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40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브론테 자매의 작품 강의 마지막 작품이 <아그네스 그레이>(1847)였고, 그에 대해서 간단히 적었다...


 















주간경향(20. 11. 16) 19세기 영국의 여성상 차분하게 묘사


브론테 자매의 막내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앤 브론테가 남긴 소설은 두 편이다.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언니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나란히 출간된 <아그네스 그레이> 한 편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인 점에서, 그리고 아그네스가 가정교사라는 점에서 <폭풍의 언덕>보다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닮았고, 또 자연스레 그와 비교된다. 소위 가정교사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당대에 상당한 주목을 받은 <제인 에어>나 걸작으로 평가받는 <폭풍의 언덕>에 비하면 앤 브론테나 <아그네스 그레이>는 덜 알려졌다. 영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세 자매 가운데 가장 덜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언니 샬럿의 회상에 따르면 에밀리와 달리 앤은 온화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힘과 열정은 부족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미덕의 소유자였다. 문학에 한정하자면 당대의 현실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과장없이 묘사한 미덕은 두 언니보다 앤에게 돌려져야 할 듯싶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무엇보다 현실의 사실적인 재현에 주력한다. 작품에서는 가정교사 아그네스가 처한 현실이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대외적인 식민지 확장 정책으로 남성들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다른 한편으론 결혼 비용의 상승으로 결혼 기피 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전체 여성의 30%가량이 독신 여성이었고, 이들은 절실하게 생계의 방편을 찾아야 했다. 교구 목사인 아버지와 대지주 집안 출신의 어머니(그렇지만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으로 인하여 모든 특권을 잃어버린다)를 두었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로 가계가 몰락하자 아그네스는 자청해 가정교사 일에 나선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대표적 직종이었지만 가정교사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우는 박한 편이었다. 보수로는 하녀와도 큰 차이가 없었던 가정교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소설은 아그네스가 가정교사로서 겪는 일을 일인칭 시점으로 자세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묘사한다. 제인 에어가 이상적인 여성상을 시범적으로 보여준다면 아그네스는 현실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제인 에어>에서는 제인이 결국 자신을 고용한 주인 로체스터와 결혼하는 반면 <아그네스 그레이>의 아그네스는 교구 목사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제인 에어의 극적인 드라마가 빠진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아그네스가 가르치기도 한 귀족 계급의 처녀 로잘리의 결혼 이야기다. 제인 오스틴 소설의 인물로도 등장할 법한 로잘리는 자신의 미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으로만 채워진 여성이다. 그는 아그네스와 같은 ‘하층’ 계급을 무시하며 부유한 귀족과 결혼하여 대저택의 안주인이 되기를 갈망한다. 자신의 계산대로 원하던 남자와 결혼하지만 로잘리는 뒤늦게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닫는다. 비록 도드라지지는 않더라도 로잘리라는 반면교사 덕분에 독자는 아그네스의 미덕에 공감하게 된다. 작가 앤 브론테의 미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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