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뉴스메이커의 '커버스토리'(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4657)는 '일본소설에 점령당한 한국소설'이다. 타이틀이 좀 선정적이긴 하지만 한국소설의 현황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로서 의미가 있어 뵌다. 물론 기사에서 소설은 '상품'으로서의 소설을 가리킨다(어제는 '중국소설이 온다!'란 기사를 퍼왔는데, 요약하면 한국소설의 현황이란 경제와 마찬가지로 일본과 중국 사이의 '샌드위치'이다). 거기에 현장에서 뛰고 있는 5명의 젊은 작가들(김중혁, 이기호, 김애란, 박민규, 김언수)의 인터뷰 기사도 같이 싣고 있는데, 여기서는 기획관련 기사만 네 꼭지 옮겨놓는다. 이런 기사에 흥미를 갖는 독자란 어떤 부류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이런 펌질을 무릅썼으니...  

 

뉴스메이커(07. 06. 12) 일본소설에 점령당한 한국소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 베스트셀러 시장을 점령했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도 더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쉽고 재미있는 일본소설. 독자들의 읽고 싶은 욕망을 우리 작가 대신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한국소설의 싹을 틔울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상상력과 글쓰기로 무장한 신예작가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들은 과연 한국 소설시장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소설의 위기’. 요즘 출판계를 달구는 최대 담론이다. 김훈과 공지영을 제외하면 잘 팔리는 작가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문학전문 출판사들은 “한국소설은 이제 어떤 작품을 내도 팔리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한국소설의 위기론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은 일본소설의 인기다. 일본소설의 선전은 대형서점이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목록만 훑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교보문고 5월 3째 주간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든 한국소설은 김훈의 장편 ‘남한산성’(1위)과 은희경의 단편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4위) 뿐이다. 반면 일본소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3위)와 ‘키친’(10위),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6위)와 ‘면장 선거’(9위), 요시다 노리코의 ‘눈물이 주룩주룩’(8위) 등 무려 다섯 권이다.한국소설시장을 일본소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키 마니아 국내에 5만 명 이상

지난해에도 한국 시장에서 일본소설의 존재는 눈부셨다. 그나마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일본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작업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2006년 전체 소설 집계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게 잔뜩 위축된 한국문단에 촉촉한 단비가 됐다.

일본소설이 한국독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198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국내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다른 출판사가 원제 ‘노르웨이숲’으로도 출간한 적 있는 ‘상실의 시대’는 지금까지 70만 부가 팔렸다. 이후 하루키의 모든 작품이 국내에 속속 소개됐고 일본소설은 한국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상실의 시대’를 비롯해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 ‘도쿄괴담집’ 등 하루키 소설의 상당수를 번역 출간한 문학사상사의 정종화 팀장은 “국내에 하루키 마니아가 5만 명 이상 형성돼 있어 하루키 소설의 경우 10만 부 안팎은 기본으로 판매된다”고 말했다.

19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를 필두로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국에 충성스러운 독자를 양산했다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오쿠다 히데오, 츠지 히토나리 등의 인기는 2000년대에 구축된 것이다. 한국소설의 부진과 대조적으로 일본소설이 부쩍 사랑을 받자 국내 출판사의 관심은 일본작가에 집중했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 소개된 일본소설의 폭발적 증가가 입증한다. 2003년 191종이 번역된 일본소설은 2004년 242종, 2005년 420종을 거쳐 2006년 무려 462종이나 출간됐다.

일본의 스타작가를 잡으려는 국내 출판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본소설의 저작권료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일본소설과 한국 출판사를 연결하는 에이전시가 국내 출판사 간 경쟁을 부추기면서 호가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빅히트 일본소설인 ‘공중그네’와 신작 ‘면장 선거’의 국내 저작권을 가진 은행나무 주연선 사장은 “국내 출판사 간의 과당경쟁 탓에 3년 전에 비해 일본소설에 대한 저작권료가 적게는 2~3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까지 뛰었다”고 말했다.

주 사장에 따르면 아쿠다가와상이나 나오키상 등 일본의 각종 문학상 수상작이나 서점관계자들이 가장 기대되는 작품에 시상하는 서점대상 수상작의 경우 불과 3년 전만 해도 선인세 개념의 저작권료로 1000만~1200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하지만 지금은 1억 원 이상을 줘야 한다. 수상작이 아닌 소설의 저작권료도 종전엔 200만~300만 원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800만 원 정도다. 물론 저작권료로 지불한 것 이상으로 책이 팔릴 경우엔 그에 따른 인세를 추가로 줘야 한다. 국내 출판된 일본소설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이 전체의 10% 수준임을 감안하면, 일본소설에 대한 ‘묻지마 수입경쟁’이 국내 출판사에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분명한 사실은 최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 상위에 일본소설의 비중이 높은 것은 일본소설에 한국독자를 매혹하는 힘이 있음을 입증한다는 점이다. 출판관계자들이 “일본소설의 저작권료에는 분명 거품이 있지만 작품 자체에는 거품이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일본소설의 선전과 한국소설의 부진. 공지영과 김훈을 빼면 한국소설은 어떤 작품을 내도 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은 교보문고 국내소설 코너. <김재구 기자>

일본소설 저작권료 10배 이상 뛰어

요즘 한국독자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소설은 공통적으로 무거운 주제도 가볍고 밝고 재미있게 서술하는 장점을 지녔다. 출판칼럼니스트 박지현씨는 “요즘 젊은 세대는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한 것을 반기지 않고, 음악을 듣거나 잡지를 보듯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어떤 독특한 것을 원한다”며 “일본소설은 바로 그런 욕구를 채워준다”고 밝혔다. 소설가 박민규씨는 최근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서 “지금 일본소설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일본문학이 그만큼 앞섰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오랜 세월동안 소설을 써오면서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라고 말했다.

또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일본소설이 잘 팔리기 때문에 한국소설이 안 팔리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부장은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국내소설의 등장이 부진한 상태에서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야 했고 그 경로 중 하나인 일본소설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소설이 채워주지 못한 틈새시장을 일본소설이 치고 들어온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소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소설은 지나치게 무겁고 서사가 약하며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비판이 일반적이다. 또 ‘끼리끼리 잘 봐주기식’의 ‘주례사비평’에 대한 환멸 그리고 단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상 제도도 한국소설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한국문학이 성장한 것은 6·25전쟁, 남북분단, 독재권력 등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겪었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이 같은 외적 조건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젊은 세대의 생활상과 가치관이 크게 변화한 오늘날까지 한국 작가들은 거대담론이나 후일담 또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학에는 달라진 삶의 형태와 고민을 담아내야 하는데 우리 소설은 여전히 과거패턴을 답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역시 계간 ‘세계의 문학’ 봄호에 기고한 글에서 “독자들은 즐기기 위해 또는 뭔가 도움을 받기 위해 책을 읽는데 한국소설의 주류를 이루는 작품들은 여전히 민족적·국가적 측면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소설가 박민규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가 마련한 좌담에서 “한국문학은 단 한 번도 번성한 적이 없고 이제 겨우 습작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내뱉은 말은 꽤 설득력이 있다. 박민규는 “기존의 한국소설, 한국문학을 젊은 세대들이 올드하게 느낀다고 하는데 올드해서가 아니라 실은 어려서 그런 것”이라며 “이유는 우리의 진도가 여기까지인 것이고, 지난 수십 년간 그나마 우리가 일군 것은 리얼리즘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사실과 환상은 문학이 가진 두 개의 유전자 줄기인데, 한국소설에 공상과학(SF), 추리소설, 공포소설, 판타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소설의 점령 속에서 한국소설은 정말 바람 앞에 선 촛불과 같은 신세인가.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한국소설이 싹을 틔워 꽃을 피우려 하는 시기라는 희망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문화평론가인 서영채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1980년대만 해도 문학은 현실에 대해 실천적인 힘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리얼리즘적 기준이 심했고, 문학 자체에 대한 시대적 후광도 있었다”며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대중문화가 활기를 띠면서 문학에 대한 후광 없이 원점에서 문학을 시작해야 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축적된 힘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기’가 아니라 ‘호기(好期)’라는 주장의 근거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한국적인 특수성을 강조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내기 시작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서영채 교수는 “우리 소설이 1980년대에 가지고 있던 우국지사 또는 지식인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20대의 김애란부터 50대에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 육순이 된 김훈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문학 속에 뛰어들면서 우리 소설은 탄력성과 보편성을 가지게 됐다”며 “특히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매우 자유로워져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젊은세대, 무겁고 진지한 것 안 읽어

새로운 상상력과 글쓰기를 보여주며 문단과 대중의 주목을 끌고 있는 젊은 작가군은 박민규, 김애란, 김언수, 이기호, 김중혁, 한유주, 정이현 등이다. 정치적·역사적 무게를 지닌 문제작들로 명성을 얻은 황석영씨가 2000년대 들어 연달아 발표한 3편의 장편에서 보이는 변화도 눈길을 끈다. 서영채 교수는 “황석영씨의 최근작들은 이전의 현실에 대한 중압감을 많이 떨어뜨리며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며 “신경숙이 종전의 작품과는 다른 스타일의 장편 ‘리진’을 발표한 것도 우리 작가들의 변화를 읽게 한다”고 말했다.

발표하는 소설마다 ‘불패신화’를 낳고 있는 김훈과 공지영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장르나 문체는 판이하지만 두 작가의 공통점은 취재를 철저히 한 후 집필한다는 점이다. 4월 12일 발간해 지난 5월 말 현재 벌써 10만 부를 훌쩍 넘긴 ‘남한산성’을 집필하기 위해 김훈은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집필에 7개월을 소요했다.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상위를 기록하며 영화로도 제작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지금까지 88만 부가 판매됐다. 공지영이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실제 사형수와 면담을 하는 등 면밀한 취재를 거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소설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또 있다. 한국의 문학시장이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는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인하대 국문학과 교수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층도 두텁고 소설을 쓰겠다며 신춘문예 등 신인등용문을 열심히 두드리는 문학지망생도 굉장히 많다”며 “현재는 일본소설을 비롯한 외국소설이 국내 소설 베스트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한국소설이 우리 독자의 욕구와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독자는 돌아온다”고 확언했다. 최 교수는 덧붙여 “작가들은 지금 한국 독자들이 왜 외국소설에 매료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우리 소설에서 어떤 부족함과 갈증을 느끼는지를 깨닫고 독자의 욕망을 작가 나름의 새로운 글쓰기로 충족해주면서 소설시장을 탈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소설이 도약하려면 작가들이 국내 시장만 겨냥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누가 번역하는가?). 이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고정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쓸 때 영어로 번역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출판칼럼니스트 박지현씨는 “소설 속 주인공의 생활양식도 그렇지만 문체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한 정교함과 국제성을 지향한 작가의식은 세계적인 ‘하루키 현상’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한 기고문을 통해 단언했다.(박주연 기자)

뉴스메이커(07. 06. 12) 한국 출판시장에 일본소설 러시

오쿠다 히데오는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신간 ‘면장선거’는 초판 3만 부가 1주일 만에 매진되면서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일제히 종합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진입했다. 바로 2쇄 2만 부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의 전작 ‘남쪽으로 튀어’가 2주일 만에 2만 질이 소화됐던 것에 비해 독자의 반응이 무척 빨라진 것이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남쪽으로 튀어’를 두고 “우리 문학 지형도에서 이만한 역량을 발휘하는 본격 문학가를 찾아볼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오쿠다는 이렇게 작품성마저 인정받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작가로 올라섰다. 한국에서 그의 출세작은 ‘공중그네’다. 이 책은 벌써 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미야베 미유키 등 전작 나올 태세

일본소설이 왜 이렇게 잘 나가는 걸까?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은 일본소설 붐이 마니아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소수의 작가에게 국한되어 있던 일본소설 출간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장르소설의 출간이다. 대중소설 작가로 분류되는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등은 거의 전작이 나올 태세이고 다양한 스타일의 추리, 판타지, 공포 같은 장르소설들이 줄을 잇는다.

일본 장르소설의 출판러시는, 인터넷 추리동호회 등에서 활동하던 마니아들이 출판편집자로 자리 잡으면서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이 있는 소설들을 선별하여 관심을 끈 덕으로 보인다”(‘마니아 문화-탐닉에서 창조까지’ <기획회의> 2007년 5월 20일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요시다 슈이치, 이사카 코타로, 가네시로 가즈키 등도 마니아층이 형성된 경우다. 이중 요시다 슈이치는 1만 부 정도의 독자층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 마니아층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마니아 열풍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도 일본만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듯하다. 일본문화가 전면 개방된 뒤 가장 많은 특수를 누린 것은 일본만화다.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결합함으로써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면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이자 산업이 아닌가?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65%를 점할 정도라니 이웃나라인 우리로서는 그 기세가 놀라울 뿐이다. 최근 주요 만화출판사들의 매출에서 일본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우리 만화는 그야말로 ‘구색’ 갖추기일 뿐 책으로 펴내봤자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아우성도 나온다. 이처럼 일본만화를 열심히 읽은 세대가 이제 성장해 일본소설 붐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일본 만화와 일본 소설의 인기는 영화와 드라마에까지 급속하게 번졌다. 마치 우리 문화 콘텐츠의 원천이 일본만화와 일본소설인 듯 여겨질 정도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드라마 ‘하얀 거탑’은 최근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경우다. 가타야마 쿄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원작인 ‘파랑주의보’,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원작인 ‘플라이 대디’처럼 일본소설이나 만화 가운데 영화의 원작을 찾는 일이 늘어났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또한 우리나라의 영화사가 영화 판권을 확보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전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원작자가 뜸을 들이는 형편이다.

과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 몇 사람의 스타작가에게 집중되었던 인기가 지금은 점차 많은 작가에게 분산되고 있다. 서점에 가보면 이 땅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이 소설들이 젊은 세대의 정서에 잘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만화 읽다 일본소설 마니아로

한국 출판시장에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에쿠리 가오리가 기반을 닦아가던 몇 년 전에 일본소설과 함께 인기를 끈 것은 인터넷소설과 카툰만화였다. 그러나 인터넷소설은 곧 기세가 꺾였고 카툰만화는 ‘파페포포’ 시리즈 등 몇 종을 제외하고 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세 유형의 공통점을 찾자면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분위기나 상상력을 매우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어보는 듯하다고 할까.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절대 빈곤과는 거리가 멀다. 물질적 풍요를 누렸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과외’를 받아서라도 채우면 된다는 것을 체감한 세대였다. 하지만 가슴 속으로는 끝없는 상실의 고통을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가족과도 떨어져 원룸에서 살고 휴대전화나 메신저 등 ‘1인용’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정치·경제·사회문제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늘 ‘관계의 쓸쓸함’에 젖어 있다.

앞의 세 유형은 이런 정서의 소유자들이 즐기는 장르였다. 일본출판계는 이런 독자를 의식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쏟아낸다. 대중소설에도 늘 상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권위’를 키운다. 최근에는 휴대전화소설, 즉 ‘겐다이 소설’ 문학상을 만들어냈다. 서점인들이 추천한 ‘서점대상’이란 것도 만들었는데 1~3회 대상 수상작은 모두 200만 부를 넘었거나 근접해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며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과 언론과 출판사가 연대해 끊임없이 화제작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런 작품들은 늘 영상과 함께 호흡하기에 생동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보는 소설은 늘 매도의 대상이 된다. 그런 매도가 결국 대중소설이라는 밭을 고갈시켰다.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는 소설은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은 늘 ‘부재’ 상태다. 최근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카스테라’의 박민규처럼 ‘21세기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마니아층을 형성해가는 작가도 없지 않지만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궁핍’이 결국 일본소설의 활개를 자연스럽게 조성한 것이 아닐까.(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뉴스메이커(07. 06. 12) '주례사비평’이 한국소설 죽인다

우리 문학, 또는 우리 소설에 활력이 사라진 이유로는 작가 못지않게 비평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인간적으로 친해진 호의적인 안목이 작품에까지 연장되어 이른바 끼리끼리 잘 봐주기의 행태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반응은 시큰둥한데 평론가들의 비평은 종종 호들갑이다. 중견 평론가 구룡모씨는(*구모룡씨다) “비평가가 시인·작가를 경배하고 그들이 생산한 작품을 무조건 예찬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의 문학적 장이 활력을 잃어가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비평권력’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구씨는 비평가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필요악’이라면서, 문제는 비평권력 자체가 아니라 권력의 바르지 못한 사용이라고 말했다.

“한국 작가들 자의식 너무 강해”

비평은 대상을 교육시키려는 태도가 아니라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 시비를 가려 작품의 진가를 밝히려는 태도다. 그러나 한국의 소설 비평은 비록 전부는 아니라 해도 종종 자기가 총애하는 작가를 띄워주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작가에게 영합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은 출판사의 매출 전략과 맞물려 한국 소설을 죽이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이다.

출판평론가 한기호씨 역시 한국 소설의 위기를 ‘비평의 신뢰성 상실’로 꼽고 있다. 그간의 한국 소설 비평이 작품에 대한 나침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덕담과 주례사로 일관하고 있는 비평가들의 발언을 신뢰했던 독자들이, 오히려 지금 한국 소설에 대한 불신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소설의 단편장르 집중현상도 위기의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우선 각종 문학상제도가 단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양대 문학월간지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이 수상대상을 단편 내지 중편으로 제한하고 있다. 역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황순원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역시 대상을 중·단편으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상도 적지 않다. 문학동네소설상, 한겨레문학상, 세계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삼성문학상 등 장편공모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상은 대체로 출간된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행본 출판’을 목표로 한 신인급 작가에 대한 공모의 성격이 강하다.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씨는 그 서글픈 결과를 이렇게 지적한다.

“작가들은 막상 장편소설을 쓰려다가도 잡지에서 단편 청탁이 오면 거절하기 어렵다. 문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잡지 편집위원들의 심경을 거슬렀다가는 그나마의 청탁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한다. 한편으론 중·단편에 주어지는 주요 문학상의 상금과 명예가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한다.”

한국 문단과 문학상제도가 단편소설에 편중됨으로써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장편소설의 미학적 혁신과 문학성이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소설 독자층의 변화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견해도 존재한다. 문학평론가 천정환씨는 현재 한국의 소설 독자층은 대단히 협소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지망생 그룹과 20~30대의 여성 독자들은 여전히 한국 소설의 유력한 독자층이지만, 1970∼80년대의 소설시장의 활황을 가능하게 했던 30대 이상의 남성 독자들과 소설에서 ‘재미’ 이상의 것을 추구했던 계몽독자 또는 지식인 독자들이 대거 소설시장에서 이탈해버렸다는 것이다. 소설보다는 역사 전기물과 인물평전류가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폭넓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71)는 작년 여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호되게 비판하며 한국 대학생들의 독서 성향을 질타했다. 유씨는 ‘현대문학’ 2006년 6월호에 기고한 ‘문학의 전락-무라카미 현상을 놓고’라는 글에서 대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노르웨이의 숲’(한국어판 제목은 ‘상실의 시대’)을 가리켜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씌어진, 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 지적했다. “무라카미의 소설은 작가가 이미 사회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상실했거나 예술적 포부를 가질 수가 없는 시대의 언어상품”이라는 것이다.

유씨의 이런 단호한 지적은 “지난 10년간 대학 초년생의 문학독서 성향을 조사”해 온 결과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맞닿아 있다. 인구 대비 대학생 수 전 세계 1위(1997년)라는 통계와 젊은이들의 문학적 교양의 결여 사이의 불일치를 겨냥해 그는 “그들(=젊은이들)이 매우 부실한 문학교육의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계간지 ‘문학수첩’ 2006년 여름호의 특집 ‘대학에서 문학은 살아남을 것인가?’도 유씨의 비판적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특집에서 다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학생들의 대중문화에의 쏠림 현상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의 경우 응답자의 37%인 24명이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교과목에 포함시켜주기를 바랐고, 게임시나리오와 장르문학을 원하는 학생도 15.4%인 10명에 이르렀다. 젊은이들이 자아를 확립하고 사회의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 성숙해가는 교양 형성의 장으로서 대학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유종호씨의 지적과 통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지적하는 한국 소설관도 음미해볼 만하다. 한국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인지 작가의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작은 얘기부터 풀어나갈 줄 몰라 무겁고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작가들이 ‘내가 작가요’ 하고 잘난 척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일본 소설의 ‘미덕’을 이렇게 지적한다.

“가볍고 밝고 유쾌하다.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으며 적당한 생각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삶의 본질이라는 무거운 주제보다 가족과 청춘, 성장기의 진통 등을 그려내는 테크닉이 뛰어나다. 전반적으로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서 양쪽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평론가 정호웅씨는 그러나 우리 소설이 길을 잃고 골짜기에 빠져 있다는 ‘소문’에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 소설의 자기갱신과 창조의 생명력이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 약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진작가들이 최근 쏟아낸 장편들의 가능성에 높은 평점을 매긴다. 김원일의 ‘전갈’, 조정래의 ‘인간연습’과 ‘오 하느님’,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한승원의 ‘소설 원효’ 등이 그것들이다.

이들 작품은 ‘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내걸고 추상화된 관념의 규정성을 해체하며 과거 진실의 포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 속에는 ‘현실 공간의 가상 공간화’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도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주제와 형식 탐구, 중견작가들이 새롭게 포착해내는 역사의 진실과 삶의 본질 탐구가 아직 한국 소설계의 희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한기홍 편집위원)

일본의 문고분 출판은 문학시장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일본 최대 서점 중 하나인 이케부쿠로 소재 준코도 서점의 문고분 전용 서가.

뉴스메이커(07. 06. 12) “출판마케팅이 일본소설 성장엔진”

지난해 교보문고의 연간 베스트셀러 소설 10위권에는 한국 작가의 소설이 3권밖에 올라가 있지 않다. 반면 일본은 최대 출판 도매상인 닛판(日販)의 연간 단행본 픽션 분야 베스트셀러 10종에 외국소설이 단 한 권도 없다. 소설 발행종수에서는 8.5 대 1.5, 매출 구성비는 8 대 2 정도로 일본소설이 외국소설을 압도한다.

이처럼 자국 소설의 경쟁력이 판이한 두 나라의 풍경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것일까. 먼저 양국의 소설 출판 현황을 보면 2005년 기준으로 발행종수는 2.5배(한국 3905종, 일본 9614종), 시장규모는 4배, 발행부수는 6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일본 인구가 우리의 3배 정도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차이다. 발행량 기준으로 한국인은 연간 2명이 1권꼴, 일본인은 1명이 1권꼴로 소설책을 사보는 셈이다.

일본소설의 강점은 작가와 편집자의 파트너십에서 출발한다. 한국 출판계에서 문예물의 경우 편집자의 역할은 대개 교정을 꼼꼼히 보는 선에 그친다. 창작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배려라기보다는,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와 작가의 소통 부재를 뜻한다. 반면 일본의 문예 출판사들은 소설 담당 편집자가 아이디어나 기획을 제안하기도 하고 집필 과정에서 매우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가 분업화되거나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읽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동업자적 결속이 강하다. 따라서 편집자가 출판사를 옮기면 작가도 그를 따라 출판사를 바꾸는 일이 많다. 문학출판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큰 것은 서양 출판계에서도 보편적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일본의 문고본 출판은 문학시장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단적으로 소설 발행종수의 절반 이상이 문고판이다. 일본에서 제일 큰 서점으로 비유되는 세븐일레븐을 필두로 문고와 잡지, 길쭉한 문고판인 신서(新書)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은 강력한 출판유통 채널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일반 도서의 평균 정가가 1200엔 수준인 데 비해 문학도서 평균가는 700엔대(6000원 수준)인 것은 문고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과 파격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소설이 4만 개 편의점과 열정적인 점원들이 일하는 1만8000개(한국은 약 3000개) 서점에서 판매된다.

나아가 마케팅 노력은 가상할 정도다. 눈에 띄는 것이 문학상 비즈니스인데, 최근에 출판사들이 새로 제정한 문학상만 보아도 그 다양성에 혀를 내두를 만하다. 외국어 번역출판을 전제로 내건 ‘오에 겐자부로상’, 거액의 상금과 편집자 심사위원 체제의 도입을 통해 문학상 형식을 파괴한 ‘소설대상’, 야후재팬이 주제를 제시하고 소설을 공모하는 ‘야후문학상’, 서점원들이 자체적으로 제정하여 베스트셀러 코스로 자리잡은 ‘서점대상’, 연애 이야기만 공모하는 ‘일본 러브스토리대상’, 영상화를 전제로 공모하는 ‘감동논픽션대상’, 작가의 조기 발굴을 위해 만 12세 이하 어린이만 응모 가능한 ‘12세문학상’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물과의 효과적인 연동전략이 두드러지는데, 대개 출판기업 스스로 상당한 투자·제휴를 통해 다매체 환경에 대응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열심히 사들이는 공공도서관은 우리보다 5배 이상 많고, 만화대여점은 많아도 소설은 대여하지 않는 저작권 보호 및 출판시장 재생산구조, 휴대전화 소설 히트작들의 잇단 출판화 성공 등도 일본소설의 생태환경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급속히 영역을 확장한 일본소설은 다양한 메뉴와 잘 짠 오락성이 강점이다. 하지만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 일본소설의 영향력을 지탱하는 것은 강력한 출판시장과 마케팅 시스템이다. 따라서 다양한 방식의 작가 양성과 전방위적인 소설 마케팅 체제 구축이야말로 일본 출판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이제 한국문학의 위기 돌파 논의는 문단 못지않게 한국 출판계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멀리 내다보는 출판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07.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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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6-0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김훈의 <남한산성>이 '대박'을 터뜨리는 걸 보면 30대 이상 남성 독자들이 시장에서 아주 이탈한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흥미를 갖고 읽을 만한 소설들이 '공급'되지 않는 게 문제이겠죠. 작가들이 자의식이 강하다는 건 저로선 그냥 일반론이 아닌가 합니다...

나비80 2007-06-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정환도 30대 남성 독자의 이탈을 지적하면서 그들을 사로잡을 걸출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남성작가 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더군요.

로쟈 2007-06-0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남성작가'라고 못박을 필요까지야.^^ 저로선, 나이/성별 불문으로 그냥 그런 걸 써주는 작가가 필요하다는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