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는 진작에 원서를 구입하고 번역본을 기다리던 책이다.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를 염두에 두면서 모레티는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를 제안하고 그 시범을 보인다. 세계문학과 세계문학사가 어떻게 서술될지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비껴갈 수 없는 책이다. 덕분에 나도 훨씬 용이하게 유럽문학사, 더 나아가 세계문학사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나의 방법론은 멀리서 읽으면서 몇 작품은 자세히 보는 식이다). 자세히 읽을 필독 작품의 목록을 마련해봐야겠다...

1991년 봄 카를로 긴즈부르그 Carlo Ginzisurg는 나에게 에이나우디Einaudi의 『유럽사 Storia d‘Eauropa』제1권에 들어갈 유럽 문학에 관한 글을 써줄 것으로 청탁했다. 나는 한동안 유럽 문학에 관해, 특히 역사적으로 독특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온 유럽 문학의 능력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무렵 막 읽기를 끝낸 한 권의 책에서 나는 이 글을 위한 이론적 틀을 발견했다. 그것은 에른스트 마이어 Ernst Mayr의 『분류학과 종의 기원 Systema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 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이소적 종 분화allopatric speciation‘ 개념은 특정 종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종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문학 형식을 종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여 유럽 지리학이 낳은 형태학적 변이들, 즉 17세기 비극의 분화, 18세기 소설의 발생, 19세기와 20세기 문학장literary field의 집중과 분산 등을 그려보았다. 유럽 문학‘이라는 단수형 개념은 서로 구분되면서 긴밀하게 연관된 민족문화들의 군도archipelago라는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이 군도에서는 문체와 이야기가 신속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이동하며 온갖 종류의 변형들을 겪는다. 창조성은 그것을 인위적이지 않고 거의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설명을 찾아낸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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