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중국 작가 위화의 방한 소식을 접했었는데, 중국문학의 '제비 한 마리'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야흐로 중국문학의 ('봄'도 넘어서) '여름'이 도래할 태세이니까. 내일자 한겨레에 실릴 기사를 미리 읽어보니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출간될 중국소설만 30-40종을 헤아린다 한다. 거의 '옐로우 오션' 아닌가? 기본적으론 중국 '본격소설'이 최근에 유행을 탄 일류(일본문학)보다 진지하고 건강하다는 예단을 갖고 있는 터라 반갑긴 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문학도 더 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접해본 관련기사들을 이 참에 다 모아놓는다.

한겨레(07. 06. 07) 중국소설, 한반도에 ‘만리장성’ 쌓을까

<허삼관 매혈기>와 <살아간다는 것>의 작가 위화(47·왼쪽), 그리고 <쌀>과 <이혼지침서>의 작가 쑤퉁(44·오른쪽). <붉은 수수밭>의 모옌(52)과 더불어 중국 현대소설을 이끄는 삼두마차로 꼽히는 이들이다(*세사람의 공통점? 모두 장이모의 영화들 원작자들이다. 그 영화들이란 <붉은 수수밭>, <홍등>, 그리고 <인생>이며 각각 모옌, 쑤퉁, 위화의 소설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위화가 지난달 말 방한해 연세대와 서강대 등에서 강연을 하고 간 데 이어 바통을 넘겨받듯 다음주에는 쑤퉁이 한국을 찾는다.

두 사람의 한국 걸음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중국 소설 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 출간되어 중국에서 160만부가 팔린 위화의 화제작 <형제>(전2권, 휴머니스트)가 이달 중에 번역 출간되며, 지난주에 나온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아고라)에 이어 그의 신작 <푸른 노예>(문학동네)도 이달 안에 한국어판이 나온다. 이들에 뒤질세라 모옌의 소설 <생사피로> 역시 올 하반기에 창비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이 밖에 웅진에서도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올 가을에 내기로 했으며, 김영사의 계열사인 비채도 쑤퉁의 또 다른 장편 <무측천>을 비롯해 중국 소설 5권을 잇달아 선보일 계획이다. <빨간 기와>의 작가 차오원쉬안이 쓴 첫 성인용 장편소설 <천표>가 은행나무에서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고, 현암사에서 한사오궁의 중단편선집이, 문학동네에서 비페이위의 소설이 나오는 등 올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에 나올 중국 소설은 30~40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출판계에서 중국 소설이 일종의 ‘블루 오션’으로 취급되는 까닭은 크게 △90년대 이후 중국 당대 소설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활력 △일본 소설 등에 비해 저렴한 저작권료 등에서 찾아진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적 경직성과 80년대의 서구 모더니즘 추수에서 다같이 벗어난, 독자적인 서사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90년대 이후 대거 나타나면서 중국 소설이 문학적 다양성과 높은 수준을 아울러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한동안 특수를 누린 일본 소설의 거품이 꺼져 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작권료가 적은 중국 소설에서 ‘싸고 질 좋은 작품’을 찾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소설에 대한 이런 관심은 경제·경영 및 처세·실용서 분야에서의 중국 바람과 맞물려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 엔터스나 임프리마 같은 저작권 에이전시는 영미와 일본, 유럽 등을 망라한 종합 도서정보와 별도로 중국 출판정보만을 따로 모아 제공하고 있다. 캐럿 에이전시 같은 중국 전문 에이전시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형 베스트셀러 소설인 <사자개>(양즈쥔 지음)를 낸 출판사 황금여우의 방철 대표는 “경제·경영 쪽에서 선도한 중국 바람이 소설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 상하이에서 두 나라 문인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한·중 작가회의가 열린 데 이어 올 9월과 10월에도 한국과 중국에서 대산문화재단과 중국작가협회 주최로 양국 작가 10~20명씩이 참가하는 ‘한·중 작가교류’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출판·독서계의 중국 바람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국일보(07. 04. 11) 공지영, 中대표작가 위화 만나

한국과 중국에서 인기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1회 한중작가회의 둘째 날인 10일 소설가 공지영(44)씨가 중국의 대표 작가 위화(余華ㆍ47)를 만났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등 그가 쓴 책 다섯 권이 한글로 번역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소설가다. 두 사람은 2000년 위화가 성공회대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친분을 맺었다. 공씨는 <살아간다는 것>의 국내 번역본을 윤문하기도 했다.

▦공지영(공)=7년 전 처음 봤을 때 당신이 영어를 전혀 못해 대화하기 힘들었다.

▦위화(위)= 문화대혁명(이하 문혁) 시절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나와 동년배 작가들도 대개 영어에 서툴다.

▦공= <살아간다는 것>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인데 이렇게 경험이 다르구나 싶었다. 어떤 계기로 작품을 쓰게 됐나.

▦위= 중국 혁명, 대약진, 문혁 등 불안한 세월을 견딘 사람의 운명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처음엔 방관자적 입장인 3인칭 시점으로 쓰려 했는데 도저히 못 쓰겠더라. 그래서 1인칭으로 바꿨다. 덕분에 주인공을 단순히 고통받는 자가 아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그릴 수 있었다. 어떤 인생이든 나름의 기쁨은 있기 마련이니까.

▦공= 거의 10년 만에 소설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공백기가 길었는데.

▦위= 재작년 <형제>라는 장편을 냈다. 한국에서도 곧 출간될 것이다. 10년 간 산문이나 채 완성 못한 소설을 쓰며 지냈다. 인터넷 문화가 만개한 시대에 문학이 생산하는 픽션의 세계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침묵기를 거쳐 낸 결론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다.(웃음)

▦공= 나도 비슷한 고민으로 한동안 작품을 못 냈다. <형제>에서 독특한 창작 기법을 선뵀다는 얘기를 들었다.

▦위= 직접 읽어보고 확인하시라. 소설을 쓸 때는 늘 과거 작품을 잊고 새로운 표현기법을 추구한다. 설령 형식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해야 작품의 생명력이 강해진다. 이것을 축구에 비유하고 싶다. 축구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동작이 아니라 골을 넣는 일이다.

▦공= 단문 위주로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한다는 점에서 내 소설과 비슷하다.

▦위= 여전히 중국 문단을 지배하는 모더니즘 사조에서 이미 벗어났다고 자부한다. 형식주의에 구애받을 경우 작가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나는 외국 소설을 읽을 때 경향보다는 이야기, 인물 묘사에 집중한다. 자서전이나 평전에서 새로운 서술 방식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기도 했다.

▦공= 치과의사 생활을 5년 동안 하다가 작가가 됐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었나.

▦위= 그냥 병원 일이 재미 없었다.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운이 좋아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인정받았기 때문에 내면의 격정을 잃지 않고 계속 작품을 쓸 수 있었다. 만약 초기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다면 창작 동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 사회의 역동성이 나를 만든 측면도 있다. 문혁의 비인간성이 현재와 같은 물신주의로 변화하는데 단 4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공= 초판을 50만부나 찍는다는 게 사실인가. 대체 얼마나 많이 팔리기에.

▦위= 사실이긴 한데 중국은 한국보다 책 값이 싸다.(웃음) 공급이 풍부하지 않으면 금세 해적판이 돌기 때문에 충분히 찍는 측면도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100만 부 가량 팔렸다. <형제>는 70만~80만 부 정도이고.

▦공= 다음 달에 한국에 온다고 들었다.

▦위= 창작과비평사 초청으로 연세대, 서강대에서 강연 한다. 주제는 ‘문학의 상상력’이다. 중국 고전 중에 <수신기(搜神記)>가 있다. 이 작품에 따르면 비는 신선이 지상에 내려오는 것, 바람은 도로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란다. 비ㆍ바람이란 현실을 신선의 강림ㆍ승천이란 상상력과 결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문학의 전범이다.

▦공= 내가 선물한 나전칠기 필통은 맘에 드나.

▦위= 아주 아름다운 필통이라 아까워서 못쓰겠다. 어디 고이 모셔둬야지. 다음 달 방한 때 답례를 기대하라.

경향신문(07. 06. 02)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18)중국 문학의 귀환과 작가 위화

‘살아간다는 것’(푸른숲, 1997)의 중국 작가 위화가 왔다(*필자인 백원담 교수는 <살아간다는 것>의 역자이다). 연세대 인문학특성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문화 속의 상상’ 강연회에서 만난 위화는 최근 장편소설 ‘형제’를 발표한 후의 자신감 탓일까, 특유의 순발력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풍성한 문학 편람으로 주제를 논파하는 모습이 사뭇 중량감 있게 다가왔다. 위화는 문학적 상상력이란 통찰력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그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 통찰력을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그것으로 분명하게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성을 거론한 것에서 시적 긴장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역사적 상상력의 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마르케스와 보르헤스, 주로 라틴아메리카의 마환현실주의(魔幻現實主義)에 기대어 있던 전위(先鋒) 작가 위화가 루쉰식 현실주의 입지에서 통찰과 상상의 세계를 안아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와 중국의 신화 전설을 동일한 지평에 놓고 인류의 문학적 상상력의 자산으로 삼아 자유로이 넘나들며 하늘의 세계와 인간의 변신과 환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에 100여명의 청중들은 강하게 흡인되어갔다. 그런데 그 강력한 교감의 자장 한 가운데에서 어떤 비상(飛翔)을 감지했다면 나의 성급한 속단일까.

위화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패로 인한 팽배한 허무주의와 서구적 근대를 추수하기에 급급한 세기말의 중국에서 전 사회가 절망과 욕망이 변주되는 긴 터널 속을 통과하는 가운데 어렵사리 체득해낸 혜안 같은 것을 언뜻언뜻 비춰보였다. 물론 그 속에서 어떤 탈주를 꿈꾸는 간계 같은 것을 읽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맞뚫림 혹은 회통의 가능성을 보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와 현실의 한 단면에 스며들어 해체를 일삼거나(포스트모더니즘) 잠입적 관주(신사실주의)가 아니라 그 시공간의 연관을 관계의 미학으로 터득해내고 있으며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위화 한 개인의 성장이거나 위화한테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첨예한 문제 인식들을 담담하게 표출해내 온 일련의 중국문학 작품 속에서 이미 감지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한복판에 위화가 서있는 것이고, 위화를 비롯한 중국 작가들은 각기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며 길을 찾아나서고 있는 와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위화는 세계적인 작가로 자신이 거론되는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세계적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중국 문학 혹은 자신의 문학적 기량 때문이 아니라고 한국 작가들과 문학에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중국 문학이 중국과 세계에 자기존재감을 나름의 관계성 속에서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1997년 그의 ‘살아간다는 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어떤 진감(震감)을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위화는 이후 ‘허삼관매혈기’에서 중국적 삶의 곤혹과 미망, 그러나 그 관계성의 미학이 펼치는 인간적 진경을 유감없이 펼쳐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위화의 문학세계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이문구 선생조차 위화의 예리한 역사통찰과 그 냉혹한 삶의 도정을 넉넉하게 풀어내는 위화의 넉살에 매료되었음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위화는 자신이 문학체험 속에서 겪었던 기상천외한 여정들, 그것은 개인적인 지극히 사사로운 일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한 시대의 형상임을 믿는다.

그의 글쓰기는 한 개인 혹은 가족 혹은 주변 인물들의 무수한 움직거림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소설세계는 개인적 삶의 여정과 역사와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로 연이어져 있다. 위화는 복수가 아니라 ‘복원(復原)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개인적 삶의 여정이 거대한 역사와의 대면 속에서 끈질기게 운명적 관계를 이어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현실과는 짐짓 무관한 듯한 단편 단편의 무수한 숙명적 삶들이 장편의 주변에 직조되어 있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휩쓸리면서도 무심하기 짝이 없는 처세적 ‘살이’ 혹은 ‘살아내기’, 그러나 위화의 장편들은 대다수 중국민의 보편적 삶에서 단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 토해낸 희로애락의 ‘중절(中節)’-‘화(和)’, 그것을 언제가 나는 ‘화’의 미학으로 갈파한 바 있다.(‘화(和)의 두 양상-최인석과 위화’, ‘중국현대문학’, 2000)

많은 한국의 작가들과 비평가는 위화를 통해 중국 문학과 현실적 교감을 해오고 있으며(이번 방문 과정에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간담회의 열기 또한 그것을 방증한다), 중국 관련 연구자나 중국 관련 학과 학생들의 경우 위화의 작품을 통해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경로가 되었다. 위화의 강연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한국위화소설동호회 회원들의 성원에 위화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거니와 한국에는 이미 많은 위화의 독자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문화 월경 혹은 팬덤 현상을 통해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소비 혹은 동아시아에서의 한류의 소비와는 다른 의미를 포착해낼 수 있다. 다름 아닌 정통문학작품을 통해 한국과 중국 간에 상호 이해와 소통의 통로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위화 또한 한국 작가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새로운 시야가 열렸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김정환과 공지영, 두 시인과 소설가의 만남. 그들은 위화의 무정부주의 성향과 문제의 예각화가 아니라 반복적 서사를 통한 체념의 미학의 문제를 지적했고, 위화는 그 비판 지점을 아프게 인정한 바 있다.

근 10년 위화는 산문 이외 새로운 소설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기 위한 산통의 시간은 비단 위화만의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는 곤경의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문학은 부단한 자기 전화를 통해 격동하는 중국의 현실과 대면하여 그 혼돈의 토양에 굳건히 뿌리 내리고 둔중한 흙의 무게를 비수처럼 뚫고 싹을 틔울 수 있는 적응과 절합의 기간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의 서문에서 속마음(內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운명과의 우정을 말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위화가 체념의 내재화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 자체의 아름다움과 환희의 세계를 펼쳐보임으로 인해 세계와 아시아의 작가들과 독자로 마주한 사람들이 서로의 내심을 토로하는 하나의 방법을 찾았다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위화는 ‘전쟁 아시아’를 ‘평상 아시아’로 복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최근의 중국 문학의 흐름을 물으니 위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시장통에서 야단법석이라고. 그는 시장 아시아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문학과 삶이 동시에 사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일까. 새 장편소설 ‘형제’에 대해 위화는 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이 그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의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백원담|성공회대 교수·중어중국학과)

07. 06. 06.

P.S. 찾아보니 2년전 오마이뉴스의 해외동향 기사에 위화의 <형제>출간과 함께 중국에서 '본격소설' 바람이 불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본격문학'이 이번에 대거 '수입'되는 게 아닌가 한다(우리한테 없거나 모자라는 물건을 들여오는 게 수입이다). 한국의 문학시장이 어느새 일본과 중국 문학의 각축장이 되어가나 보다...   

오마이뉴스(05. 11. 20) 중국, 하이틴 로맨스 시대 물러가나

 

▲ 위화의 신작 형제의 표지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전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그야말로 '살아가는 것'의 눈물겨움을 보여주는 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의 맨 처음 문장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富貴)'가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을 살아가야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94년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화해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의 작가 위화(45, 余華)는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등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중국의 현대 소설가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 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던 위화는 지난 8월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작 <형제(兄弟)>를 발표했다.

중국 출판계에 부는 본격 소설 바람

중국의 대형 인터넷서점인 주오위에(www.joyo.com)의 10월 베스트셀러 목록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인터넷 연애소설과 실용서 일색이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위화의 <형제>가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1위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또 본격문학은 아니지만 문학적 향취가 깊은 <토템 늑대(狼圖騰)>가 10위에, 그리고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이 14위에 올랐다. 이밖에도 <장아이링 전집(張愛玲典藏全集)>이 22위, 지아핑아오의 <천콩(秦腔)>이 45위로 베스트셀러 5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 인터넷문학의 대표작가 궈징밍의 1995년부터 2005년까지 표지.
이처럼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문학서가 자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 상반기만 해도 새로운 본격 문학 작품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중국 출판계 최대 화두는 한국의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와 중국의 청년 작가 '궈징밍'이었다. 중국 혁명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힘을 잃은 중국 문학은 근래 들어 인터넷이라는 복병과 마주쳐야 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수준 낮은 글들이 유포됐고 지난 수년 동안 중국 문학은 온통 '하이틴 로맨스' 일색이었다.

오랫동안 상업화 바람에 시달린 중국 문학계에 '본격 소설' 바람이 분 데는 앞서 말한 위화와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하진 않지만 '중국의 김지하'로 불리는 <천콩>의 지아핑아오(賈平凹)의 덕이 크다. 그 중에서도 십 년의 침묵을 깨고 활동을 재개한 위화는 단연 돋보인다.

10년 침묵 깬 위화, 특유의 페이소스로 선전

지난 8월 1일 출간된 위화의 신작 <형제>는 상편 18만 자, 하편 20만 자의 방대한 작품으로 상편에서는 문화대혁명을, 하편에서는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의 전작 <허삼관 매혈기>가 문화대혁명을 희화적으로 다뤘다면, <형제>는 리얼리즘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현대성이 갖고 있는 기괴성이나 전기성(傳奇性)도 두루 갖추고 있어 위화만의 느낌이 강하다.

<형제>는 본격문학이지만 위화 특유의 페이소스가 담겨 있다. 소설은 여자들의 엉덩이(사실은 더 은밀한 부분)를 보려다 화장실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둔 이광토우(李光頭)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의 내력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여자의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경찰서에 잡혀 온다. 그의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며 창피해 했지만 그가 본 것은 단순한 여자의 엉덩이가 아니라 동네의 모든 남자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린홍(林紅)의 것이었다. 광토우는 남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해 주면서 이것저것 얻어먹으면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꿈꿀 만큼 갑부가 된다.

이광토우와 그와 복잡한 관계에 있는 동생 쑹강(宋鋼)의 인생역정을 재미있게 풀어낸 이 소설은 금세 중국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문혁 이후에 부자가 되는 길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삶을 이광토우와 동생 쑹강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본격문학 부활 알린 '중국의 김지하' 지아핑아오

▲ 지아핑아오의 새 소설 <첸콩>의 표지
하지만 위화에 앞서 본격 문학의 부활을 알린 사람은 지아핑아오였다. 한국 문학계로 치면 '좀 과격한 이문구'나 '김지하'로 불릴 만한 지아핑아오의 대표작은 단연 <폐도>(廢都, 1993)다. 1994년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기도 한 <폐도>는 '중국판 오적(五賊)'이라고 할 만하다.

"공무원이란 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호의호식하고, 정경유착 모리배들은 아무리 투기를 해도 뒤탈 없고요, 경영자란 자들은 주색잡기를 해도 회사 돈으로 긁고요... 일류 작가는 정계에 붙어 고관대작의 참모 노릇을 하고요, 이류 작가는 사장님께 붙어 기업에 광고나 하고요, 삼류 작가는 뒷골목 출판사에 붙어 음란서적이나 집필하고요, 사류작가 너는 밥풀도 못 붙어 엉덩짝이나 홀랑 벗고 자위나 해라"- <폐도>의 한 대목

1990년대 중국에서 출간되기에는 너무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던 <폐도>는 아니나 다를까 초판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해 판매금지 조치 당한다. 하지만 '현대판 <금병매>'로 불리며 50여 종의 불법복제 서적으로 출간돼 1500만 부가 팔리는 신화를 낳았다. 이후 그는 <부조(浮躁)> <고노장(高老庄)> <오십대화(五十大話)> 등을 출간하면 나름대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지정 자신의 출세작은 앞에 두지 못 했다.

그러던 올해 초, 중국 정부는 <폐도>의 정간을 공식 해제했다. 이로 인해 지아핑아오의 문학 활동도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올초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신랑(www.sina.com)'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기도 한 그는 4월에 <천콩>을 출판했다.

<천콩>은 1952년생인 그가 자신의 고향이자 창작 활동의 원천인 샨시성 샹루오(商洛)와 샹루오의 이화지에(棣花街)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에 물들어 가는 중국 농촌의 변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본격문학인 데다가 농촌 문학이어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큰 별 '바진' 영면, 중국 본격문학 부활할까

▲ 1930년대의 작가 바진 모습
지난 10월 17일 중국 현대 문학의 큰 별 바진(巴金, 본명 리페이간(李芾甘), 1904~2005)이 영면했다. 5·4운동에 감화, 지식혁명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앞 자를 따 '바진'으로 개명할 만큼 혁명에 심취했다. 또 <게원>(憩園, 1944) <한야>(寒夜, 1946) 등을 발표하면서도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사령원으로 북한을 드나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현대사의 풍랑만큼 그의 작품 활동은 평탄치 않았다. 문화대혁명기에는 '니우꾸이(牛鬼)'라는 딱지를 붙이고 짐승 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작가협회 주석,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역임하는 등 재기에 성공했고 중화권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의 맨 처음에 이름을 올릴 만큼 문학적 성취도 이루었다. 특히 91세였던 1995년 <신은 없다(沒有神)>를 발표해 젊은 후배들을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진의 말년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중국 본격문학은 독자의 외면을 받았고 싸구려 인터넷 연애 소설들이 판칠 뿐이었다. 그나마 죽음 직전에 위화와 지아핑아오가 활동을 재개하고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목도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명부를 향하는 바진의 길을 안내해 줄 중국 본격문학의 부활은 과연 일시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인터넷에 밀렸던 본격문학의 르네상스를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지하의 바진이 안심하기에는 다소 일러 보인다. 위화나 지아핑아오 같이 대중적인 지명도도 있고, 작품성도 담보된 작가 층이 그다지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작가가 기존 중국 문학계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기에는 지원군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11월부터 귀여니의 신작 <아웃사이더>가 중국에서 출간되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궈징밍 같은 작가들도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타계한 바진의 뒤를 이어 중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위해 불을 지피기 시작한 위화와 지아핑아오. 이들이 어떤 문학적 성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조창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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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6-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잠시 '사람아 아 사람아' 연작이 나오면서 중국소설 빤짝 했던 것 같아요.
위화의 소설은 참 재밌게 읽었는데... 허삼관 매혈기 피 철철 넘치는 유머와 달리
단편들은 완전 엽기인지라 좀 놀랬었죠.
여기 언급된 다른 소설들,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07-06-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화의 책들은 대표작들을 갖고 있는데,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장이모우의 <인생>의 원작이라니까 대번에 감은 그려지지만... <형제>가 곧 나온다니까 기대되네요. 일본소설들은 '삶'의 냄새가 너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