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8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번 여름에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문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대표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강의에서 다시 읽은 김에 그에 대해 적었다. 셀라의 작품으로는 <파스쿠알 두아르테> 외에 <벌집>과 <두 망자를 위한 마주르카>가 더 번역돼 있다...


















주간경향(20. 08. 03) 스페인 내전 시기 귀족 살해범의 수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후 가장 많이 읽힌 스페인 소설이라고 소개되는 작품이 카밀로 호세 셀라의 데뷔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1942)이다. 스페인 내전 이후의 문제작으로 전후 소설의 출발점으로도 일컬어진다. 특이한 것은 작가의 경력인데 셀라는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의 반란군 편에 가담했다. 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국제연대하의 인민전선과 국민전선(반란군)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은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이후에 스페인은 프랑코의 철권통치 시대로 넘어간다. 셀라는 바로 그 프랑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일견 그러한 역사나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한 작품처럼 읽힌다. 연쇄 살인을 저지른 가난한 농민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은 동네 친구를 칼로 찌르더니 여동생의 남편이자 아내의 정부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마저 살해한다. 이력만 보면 사회로부터 완전한 격리가 필요한 범죄형 인간이다. 그렇지만 제목이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아니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인 것은 그의 범죄 행각의 배경에 가정환경이 있음을 시사한다.


포르투갈 사람인 파스쿠알의 아버지는 무시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 위인이었다. 성격이 사납고 거칠었으며 말대꾸를 참지 못했다. 어머니 또한 성격이 난폭하고 욕지거리를 잘해서 집안은 화목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재수 없는 놈이라든지 털보, 거렁뱅이 포르투갈 놈이라고 욕을 해댔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허리띠를 풀어서는 부엌에서 어머니를 지칠 때까지 족쳐댔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파스쿠알이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결과적으로 파스쿠알의 통제되지 않는 야만적 폭력성은 존속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다.

문제가 있는 건 파스쿠알의 마지막 범죄다. 1922년에 저지른 모친 살해죄로 수감돼 있던 파스쿠알은 스페인 내전 상황에서 출소한다. 그는 마을의 지주 돈 헤수스 백작을 살해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데, 그의 수기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백작을 추모하는 의도로 쓴 것이다. 파스쿠알은 돈 헤수스 백작을 죽이러 갔을 때 그가 “가엾은 파스쿠알”이라고 부르며 미소를 지은 사실을 회상한다. 파스쿠알의 지주 백작 살해가 내전기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한데, 중범죄자를 방면함으로써 공화국 정부가 그의 범죄를 사주하거나 방조했다는 의심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심은 자연스레 프랑코의 반란에 명분을 더해주는 의미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소설에서 셀라는 ‘무산계급(농민) 대 유산계급(지주)’의 투쟁이라는 내전의 대립구도를 ‘어머니까지도 죽인 범죄자 파스쿠알 대 자비로운 명문가 귀족’의 대립으로 바꿔치기한다. 이에 따라 지주들의 폭정과 착취에 대한 저항이라는 내전의 성격은 지워지고 자비로운 질서에 도전하는 야만적 폭력성이 부각된다. 청년 셀라가 인민전선이 아닌 국민전선에 투신한 것은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작품이 스페인에서 1946년까지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친프랑코적인 작가가 쓴, 백작 살해에 대한 파스쿠알의 참회를 담은 소설조차 검열에서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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