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로르카공항(작은규모의 국제공항)에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탑승수속을 일찍 마치고 휴식 겸 자유시간을 갖는 중.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여장을 푸는 일이 오늘의 남은 일정이다.
오전에는 예정대로 알함브라궁전 전체를 둘러보고 전문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라나다의 역사는 이슬람 스페인의 역사 전체를 대변하고 알함브라궁은 그 역사의 응축물이다. 아직도 풀리지않는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니 관람객들의 발길도 오래도록 끊이지 않을 것 같다(상당기간 앞서 예매해야 하고 여권을 지참해야 입장할 수 있다).
알함브라궁 내부에 미국작가 워싱턴 어빙의 기여를 기리는 현판이 붙어 있고 내려오는 길목에는 어빙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어서 놀랐다. 미국문학사에서 어빙은 <스케치북>(1819-20)의 문제성 덕분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스페인에서는 단연 <알함브라 이야기>(1832)의 저자다. 기념품점에서도 어빙의 <알함브라>는 각국의 번역본으로 판매되고 있었다(한국어판은 절판돼 준비강의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라나다 관광을 준비하는 독자라면 미리 읽어두는 것도 좋겠다.
이번에 알게 됐는데(어빙을 강의에서 다룰 때는 주목하지 않아서) 어빙은 콜럼버스의 전기와 함께 미완성이지만 <그라나다 정복 연대기>를 쓰기도 했다. <알함브라>는 그 여세를 몰아서 쓴 책. 비록 온갖 장르의 글이 뒤섞여 있는 <스케치북>처럼 분류는 애매하지만 그의 <알함브라>는 알함브라궁전의 재발견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다. 궁전의 주인들과 나란히, 혹은 그 이상으로 대접받는 이유다.
어빙이 쓰려고 했던 그라나다의 역사는 스페인사의 일부로만 다뤄질 게 아니라 별도로 책이 나오면 좋겠다. 더불어 스페인 재정복의 영웅인 이사벨여왕에 관한 책도 나오면 좋겠다(콜럼버스에 대한 책은 나와있기에 제외한다). 어빙의 책도 다시 나오고. 그라나다를 찾을 여행자를 위해서라면, 너무 작은 명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