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지방강의가 연기된 덕분에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자랐던 수면을 보충하고 관심 주제의 논문을 몇 편 읽었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주제로 관심이 뻗어나가 있기는 한데 최근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추수밭)을 낸 걸 계기로 해서(나름대로는 정식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문학 100년에 관해 생각을 모으는 중이다(군사적 용어를 쓰자면 병력을 증강배치하고 있다).

물론 이 분야의 난점은 너무 많은 책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초점을 좁히고 선별할 수밖에 없는데 나로선 익숙하면서 믿음직한 길잡이의 손을 다시 잡게 된다. 바로 재작년에 타계한 비평가 김윤식 선생이 그에 해당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두번째 학기에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선생의 강의를 수강하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강의를 들었다(국문과 대학원에서의 강의까지). 도서관에서는 1970-80년대에 출간한 여러 논저들을 그래도 꽤 읽었다고 기억한다. 30여 년이 지나서 다시금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차이라면 이제는 내가 그때 선생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

나의 문학수업기에 대해서는(편집부에서 정한 이번 책의 제목에는 ‘강의‘ 대신에 ‘수업‘이 들어가 있는데 나로선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가끔씩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오늘 생각이 미친 건 1930년대생 비평가들과의 만남이다. 내게 중요한 이들은 다섯 명이다. 생년순으로 하면 이렇다.

이어령(1934)
유종호(1935)
김윤식(1936)
김우창(1937)
백낙청(1938)

이 가운데 직접 강의를 들은 비평가는 김윤식이 유일하고 다른 이들과는 책으로 만났다. 그러니까 독자와 저자로서. 한 세대의 연배차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50년 이상 살아온 시간대가 겹치니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들의 데뷔작은 이렇다.

이어령, 저항의 문학(1959)
유종호, 비순수의 선언(1962)
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1973)
김우창,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
백낙청,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978)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20대의 나의 생각으로 한국에서 비평을 한다는 것은 이런 책들을 읽고 이와 비슷한 책을 쓴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에 김윤식과 김현(1942-1990)이 공저한 <한국문학사>(1973)가 추가되어야겠다. 곧 한국문학과 문학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들 저자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들과 씨름한다는 뜻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읽고 배운 비평가가 김현과 김윤식이어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생각과 말을 흉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나서 나는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실도 확인한다. 가령 최근에 현대시 강의와 관련하여 읽은 유종호, 김윤식, 김현의 평론들에서 한수 배우기도 했지도 이견도 제시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대로는 지난 30년의 공부 성과다. 물론 이 분들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론과 작품론에 해당하는 강의는 매일같이 하고 있지만 문학평론이나 비평가에 대한 강의는 해보지 않았다(지젝 강의가 예외라면 한국 비평가로 한정하겠다). 다작의 저자들이라 이들의 전모를 강의에서 다루기는 어렵겠지만 대표 평론서나 평론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오래전에 주로 도서관에서 읽었던(구입한 책도 꽤 된다) 김윤식 선생의 책들을 중고로 상당수 구입했다. 주로 1970-1980년대 저작들인데 어디까지 다시 읽을 것인지 조만간 견적을 내보려 한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근대문학에 대해서 내가 어디까지 강의하고 어떤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가늠해봐야겠다. 30여년 전에 들었던 강의에 대한 보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