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꼽을 만한 저자(몇명 된다)는 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 유제프 차프스키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가을에 알게 돼 책을 구해놓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일찍 번역본이 나왔다.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진행했다는(상황 자체가 놀랍다) 프루스트 강의록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밤의책). 영어판 제목은 <잃어버린 시간: 소련 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다. 영어판도 2018년에야 나왔으니 뒤늦게 소개된 편이다(두껍지 않은 평전도 나왔기에 구했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영원한 거장 마르셀 프루스트와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로 일컬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유제프 차프스키의 강의를 글로 옮긴 책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다.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이며 비평가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폴란드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동료들을 대상으로 프루스트 강의를 했다. 오로지 기억에만 의지해 이루어진 이 강의는 적지에서 비밀리에 기획하고 실행한 지적 저항운동, 곧 문학을 통한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에 기록된 순간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또 다른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 한 위대한 작가와 작품에 바치는 경의의 고백이다."
프루스트 강의로도 읽을 수가 있지만, 차프스키라는 새로운 저자의 발견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용소문학의 한 갈래로도 분류할 수 있을 텐데, 소련의 수용소 경험을 다룬 책으로는 (러시아 작가를 제외하고)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등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는 나치 수용소에서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며 견뎌낸 일화가 나온다. 그렇더라도 나치의 수용소와 소련의 포로수용소는 처우가 달랐다고 봐야겠다.
한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펭귄클래식판(<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이 완결된 상태에서 민음사판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나는 전체 7권 가운데 2권까지 강의에서 다뤘었다). 프루스트의 다른 책들도 소개되고 있는데, 단편집과 산문집, 시집 등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건 프루스트 전공자인 유예진 교수가 옮긴 <어느 존속 살해범의 편지>(현암사)다.
유예진 교수의 다른 관련서들도 프루스트에 대한 독서와 이해와 좋은 참고가 된다.
프루스트의 에세이(<독서에 관하여>)와 베케트의 <프루스트>, 그리고 가에타 피콩의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책세상) 등도 떠오른다.
조금 아쉬운 건 평전이다. 장 이브 타디에의 평전 <프루스트>가 나왔었지만 절판되었다(그의 시중을 들었던 셀레스트 알바레의 회고록 <나의 프루스트 씨>도 절판되었다). 사실 영어권에서만 하더라도 좋은 평전들 여럿 나왔는데 소개되지 않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새로 번역되는 김에 좋은 평전도 덧붙여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