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오정희 소설에 관한 견적을 낸 김에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대해서도 정리해두려 한다. 정리라는 건 어느 만큼, 어떤 순서로 읽을 것인지 가늠해본다는 의미다. 다작의 작가여서 세 종의 전집이 현재 나와있는데(소설전집, 단편전집, 산문전집) 이 정도로 잘 정리된 전집이 나온 작가도 드물지 싶다.

나의 관심은 일단 소설인데 세계사에서 2003년(17권)과 2012년(22권) 두 차례 전집을 낸 바 있다. 현재 읽을 수 있는 건 물론 2012년 결정판이다.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이제 보니 두 전집 목록에 차이가 있다. 2003년판 전집에 들어 있던 <욕망의 응달>(1979)이 빠졌다(<꿈엔들 잊힐리야>는 <미망>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드라마화의 영향일까?). 결정판 전집에 빠진 만큼 박완서 작품이면서 동시에 지워진 작품이 되었다.

22권 전집은 15종의 소설로 구성되었는데, <엄마의 말뚝>만이 장편소설이 아닌 소설집으로 포함되었다. 유일한 연작소설이어서다(거기에 단편이 몇편 더 들어가 있다). 이 가운데 여성문제를 다룬 ‘여성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1980년대에 발표한 세 작품이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3)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내가 기억하는 건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이지만 그 시절에는 대수롭지 않은 대중소설로만 생각했다(중고등학교 시절 내게 박완서는 통속적인 ‘여성지 작가‘였다). 그리고 대학 초년시절 나는 ‘여성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내게는 여자형제가 없었고, 교회라도 나가지 않는 한 여학생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러고는 30년이 지났다.

어제 전집판 <살아있는 날의 시작>과 <서 있는 여자>를 주문했다(<그대 아직도>는 몇년 전에 구입). 박완서 강의에서 데뷔작 <나목>(1970)만을 다루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15종 22권을 다 읽거나 강의에서 다룰 여력은 없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은 한국여성소설에서 박완서의 지분을 확인하려는 것 뿐이다(90년대 들어서면 공지영의 소설들이 뒤를 따른다).

기억에 1980년대와 90년대 평단에서 박완서 소설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다. 단편들의 성과와는 별개로 장편소설들은 대개 통속적이라고 폄하되기 일쑤였다(사정은 다른 작가들도 비슷했다). 여성문제소설에 초점을 맞출 때도 박완서는 보통 ‘반면교사‘였다. 여성문제의 형상화가 도식적이며 진정한 여성해방과는 거리가 있다는 식. 그랬던 것이 이제 작가가 문학사적 연구대상으로 변모하면서 그 평가도 사뭇 달라지는 성싶다. 흠보다는 미덕이 치켜세워진다. 여하튼 실상은 어떠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세 작품을 읽어보려 한다.

또다른 분류로는 ‘중산층 소설‘이 있는데 <휘청거리는 오후>(1977)나 <도시의 흉년>(1979) 같은 70년대 소설들이다. 전체적으로는 박완서 소설의 조감도와 분류학이 필요하다. 전공자도 많으니 만큼 그들의 작업에 기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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