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과 저조, 요즘 일상의 키워드로 바로 떠올리게 된 단어들이다. 써놓고 보니 동의어군. 원인은 더 찾아봐야겠지만 피로감(눈의 피로도 심해져 수면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이 줄지 않아서 일의 진척이 없다. 게다가 운도 없다. 오후에 북플에 써놓은 글을(자동저장이 되기에 즐겨 쓴다) 밤에 어이없이 날려먹었다. '지난오늘'을 소환했더니 임시저장된 글이 날아가버린 것. 같은 내용의 원고를 다시 써내려가다가 멈추고 한숨 잤다. 일어나서 심기일전 다시 쓰려다, 기분전환용으로 페이퍼를 적는다(기분전환? 페이퍼거리도 많이 밀려 있어서 스트레스다). 


개학이 며칠 더 연기되면서 일부 강의도 그에 따라 개강이 더 늦춰졌다. 학교 교실에서 아직 1학기가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봄학기 강의가 계속 표류중이다. 졸지에 한달 넘게 낭인 생활을 하는 기분이다(강의 낭인?). 좋게 보자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 사태로 여러 가지 문제를 재고해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그렇지만, 더 큰 충격에 빠져든 미국과 유럽(그리고 일본)은 고통스런 수습과정에서 지금까지의 관행과 사고방식에 일대 전환을 요구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방면으로는 우리가 가장 앞서간다는 느낌인데, 당장 두주 후 총선이 확실한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한번의 대선이 가져온 변화를 더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위한 밑바탕이 마련되는 결과를 기대한다). 방역뿐 아니라 정치문화에 있어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일이 꿈만은 아닐 수 있다. 
















개학 얘기가 나온 김에, 교육 문제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교육불평등 문제를 다룬 책들을 골랐다. 먼저,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두 사람이 교육문제를 다룬 책을 펴냈다. <기울어진 교육>(메디치)이란 제목으로 나왔는데, 원제는 '사랑, 돈, 양육'이다. '부모의 합리적 선택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가 번역판의 부제. 


"오늘날 교육은 더 완벽한 ‘스펙’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경쟁이 되었다. 부모는 다섯 살 난 아이의 커리어를 걱정하며 학교생활뿐 아니라 과외 활동, 놀이 친구 맺어주기까지 아이의 일상을 촘촘히 계획하고 관리한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되는 양육 전환의 현실은 아이를 느긋하게 키우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말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기울어진 교육>은 자녀에 대한 개별적인 욕망과 애정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양육의 문제를 경제적 변화에 대한 부모의 합리적 반응으로 설명하며, 불평등한 세상에서 사랑과 돈, 그리고 자녀 교육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교사나 학부모가 같이 읽고 토론해볼 만한 책인데, 500쪽이 넘는 게 흠이다. 미국의 현실이지만 우리의 교육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참고해볼 만한 책으로는 폴 터프의 <인생의 특별한 관문>(글항아리)도 있다. '아이비리그의 치열한 입시 전쟁과 미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이 부제. 초점이 미국 교육불평등을 비판하는 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입학사정관, 수험생, 명문대생, 교수, 입시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책이다. 다년간의 추적 인터뷰로 밝혀내는 미국 대학입시의 모든 것을 담았다"는 책이다. 


우리의 교육현장을 치밀하게 탐사한 논픽션이 따로 떠오르지 않아서 참고하게 되는데, 파키스탄 중산층 출신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셰이머스 라만 칸이 쓴 <특권>(후마니타스)도 그에 해당한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가 부제. 


"미국의 뉴햄프셔 주, 콩코드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 스쿨은 오랫동안 부유층 자제들만이 다니는 배타적 영역이었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4만 달러, 학생 1인당 책정된 학교 예산은 8만 달러, 한 학생당 기부금은 100만 달러에 달한다. 가난한 파키스탄 이민자였지만 외과의사로 성공한 아버지 덕에 이 사립학교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저자는, 그러나 그 시간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왜 누구는 이런 학교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데, 누구는 죽도록 노력해 성취해야 하는 일이 되는가? 왜 어떤 애들은 학교생활이 너무 편하고 쉬운데, 어떤 애들에겐 악전고투해야 하는 일이 될까? 왜 이런 엘리트 학교의 대다수는 여전히 부잣집 애들인가? 이들은 어떻게 기존의 특권을 그대로 수호하면서도 공정사회의 ‘능력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그는 졸업 후 9년 만에, 선생으로서 모교로 돌아가 엘리트 문화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관찰의 결과로 써낸 책인 것. 저명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엘리트 사회의 충격적 현재를 대가다운 솜씨로 그려 낸다"고 평했다. 역시나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에 유익한 독서거리다. 당장 공부와 입시에 내몰린 학생들이 읽을 수는 없겠고, 교사와 학부모가 (코로나사태로) 독서시간도 확보한 김에 읽어보면 좋겠다. 




   












아베의 일본은 훌륭한 반면교사로서의 의미만 갖지만(우리에게도 그런 지도자가 없었던 건 아니더라도) 읽을 만한 일본 저자가 아예 없지는 않다. 지난주에 가라타니 고진의 신작 강연집을 소개했지만, 우리에게 꽤나 인기가 높은 저자 우치다 타츠루도 신작이 나왔다. '우치다 타츠루의 교육론'으로 나온 <완벽하지 않을 용기>(에듀니티)인데, 무려 한국에서의 강연집이다. 소개는 이렇다. 


"우치다 타츠루의 내한 강연은 매년 시·도 교육청을 비롯한 여러 교육단체의 협력으로 한일 교육부문에서 교류의 장을 형성해왔다. 이 책은 2019년, 한일관계 경색 국면으로 매년 이어오던 초청 강연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기획되어 2020년 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학교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교육 위기의 시기에 출간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됐음에도 교실 문을 열지 못한 채 온라인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들이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얻기를 바란다."


책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이루어진 다섯 차례의 강연을 정리해서 들려준다. 역시나 강연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교사나 학부가 읽어보면 좋겠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한 뒤라 '학무모'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나는 교육 문제에 관심을 둔 '관계자'(무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고 치고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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