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칼 포퍼 지음, 이상헌 옮김 / 생각의나무 / 2000년 1월
절판


소비에트가 쇠퇴한 이유들을 알아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일단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물론 러시아에서는 권력을 가진 공산주의자들로 말미암아 모든 교육단계에 있는 학생들이 공산주의 교리를 배우는 체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시대가 되었을 때, 공산주의 지도층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황을 현상태로 유지하는 수단만 생각할 뿐, 달리 마르크스주의의 교의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것만 진지하게 취급되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는 틀림없이 붕괴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이것만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73-74쪽

그 책(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은 20세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특히 1962년 쿠바 위기로 대표되는 커다란 전환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소련은 그 시점에서 냉전의 긴장감을 상실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때 소련은 미국을 멸망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마르크스 정권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상이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점은 소련이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시초였으며 그후 전반적인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76쪽

소비에트는 러시아의 물리학자인 사하로프 박사가 회고록에서 말한 사하로프 폭탄을 가질 때까지는 역사가 그들에게 부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지 못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하로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나는 한때 그에게 형법적 책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하로프의 문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하로프는 베리아와 함께 합동으로 스탈린 통치하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했으며, 수소폭탄을 제조하는 것과 관련하여 베리아와 반복적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쨌든 수년간의 실험을 거쳐서 완성품 폭탄이 1961년에 실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흐루시초프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미국이 모르게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할 생각이 떠오른 것은 불가리아를 방문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미국은 이미 때를 놓치게 될 것이었다."-77-79쪽

아인슈타인은 독일이 자체적으로 원자폭탄을 제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폭탄의 사용을 지지하는 편지에 서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편지에 서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시기에는, 흐루시초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자본주의의 '타파'를 원하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그는 자본주의는 반드시 타도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폭탄을 실험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으며, 함대의 포민 소장을 만나러 갔을 때는 마흔 살이었습니다(*사하로프는 핵어뢰 프로젝트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86쪽

사하로프는 그가 만든 초강력 폭탄을 실험할 때마다 방사능으로 인해서 수천 명이 암에 걸릴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실험을 실시하지 않도록 흐루시초프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화를 내며 '정치적인 것'과 '과학적인 이슈'가 섞이게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내 의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사하로프가 맹세한 것은 그때였습니다. 사하로프에 대해서 말할 것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의 회고록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87쪽

나는 말년의 사하로프에 대해서는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꼭 수정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가 전범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고 말해야 하며, 그가 말년에 한 일로 인해서 그의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이탈리아의 한 언론인과의 이 대담은 1991년에 이루어졌다.)-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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