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없어지면서 일상의 루틴도 달라졌다. 반경 500미터 내 카페들을 주로 순례하면서 책과 자료를 읽거나 원고를 쓰거나 교정하는 일을 한다. 백팩에 며칠 들어있던 책이 정희진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교양인)인데 빼놓기 위해서 몇자 적는다.

몇가지 사실과 인상. ‘정희진의 글쓰기‘가 시리즈로 나오는 듯하고 이번에 두권이 나왔다. 지난해 통과한 박사학위논문(‘반미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도 아마 곧 출간되지 않을까(석사논문이 <아주 친밀한 폭력>으로 나온 것처럼). 그만큼 현재 가장 ‘대중적인‘ 여성주의 저자가 정희진이다. 글쓰기의 모델?

이번에 나온 책을 포함해 정희진의 글쓰기는 주로 서평이나 칼럼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서평이라 하더라도 책의 내용보다는 책이 준 인상이나 촉발된 생각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칼럼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내가 서평강의에서 권장하는 모델은 아니다. 누군가의 분류대로 서평에 객관적 서평과 주관적서평이 있다면, 정희진의 서평은 장정일의 그것보다도 더 주괸적이다. 그래서 그의 서평에는 책보다도 ‘정희진‘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서문에서 밝힌 대로 저자는 15년간 한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왔다. ˝출판사 교양인에 감사드린다. 지난 15년 동안 교양인, 한 출판사하고만 일해 왔다. 그들의 안목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나의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과 과욕을 오가는기분 장애(변덕)의 범퍼가 되어주었다.˝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1)출판사에 대한 신뢰, (2)그들의 범퍼 역할.

실제로 책에는 저자의 기분이 잔뜩 실려 있는 서평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우울증‘만도 아니어서 정확히는 ‘조울증‘이라고 해야겠다). 김영하의 <보다>(문학동네)의 한 대목에 감격하면서 토로한 이력. ˝나는 삼사십대, 이른바 한창나이에 ‘원래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우울증과 자살 연구(?)에 매달렸다. 이룬 것은 없고, 있던 것마저 다 잃었다. 어쨌든 우울과 죽음을 해명하지 않으면 다음 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읽고 만나고 앓고 써댔지만, 글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해명‘은 종료된 것인가? 아니면 그의 글쓰기는 그 연장이거나 대체인가?

몇가지 대목에서 물음표를 치고 페이지를 접어두었는데 한곳만 적자면 기형도의 사인에 관한 기술. ˝기형도(1960-1989년). 그는 스물두 살에 백혈병(혈액암)에 걸렸고 그로부터 7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건 금시초문인데(책으로 나온 자료에 그런 내용이 있던가?), 새롭게 알려진 진실인지 착오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누군가에게 그냥 전해들은 게 아닐까 추정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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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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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1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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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1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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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2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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