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86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돈키호테 성찰>(을유문화사)에 대해서 다루었다. 근대소설에 관한 성찰로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1920)과 견주어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테가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대중의 반역>인데, 아울러 소설론도 재평가될 만하다. 소론적 성격이어서 아쉽긴 하지만 소설론 노트는 <예술의 비인간화>에도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주간경향(20. 07. 20) 스페인 개혁을 갈망하며 돈키호테를 소환
20세기 스페인의 대표 철학자로 알려진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더 나아가 스페인의 유일한 철학자로까지 평가받는다. '철학자의 나라' 독일과 비교하면 두드러진 차이로 여겨지는데, 스페인을 포함한 지중해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화가 그 배경으로도 지목된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 대위는 괴테가 자주 명상에 잠기는 걸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은 절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늙을 뿐이죠."
그런 문화 속에서 철학자가 탄생했으니 오르테가가 예외인가 싶지만 사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스페인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작 그가 철학자로 성장하는 것은 독일 유학을 통해서였다. 특히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신칸트학파의 거장들로부터 사사를 받은 오르테가는 마르부르크를 칭송하며 "내 학문의 거의 전부를 빚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의 철학에 미친 독일의 영향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독일에서 귀국한 '젊은 철학자' 오르테가는 모교의 형이상학 교수로 취임하고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에 나서는데, 그가 31살에 펴낸 첫 저작이 <돈키호테 성찰>(1914)이다. 곧 '돈키호테'가 철학자 오르테가의 출발점이다.
왜 돈키호테인가? 신대륙 발견 이후 한때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스페인은 무적함대의 패배와 함께 대서양 패권을 영국에 넘겨주고 차츰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재기의 기회를 찾지 못하던 차에 1898년 미국과의 식민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스페인의 몰락은 절정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몰락의 상황은 젊은 세대 지식인들에게 강한 경각심을 불어넣었고 스페인의 개혁과 재건운동의 동기를 심어주었다.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98세대'이며 스페인 현대문학의 출발점이 된다.
98세대의 문제의식을 계승한 오르테가 역시 스페인의 정치개혁과 함께 의식과 문화 전반의 혁명을 강력히 갈망하며 돈키호테를 화두로 소환한다. 낡은 스페인을 부정하고 새로운 스페인을 대안으로 발견하려고 할 때 스페인이 낳은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불러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하느님, 대체 스페인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르테가는 돈키호테주의, 혹은 <돈키호테>를 통해서 읽어낼 수 있는 세르반테스주의에 대해 성찰한다.
오르테가의 성찰에서 중심 주제는 소설이다. <돈키호테>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최초의 소설'이라는 데 모아진다. 당연히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다. 소설 장르에 대한 성찰은 자연스레 다른 역사적 장르들과의 비교로 이어진다. 그의 성찰을 이끄는 두 가지 전제는 첫째, 예술의 본질적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라는 것과 둘째, 각 시대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해석을 낳으며, 그에 따라 각 시대는 특정한 장르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근대, 더 구체적으로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은 장르다. 그러한 현상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돈키호테>가 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인지 오르테가는 해명하고자 한다. 스페인의 장래에 대한 근심과 기대를 바탕에 깔고 성찰이지만 우리로서는 근대소설에 관한 흥미로운 철학적 성찰로 더 유의미하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