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양서로서는 드물게도 국내 필자에 의한 단독 저작이 나왔다. 다루는 시기도 현대미술이 아니라 16-17세기 서양미술, 종교개혁 시기의 '시각문화'다(전문저술가인 노성두씨의 책들을 참고해볼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입문서나 소개서이다). 신준형 교수의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사회평론, 2007)이 그것이고 '가톨릭 개혁의 시각문화'가 그 부제이다. 알고보니 나도 갖고 있는 책 <파노프스키와 뒤러>(시공사, 2004)의 저자이다. 드물게도 장문의 리뷰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7. 06. 23) 르네상스, 바로크 명화를 읽는 또 하나의 눈!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벌였던 이념투쟁의 역사가 당시의 시각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묻고 있다. 16세기는 르네상스의 시기이자 또한 종교개혁의 시기였다. 종교개혁이 1500년 교회의 전통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 이후 두 세기 동안 가톨릭미술은 자신이 그려내는 천상과 지상의 모습을 재확립하고 교회의 의식과 신도들의 신앙수행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함으로써 결국 가톨릭의 교세를 복구하는 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종교개혁의 도전 이후 가톨릭미술이 전개되어 나간 방향과 양상, 즉 가톨릭개혁의 미술사인 것이다.

종교미술은 양식분석이나 도상해석보다는 종교문화의 시각적 분야로서 그 기능의 측면에 주목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모든 종교는 시각체험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시각체험은 영성에 도달하기 위한 강력한 방법론으로 흔히 사용된다. 바로 이러한 종교의 시각 영역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곳이 종교미술이다. 따라서 가톨릭개혁의 미술도 사실 미술이라는 말보다는 가톨릭의 시각체험, 시각문화라는 용어로 불러야 더 적합하다.

▲명화(名畵)라는 단어에서 악센트는 이름에 있을까 아니면 그 그림에 있을까?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흔히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점의 시기로 생각된다. 따라서 미술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라파엘, 카라바조, 티치아노, 루벤스 같은 거장들의 이름쯤은 상식으로 안다. 또한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는 ‘미술’이 아니라 ‘이름’을 보려고 찾아온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은 박물관이라는 일종의 보물창고에서 삼엄한 경비와 보안장치의 호위를 받으며 절대적 미의 상징이자 값을 매길 수 없는 문화재로서 군림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장치들은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을 무언가 고귀한 것, 초월적인 것으로 만든다. 박물관은 신전이며 이 작품들은 시공을 초월한 미의 신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기독교 주제의 작품들을 박물관의 보안장치와 인공조명의 무대에서 떼어내 당시의 시대로, 원래의 장소로 돌려놓고 바라본다. 16-17세기, 종교투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말해주는 것은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이다. 구원과 투쟁, 천상과 지상이라는 양극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패러독스의 세계,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바로크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당시의 세계이고 삶이다.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
이 시기 미술가들은 예술가라는 자의식과 종교투쟁의 사회가 부과하는 요구 사이에서 저항하기도 했고 타협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는 교회와 세속 군주라는 거대 권력을 업고 예술적 성취와 세속적 출세 두 가지를 함께 추구했던 화가들이다. 이들에게 권력의 요구는 기회를 의미했다. 루벤스는 교회와 세속 권력 모두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행운아였지만 그가 경탄해 마지않았던 천재 카라바조는 어느 쪽에서도 환대 받지 못한 채 피로와 고독 속에 떠돌다 생을 마쳤다. 미술의 자연주의적 호소력을 추구했던 베로네제는 종교재판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그림 제목을 바꾸어야 했지만, 그러나 그림은 지켜냈다.

한편 엘 그레코와 보로미니처럼 종교적 열정에 영감을 받아 극단의 환영주의를 추구했던 보다 ‘예술가적인’ 인물들도 있었다. 이처럼 명화의 판테온에서 지상으로 내려진 작품들에서 우리는 당시의 삶을, 당시의 고통과 희열을, 좌절과 성취를 읽는다. 결국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거장의 ‘이름’들이 아니라 이들의 그림으로 결정(結晶)화된 당시의 삶이다. 이들의 그림을 통해 우리도 당시의 고통과 희열을 시각으로 체험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출판된 종교개혁▪가톨릭개혁의 미술사
16-17세기 가톨릭개혁의 미술사는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는 유럽이 제3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고, 특히 남미와 동양으로 진출했던 이들이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가톨릭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제3세계 전도의 첨병은 예수회였으며, 이들은 이미 16세기에 중국과 일본에 왔다.

예수회는 작은 나라인 조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18세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가톨릭을 서학이라는 이름하에 중국에서 들여왔다. 이로써 조선은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18세기에 가톨릭이 조선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개신교에게 유럽의 상당 부분을 잠식당한 가톨릭이 제3세계에 영토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중국 선교에 엄청난 노력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가톨릭이 들어왔고, 개신교의 유입은 더욱 늦었으나, 현재 동양에서 기독교가 확고히 자리 잡은 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모두)가 그토록 번성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역사적․사회학적 해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가 이 땅의 문화에 결여되어 있던 그 무엇인가를 채워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기독교가 유럽을 떠나 전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던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의 문제, 또 그와 결부된 미술의 문제는 기독교가 이미 18세기에 들어와 굳건히 자리 잡은 한국의 역사나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뿌리내리고 존재하는 한 종교개혁, 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는 ‘서양인’, ‘타인’들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현재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유산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유산으로서의 16-17세기 유럽 기독교미술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천상의 황홀경과 지상의 투쟁 사이에 너무나 먼 간극이 존재하듯이 르네상스 이래로 이들이 품게 된 예술가라는 자존의식과 혼란의 사회가 부과했던 요구 사이에도 화해하기 힘든 거리가 있었다. 이들이 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무게는 이들에게 짐과 멍에이면서 동시에 성공과 출세의 기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베르니니, 루벤스 같은 이들은 이 기회를 영리하게 붙잡아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지위와 권력을 누렸다. 자신의 공방에 들어온 12살 소년 틴토레토를 열흘 만에 쫓아낸 거장 티치아노의 비정함, 소년의 재주와 천재성에 경악한 티치아노는 호랑이 새끼를 기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구원의 약속과 세속적 성취가 공존할 수 있었던 시기, 성공과 명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예술의 이상이 공존할 수 있었던 패러독스의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였고 바로크였다.

이 책이 출발하고 있는 시점인 하이-르네상스는 전통적인 미술사에서 너무나 이상화되어 있는 시기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예술가라는 자의식이 깨어나고, 인문주의의 부흥으로 인간 존재의 존엄과 아름다움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고, 결국 인류 문명의 최고 정점으로서 이후의 온갖 세대와 제 민족들이 본받을 영원불멸의 규준canon으로 남게 된 이상의 시기가 르네상스라는 것이 고전적 이론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르네상스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유럽중심주의의 시작이며 무한경쟁과 물질적 성취가 긍정되었던 매우 냉혹한 시기이다. 화가들 개개인의 삶도 리얼리즘의 극치다.

이 책은 신비화된 르네상스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이상의 시대라기보다는 투쟁의 시대로서의 르네상스를 조명하고 있다. 르네상스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의 미술사를, 종교투쟁의 시각체험을 글로 재현한 것이다.

저자 신준형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위스콘신 주립대학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조정진 기자)

국민일보(07. 06. 23)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낸 신준형 교수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서양 미술 관련서는 대부분 초보자용 교양서다. 좀더 깊이 있는 책을 보려면 번역서밖에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준형(38·사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사회평론)을 내놓았다. 16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바로크의 미술사를 추적한 이 책은 이상화된 당시의 미술을 종교문화, 종교체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르네상스 하면 인문주의나 인본주의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사실 이 시기는 종교개혁의 시기입니다. 당시 그림들의 70% 이상은 종교화거든요.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고 인체의 묘사가 자유로워졌다지만 이들 그림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신앙심을 호소하는 선전선동용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점의 시기로 생각된다. 미술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미켈란젤로, 라파엘, 카라바조, 티치아노, 베르니니, 루벤스 등 거장의 이름은 상식으로 알 정도. 또한 이들의 작품은 지금도 수많은 박물관에서 문화재로 우대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들은 ‘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천상의 구원’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투쟁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루터로 시작된 종교개혁 이후의 가톨릭 미술이 바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벌였던 이념투쟁의 역사가 당시 시각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초점을 두었어요. 종교화라고 하면 중세시대의 아이콘(성상화)을 떠올리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역시 그 앞에서 기도하거나 명상하기 위해 그렸어요. 이것이야말로 당시 그림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입니다.”

이 시기의 화가(조각가)들은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가진 인물들로 미켈란젤로 등 몇몇 인물들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천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 예술가들이야말로 교회와 군주라는 거대 권력을 업고 세속적 출세를 추구했던 부류하고 역설한다.

당시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게 되면서 무한경쟁의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지금 우리가 아는 거장들입니다.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루벤스 등의 일생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가 굳건히 자리잡은 한국에서 르네상스와 비로크 미술은 더 이상 이질적인 문화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서양인(타인)들의 문화가 아니라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현재로 이어지는 보편적 유산입니다.”(장지영 기자)

07. 06. 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