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404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한국문학 강의에서 이달에는 박완서의 소설들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 여성문제를 다룬 대표작으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 대해서 적었다(<살아있는 날의 시작>과 <서 있는 여자>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 앞선 작품들이다). 90년대에 나왔던 여성소설 내지 여성주의 소설의 대표작 몇 권을 더 읽어볼 계획이다...
주간경향(20. 11. 30) 아들을 제대로 키우려 한 비혼모
영미 여성문학을 읽다가 자연스레 한국 여성문학에도 눈길을 주게 되었다. 한국에서 여성문학이 오랜 기원을 갖는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나혜석·김명순 등의 ‘신여성’ 작가들이 존재했지만 뚜렷한 계보로 이어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 여성 작가들은 주로 ‘여류’로 지칭되며 그 의미와 역할이 한정되었다. 소위 ‘여류문학’에서 벗어난 ‘여성문학’의 출발점으로 1960년대 이후 박경리와 1970년대 이후 박완서가 꼽힌다. <나목>(1970)으로 늦깎이 데뷔를 한 박완서는 특히 1980년대에 와서 여성 문제를 자각적으로 다룬 일련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는데,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1989)는 그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면서 1990년대 ‘여성주의문학’의 물꼬를 튼 소설이다.
대중성은 박완서 문학의 핵심 특징이고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도 예외는 아니다. 베스트셀러였을 뿐만 아니라 TV 드라마로도 두 차례 만들어져 인기를 누렸다. 그러한 대중적 반응의 바탕에는 주인공 차문경이 처한 상황에 대한 여성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가 있었다. 문경은 처음에 서른다섯의 이혼녀로 등장한다. 중학교 가정교사로서 직업과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3년 전에 만난 대학동창 김혁주와 진지한 만남을 가지면서 재혼을 꿈꾼다. 혁주는 첫 아내와 사별하고 홀어머니와 함께 딸아이를 하나 키우던 홀아비였다.
혁주 아내의 3주기가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문경은 그와 처음 정사를 갖는다. 그렇지만 예기찮게도 침대맡에 걸린 십자고상을 보고서 혁주는 문경의 무신경함을 비난하며 화를 낸다. “저런 것이 내려다보는 데서 태연히 정사를 벌일 수 있는 당신만큼 뻔뻔스럽지가 못해”라는 게 이유다. 사소한 것일지언정 둘 사이에 중대한 견해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경은 혁주의 비난을 받아들인다. 첫 결혼에 실패한 이유가 참을성이 없어서였다는 주변의 말에 세뇌된 탓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인내가 헛되게도 혁주는 더 좋은 조건의 여자와 선을 보더니 문경을 배신한다. 그런 이후 문경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혁주에게 알리지만 냉대받는다. 문경은 비혼모의 길을 선택하고 교사 자리도 잃는다. 그렇게 하여 얻은 아들 문혁을 혼자 힘으로 키운다.
문경과 혁주의 재회는 몇가지 사정이 꼬이면서 이루어진다. 혁주는 아름답고 순종적이면서도 이재에 밝은 두 번째 아내 덕분에 사업가로 성공한다. 둘 사이에 딸을 하나 더 두지만 내심 아들을 기다리던 차에 아내가 자궁암으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다. 혁주와 그의 어머니는 뒤늦게 문경의 아들을 떠올리고는 모자를 다시 찾는다. 문혁을 친자로 되찾아가려는 심사에서다. 아직 호주제가 폐지되기 이전 상황이어서 문경은 자신이 생모로 기재된다는 조건으로 아들의 입적을 허락한다. 그렇지만 한술 더 떠서 혁주가 친권자 인도청구권 소송까지 제기하자 그에 맞선다.
문경은 가족법에 명시된 ‘자의 복리’를 근거로 자신이 혁주보다 더 적합한 친권자임을 설득하고자 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여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능멸해도 된다는 그 친부의 권리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남자로 키우는” 것이 문경의 ‘가장 찬란한 꿈’이었다.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문경이 얻은 성과가 궁금하다.
P.S. 박완서 소설과 함께 떠올린 여성문학 작가는 이경자, 양귀자, 김형경, 공지영 등이다. <절반의 실패>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같은 당시의 화제작들이 지난해와 올해 다시 출간되었다. <82년생 김지영>에 의해 촉발된 여성주의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 덕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