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동유럽문학 강의에서 첫번째로 다룬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열린책들)에 대해서 적었다. 차페크의 작품은 희곡 <R. U. R>을 포함해 다수 번역돼 있어서(철학소설 3부작 가운데 <평범한 인생>이 절판된 게 아쉽다) 더 읽어볼 수 있다...
















한겨레(21. 03. 19) 체코 국민 작가가 도롱뇽과 전쟁 치른 이유


동유럽문학의 강국으로 폴란드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더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것은 체코다. 바르샤바보다 프라하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일까. 근거가 없지도 않다. 국내에 전집까지 번역된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가 모두 프라하의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따져본다면 카프카나 쿤데라를 체코문학의 대표자로 간주하긴 어렵다. 프라하에서 태어나서 프라하에 묻혔지만 카프카 문학의 언어는 체코어가 아니라 독일어였고 자연스레 독문학 작가로 분류된다(체코 독자들은 번역본으로 카프카를 읽는 것이다). ‘또 다른 K’로 불린 쿤데라는 1970년대 중반 프랑스로 떠나서 나중에는 언어도 체코어에서 프랑스어로 바꾼 망명작가다. 게다가 그 자신이 체코 작가이기보다는 보헤미아의 작가, 혹은 중부유럽의 작가를 자임한다.


그렇다면 카프카와 쿤데라가 비워놓은 체코문학의 중심을 누가 차지하고 있는가? 다행히 별로 어렵지 않게 지목할 수 있는데, 바로 체코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카렐 차페크다. 189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지만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1918년, 1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하면서 그 역시 체코 작가가 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철학자이자 기자로서, 극작가이자 소설가로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고 체코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차페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로봇’이란 말을 탄생시킨 희곡 <로봇>(<R. U. R.>)이다. 장르는 다르지만 장편소설 <도롱뇽과의 전쟁>(1936)은 <로봇>과 주제적으로 연결되는 작품이다. <로봇>이 로봇이라 불리는 인조인간들의 반란으로 막을 내린다면, <도롱뇽과의 전쟁>은 인간의 하수인으로 착취당하던 도롱뇽들이 역시 인간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대목에서 끝난다. 독창적인 발상과 함께 두 작품이 공유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다. 인간 문명의 멸망을 다룬 유토피아 소설로 읽힐 여지가 있었지만 차페크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못 박았다. 현실의 반영임에도 우화적이거나 환상적인 이야기의 틀을 갖고 있는 것은 그가 포착하려고 한 현실의 특수성 때문이겠다.


흥미롭게도 차페크는 근대화의 진행과 함께 새롭게 대두한 인간의 형상에 주목한다. 군중이나 대중으로 불리는 집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것이다. 차페크가 염두에 두는 현대라는 시대는 산업화를 통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해진 시대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 동원되고 착취되는 존재가 작품에서는 도롱뇽이다(도롱뇽은 자연스레 제국주의시대의 흑인노예와 산업자본주의국가의 노동계급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규모, 극한의 생산능력, 기록적인 교역 물량’을 떠받치는 것이 바로 ‘양’(量)으로서의 인간이다. 그리고 도롱뇽은 양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비유이다. 이 도롱뇽은 온갖 건설현장에 노동력으로 투입되고 심지어 국가 간의 전쟁에도 이용된다.


하지만 인간 문명의 위업이 도롱뇽들 덕분에 가능해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반전이 일어난다. 대단한 번식력을 통해서 숫자가 급증하게 된 도롱뇽은 지적인 진화도 거듭하여 결국에는 대등한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을 압도하게 된다. 도롱뇽의 서식지를 위해서 인간이 사는 대륙을 점차 철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을 협박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게 소설의 결말이다. 인간 문명의 멸망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페크는 그런 암시만을 던질 뿐 결론은 유보한다. 대신에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성찰하도록 한다. 인간이 저마다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가 아닌 단지 양으로서만 존재하게 될 때 이르게 되는 파국에 대해 숙고하도록 한다. 물론 이 문제는 체코문학만의 주제일 수 없다. 차페크가 체코의 국민작가로서뿐 아니라 세계문학의 작가로서도 읽혀야 하는 이유다.
















P.S. 지난해가 <로봇>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초연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가 100주년이 된다).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나로선 로봇보다는 '양으로서의 인간'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는 소설 <압솔루트노 공장>과 <크라카티트>, 그리고 희곡 <곤충극장> 등이 있다. 차페크 읽기 목록에 대해선 나중에 시간을 내서 정리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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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9 0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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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9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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