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가 이니라 후식이라 적은 건 <돈키호테의 식탁>을 염두에 두어서다. 스페인 출국때 가방에 넣고서 귀국행 비행기에서 여행의 ‘후식‘으로 손에 들었다. <돈키호테>와 음식이야기를 맛깔나게 적은 책인데, 돌이켜보니 맛본 음식보다 맛보지 않은 음식이 훨씬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작품도 마찬가지여서 <돈키호테>에 대해 강의하면서도 아직 맛보지 못한 부위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강의가 공부의 과정이고 문학기행이 또다른 공부가 되는 이유다.

여행을 마치고 몇가지 공부거리를 정리해보았다. 가장 많은 부분은 물론 <돈키호테>와 관련된다. 여행중에도 강의에서 정리해봤는데 (1)<돈키호테>의 탄생과정. 이는 근대소설의 탄생과정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다. (2)<돈키호테>의 문학적 영향. 스페인문학뿐 아니라 유럽문학과 세계문학에 끼진 영향을 탐사해야 한다. 17세기 프랑스문학, 18세기 영문학, 19세기 러시아문학, 20세기 남미문학에 미친 영항을 다룬 논저들이 나와있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세르반테스의 장르에 대하여. 시와 희곡, 단편소설(<모범소설>)과 장편소설(<돈키호테>)의 관계와 의의에 대하여. 전공자들의 해명을 기대해본다.

어젯밤 귀가해서 배송된 책들을 풀어보니 스페인에 가기 전에 주문한 책과 스페인에서 들어오기 전에 주문한 책이 나란히 와 있었다. 가기 전에 주문한 책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돈키호테> 성찰에 대한 얇은 영어 주석서이고(다음에 스페인문학기행을 또 진행한다면 마드리드 일정을 하루 더 늘리고 싶다), 들어오기 전에 주문한 책은 <안토니오 가우디>와 <카르멘> 등이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기념으로, 그리고 <카르멘>은 배경이 되는 세비야의 담배공장도 지나가본 김에 신화적 형상으로서 카르멘의 문학적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짧은 강의에서는 ‘남성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여성상‘의 이름이라고 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발터 벤야민에 대한 관심의 재점화. 포르트부의 무덤에서부터 시작해서 베를린의 어린시절까지 벤야민의 생애와 비평, 사유를 거슬러올라가는 여정이다. 내년가을의 프랑스문학, 후년봄의 독일문학 기행에 맞춘 장기적인 독서기획도 짜봐야겠다. 후식은 식사의 마무리를 가리키지만 문학기행을 포함하여 강의의 후식은 새로운 공부의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