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425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독재자 소설이자 총체 소설로 분류되는 바르가스 요사의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창비)에 대해서 적었다. <녹색의 집>과 함께 바르가스 요사의 초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현대소설의 걸작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독재자 소설로 <족장의 가을>과도 비교해봄직하다...
















주간경향(21. 05. 03) 라틴아메리카 ‘독재자 소설’의 모범작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특별한 장르가 ‘독재자 소설’이다. 과테말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를 포함해 이 지역의 걸출한 작가들이 각자의 독재자 소설을 갖고 있다. 자기 시대의 충실한 재현이 현대소설의 몫이라면 강압적 독재 시대의 경험이 독재자 소설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페루의 간판 작가이자 노벨상 수상작가 바르가스 요사도 독재자 소설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데, 국내에는 먼저 소개된 <염소의 축제>(2000)를 통해서도 그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을 30년간이나 철권 통치했던 트루히요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그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소설이다.


















흥미로운 것은 페루 작가가 도미니카의 독재자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다. 같은 스페인어권이라 그런 ‘품앗이’도 가능한 것인가 싶었는데, 초기작인 1969년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이하 <까떼드랄>)를 읽으며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작가가 30대 초반에 쓴 <까떼드랄>은 독재자 소설의 모범이면서 현대소설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색이 없어서다. <염소의 축제>는 <까떼드랄>에서 보여준 역량을 한 번 더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나 할까. 작품의 주된 배경은 1950년대의 페루다. 1948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마누엘 오드리아의 집권기로 독재는 1956년까지 이어진다. 작가는 그 8년의 시간을 억압적이었던 ‘어둠의 시대’로 기술한다.


독재정권의 각종 범죄와 인권유린도 문제였지만, 작가가 더 심각하게 본 것은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였다. 권력의 상층부부터 밑바닥까지 해묵은 부패로 조국 페루는 만신창이가 돼갔다.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 사발리타가 서두에서 던지는 질문이 ‘언제부터 페루가 이 꼴로 변해버린 걸까?’인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동시에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그의 방법은 당대 페루 사회 전체의 모습을 소설에 담아내는 일종의 ‘총체 소설’을 발명하는 것이다.

기본틀은 페루 부르주아 가정의 차남이자 신문기자인 산티아고와 그의 집 운전기사였던 암브로시오가 우연히 재회해 그들이 지나온 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아버지인 사업가 돈 페르민은 독재정권의 유력한 협력자로서 정권의 보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안총국장 베르무데스와 거래한다. 그리고 하층계급에 속하는 암브로시오는 처음에는 베르무데스의 운전기사였다가 나중에는 돈 페르민의 기사가 된다. 돈 페르민과 베르무데스가 권력층의 시점과 이해관계를 대표한다면, 대학생이 돼 반독재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기자가 되는 산티아고는 지식인을, 암브로시오는 민중을 대표한다. 이러한 기본 인물 구성과 그에 따른 연결망 그리고 실험적인 서사기법을 통해 작가는 오드리아 정권기 페루 사회의 전모를 그려내고자 한다.

기획에서만 보자면 <까떼드랄>은 작가가 모범으로 삼은 발자크의 ‘인간극’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인간극’은 당대 프랑스 사회의 전체 모습을 담은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자 한 시도였다. 19세기 소설의 충실한 계승자이기도 한 바르가스 요사는 리얼리즘적 세계관과 모더니즘적 서술기법의 이상적인 결합으로 읽히는 <까떼드랄>을 통해 그러한 총체성의 구현이 현대소설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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