은 일과 이송 도중에 겪은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간다. 1958년 프랑스에서 초판이 나왔고, 2006년 작가의 아내인 매리언 위젤의 새 번역판이 출간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새 번역본도 다시금 주목받을 필요가 있겠다...
07. 07. 24.

P.S. 아이작 싱어의 <적,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바뀐 제목은 <원수들, 사랑이야기>(열린책들, 2008). '차별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번역본들도 저마다 원수인 듯하다...
08. 0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