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트래블러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난해 가을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산책을 따라가본 일을 복기해보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20년 6월호)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산책


파리가 에술의 도시라면 런던은 문학의 도시다.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문학의 도시, 런던> 같은 책도 나온 걸 보면 그럴 듯하게도 여겨진다. 그 문학의 도시에서 지분을 갖고 있는 작가가 당연하게도 한둘이 아니지만 나로선 19세기 대표 작가로 찰스 디킨스와 20세기 작가로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게 된다. 1800년에 인구가 100만을 넘어서고 20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600만에 달하게 되는 런던은 소위 근대적 대도시의 표준이었다. 자본주의 근대의 변화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런던이었던 것이다.

이 런던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 근대소설의 성취였고 디킨스의 업적이었다. 그는 근대사회의 축도로서 19세기 중반 런던의 역동적인 사회상을 소설에 담았다. 작가로 불리지 않았다면 런던의 산책가로 기억됐을 법한 울프는 빅토리아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로 변화해가는 런던의 공기를 그려냈다. 지난해 가을 문학기행차 런던을 찾으면서 내가 염두에 둔 것이 그 두 가지였다.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필한 집(디킨스문학관)을 방문하고 울프가 산책한 런던의 도심을 걸어보기. 
















런던 거리를 헤매는 기쁨
런던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울프는 런던을 사랑한, 특히 런던의 거리를 사랑한 대표적 작가다. 울프를 읽고 울프와 함께 런던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녀와 함께 런던을 걷는다는 뜻이다. 길잡이가 되는 교본이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댈러웨이 부인>(1925)이다. 울프식의 '의식의 흐름'을 최대치로 보여준 모더니즘 소설의 고전이지만, 댈러웨이 부인을 포함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동선이 그 자체로 런던 산책의 교본이 된다.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 만난 지인이 "어딜 그렇게 가십니까?"라고 묻자 댈러웨이는 이렇게 답한다. "난 런던 거리를 걷는 게 좋아요. 정말이지 시골길을 걷는 것보다 낫거든요."  

'런던 거리 헤매기'라는 산문에서 울프는 "런던 거리를 헤매는 기쁨"을 탐닉하는 데 가장 좋은 시간이 겨울의 저녁 무렵이라고 했지만 댈러웨이 부인이 저녁 파티에 필요한 꽃을 사러 집을 나서는 건 6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이다(연도로는 1923년으로 1차세계대전의 상흔이 아물어가던 시점이다). 아침  공기를 들이키자마자 댈러웨이는 열여덟 살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소설 자체는 여름날의 단 하루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주인공은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3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든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매개가 돼 댈러웨이가 떠올린 건 런던근교 코츠월드의 부어턴에서 맞았던 열여덟 살 때의 아침이다.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고 공기를 들이마시면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댈러웨이 부인, 자신의 본질을 찾다
<댈러웨이 부인>의 첫 장면에서 미리부터 울프를 포함한 모더니즘 소설의 서술전략과 문학적 세계관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축소와 무력화로 압축된다. 모더니즘의 전사가 되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에서 핵심은 시간이었다. 어떤 서사이건 간에 시간을 축으로 해서 전개될 수밖에 없지만 리얼리즘 소설에서 시간은 단순한 형식이나 배경의 차원을 넘어선다. 유명한 정식화에 따르면, 근대소설에서는 이 세계의 본질이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 다르게 말하면, 세계의 본질이 시간적 성격을 지니며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이때 시간은 순간이나 영원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를 갖는 시간이다. 울프의 후기 소설 제목을 빌리자면 '세월'이 리얼리즘 소설의 시간을 구성한다. 즉 리얼리즘 소설은 세월 속의 변화 자체를 이 세계의 본질과 삶의 진실로 제시한다.















반면에 모더니즘 소설에서는 그 시간의 비중이 축소되거나 약화된다. 시간의 핵심 속성이 비가역성에 있다면(우리는 엎지른 물을 되담을 수 없다) 모더니즘의 주요 전략은 이 비가역성을 완화하거나 부정하고자 한다. 자연스레 모더니즘 소설에서는 세월보다는 순간순간의 경험과 느낌이 강조된다. 울프의 경우도 '존재의 순간들'을 음미하고 보존하며 최대화하고자 한다.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게다가 최근에 독감을 앓고 난 댈러웨이는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 그렇지만 소설의 말미에 이르게 되면 독자는 오랜만에 찾아온 옛애인 피터 월시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여전히 찬란한 존재감을 뽐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세월의 부식과 마모작용에도 불구하고 댈러웨이는 자신의 본질을 지켜낸다.

댈러웨이 부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소설의 화자는 그녀가 삶을 최대한 즐겼고, 즐기는 것이 그녀의 천성이었다고 말한다. 즐긴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존재의 순간들을 최대한 느끼고 기억하며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천성 혹은 재능을 댈러웨이 부인의 산책길을 밟으며 우리는 배워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하며 가을날 아침에 우리도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부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설의 서두에 댈러웨이는 웨스트민스터에 20년도 넘게 살아온 것으로 나온다. 웨스트민스터는 버킹검 궁전과 세인트제임스파크 인근의 동네로 댈러웨이는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건너서 공원으로 향한다. 

울프에서 디킨스까지, 런던 문학 여행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런던의 도심 녹지는 30%에 이르고 크고작은 공원이 3000개나 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하이드파크 대신에 세인트제임스파크를 가로지른 것은 그것이 댈러웨이 부인의 동선이어서다. 세인트제임스파크와 버킹검 궁전 앞을 지나 리젠트파크까지 이어진 일행의 워킹투어는 3개의 호수를 거치고 런던 도심을 가로지르는 여정으로 3시간 넘게 걸렸다. 댈러웨이 부인의 동선을 참고했지만 적어도 이날만큼은 댈러웨이보다 더 많은 거리를 걸어다닌 게 아닌가 한다(울프 자신도 종종 하루에 몇시간씩 런던 거리를 산책했다).


댈러웨이의 목적지인 꽃집은 본드 스트리트에 있었는데 도중에 그녀가 잠심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본 것은 해처드 서점의 진열장이다. 해처드 서점 바로 옆에는 큰 규모의 찻집도 있어서 일행은 자유시간을 가졌다. 소설에서야 그냥 지나치는 장소에 불과해서 주목하지 않았는데 피카딜리에 위치한 해처드 서점은 1797년에 문을 연 매우 유서 깊은 문학서점이다. 왕실의 문장까지 걸어두고 있는, 말 그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런던의 간판서점 같았고, 책진열과 배치도 품위가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서 찾은 곳은 디킨스박물관으로 찰스 디킨스에게 바쳐진 런던 유일의 문학관이다. 내막을 알아보니 그가 살았던 다른 집들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1837-39년까지 3년 못 되게 살았는데 당시 신혼의 디킨스는 세 자녀와 처제 등과 함께 이 집에서 살았다. 그가 사랑했던 처제 메리 호가스가 숨을 거둔 것이 1837년이었고 화제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발표한 것도 이 시기다.

1839년말에 디킨스 가족은 식구가 늘어난 데다가 수입도 늘어서 리젠트파크 쪽의 더 큰집으로 이사한다. 박물관은 4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층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실제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몄기 때문일 텐데 디킨스의 명성에 비하면 소박하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1870년에 사망한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된다. 박물관을 층마다 둘러보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한 일행은 디킨스박물관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시작한 런던 문학기행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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