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은 장편소설이 주종목인 작가이지만 적잖은 분량의 단편도 썼다. 그 가운데 20편을 수록한 단편선집 <19호실로 가다>(1994)가 국내에는 <19호실로 가다>와 <사랑하는 습관>으로 분권돼 나와있다. 작가 서문도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는 대표 단편모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선집의 초판은 1978년에 나왔고 레싱은 1994년판에 서문을 붙였다.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는 1963년 발표작이다(30년의 세월을 버텨낸 작품인 것).

레싱의 작품으로는 첫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1950)와 <마사 퀘스트>(1952), 그리고 대표작 <금색 공책>(1962)과 후기작 <다섯째 아이>(1988)를 강의에서 다뤄왔다. 지금 다룰 수 있는 작품의 대부분에 해당한다(SF소설 <생존자의 회고록>은 절판되었기에 다루지 못한다). 레싱 강의에서는 자연스레 작품을 어떤 순서로 읽을지에 대한 안내도 덧불이는데, 보통은 장편을 중심으로 소개해왔다. <금색 공책>에 대한 워밍업으로 <풀잎은 노래한다>나 <마사 퀘스트>를 추천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금색 공책> 같은 소설이 국내에서 (영국에서처럼)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한국 독자들에게 읽히길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생각해본 차선의 경로가 단편집들과 함께 <다섯째 아이>를 읽는 것이다(속편 <세상 속의 벤>도 번역돼 나오길 기대한다). 특히 ‘19호실로 가다‘는 여러모로 <다섯째 아이>와 비교될 수 있다. 행복한 중산층 가정을 꾸리려던 부부가 각각 네 아이까지 키우거나 낳은 다음에 부닥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레싱은 그들 부부의 꿈을 절망으로 만든다.

이 두 가지 경로가 현재로선 레싱 읽기의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작의 작가라 하더라도 우리는 주어진 번역본 내에서 읽을 수밖에 없겠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