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74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 부족주의>(부키)를 다루었는데, <타이거 마더>로 국내에서는 알려져 있지만 <불타는 세계>와 함께 <정치적 부족주의>가 이름에 값하는 책이라 생각된다(리뷰에서는 자세히 적지 못했지만 좌파 정치학과 자유주의의 공통점과 한계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주간경향(20. 04. 27) 집단 본능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미국의 실수


책의 부제가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집단 본능이 제목의 ‘정치적 부족주의’인 셈이다. 인간은 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부족 본능을 갖고 있지만, 그간에 정치학이나 정치 담론에서는 이를 부정하거나 배제해왔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로스쿨에서 강의하는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빚어낸 치명적 실수들을 돌아보고 동시에 미국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정치적 부족주의의 부정적 실상을 짚어낸다.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다룬 최근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계기는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이다.


알려진 대로 트럼프의 당선에는 미국의 백인 노동자계급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다. 미국의 엘리트계층이나 진보진영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부족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한다. 엘리트계층은 보통 부족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보며 세계시민적인 것을 예찬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예리한 지적대로 그 코즈모폴리턴적인 태도야말로 매우 배타적인 부족적 표식이다. 고학력자이면서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본 문화적 경험이 그런 태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의 빈민보다는 세계의 빈민에 더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생존을 위해 고투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백인들에게 위화감을 낳는다. “막대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은 보편적 형제애라는 개념과 부합하기 어렵다.”

애초에 이민자들이 건국한 국가로서 미국은 집단적 정체성 대신에 개방성과 포용성을 덕목으로 강조해왔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동화시키고 민족을 초월하는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버락 오바마처럼 인종적 소수자가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재선에 성공한 일은 미국의 특수성을 잘 말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슈퍼 집단’이다.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들이 하위 집단을 초월하는 포괄적인 정체성으로 한데 묶인다는 뜻이다. 다민족 구성에도 불구하고 포괄적인 국가 정체성을 갖는 것은 특이한 일로 ‘미국 예외주의’라는 관념을 갖게 한다. 문제는 그것이 대외관계에서 자주 착각과 실수를 낳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표적인 개입 사례인 베트남 전쟁과 아프간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 등에서 이들 국가와 지역의 정치적 부족주의를 간과함으로써 어떤 실패를 반복했는지 자세히 살핀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미인대회로 유명한 베네수엘라 사태가 있다. 1998년 차베스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차베스와 같은 피부색과 외모를 가진 사람이 미스 베네수엘라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미국은 그를 독재자라고 비난했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민주주의였다. 인종주의를 부인하면서도 백인 소수 집단이 경제적 부를 독점하는 사회에서 오랜 세월 차별받아온 다수 빈민이 자신과 외모가 같고 처음으로 그들을 대변하고자 한 차베스를 지지한 것뿐이다.

정치적 부족주의에 대한 과소평가는 이제 백인들이 점차 부족적 정체성에 빠져들고 있는 미국사회에 대한 이해도 가로막는다. 자신들이 위험에 처해 있고 백인이 차별당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백인들이 늘어나면서 백인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하게도 정치적 부족주의 극복의 모색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20. 04. 22.
















P.S. <정치적 부족주의>에 이어서 읽고 있는 책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한국경제신문)인데(원제는 '정체성'이다), 정체성 정치에 관한 가장 좋은 안내서라고 생각된다. <정치적 부족주의>도 그렇지만 간명하고 명쾌하다는 것이 책의 강점이다(트럼프의 등장이 집필 동기가 된 점도 공통적이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도 덕분에 다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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