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푸시킨(푸슈킨)의 작품집이 새로 나왔다. <눈보라>(녹색광선)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초역은 아니고 새 번역본이다. 다섯 편의 단편을 엮은 단편집 <벨킨 이야기>가 <눈보라>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 이미 네댓 종의 번역이 있고, 그 가운데 강의에서는 민음사판이나 문학과지성사판을 주로 읽었다. 두 번역본 모두 <벨킨 이야기>에 <스페이드 여왕>이 합본된 형태인데 <눈보라>는 <벨킨 이야기>만 담고 있다.

˝<눈보라>에 실린 다섯편의 소설에는 복수의 화신,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 장의사, 역참지기 등 다양한 계급과 다채로운 사연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푸시킨의 문학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 기반하고 있기에 인간의 약점과 온갖 허물로 인해 빚어진 수많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과감한 낙관주의가 함께한다. 그의 문학은 그래서 소중하며 또 여전히, 어쩌면 지금 더 필요하다.˝

1830년 가을에 완성된 <벨킨 이야기>는 러시아문학사 최초로 예술적 가치를 갖는 산문소설집으로 평가된다(나보코프). 러시아 예술산문의 기점이 1830년이라는 뜻도 된다. 푸시킨과 생년이 같은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1829년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문을 열었던 것과 같은 시기다. 러시아문학사에서 최초이지만 유럽문학으로 시야를 확대하면 산문소설에 있어서는 러시아문학의 지체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 아직 장편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다.

이러한 약점을 상쇄하는 것이 작품의 주제적 통일성이다. <벨킨 이야기>의 다섯 작품을 이어주는 모티브와 주제는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가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1840)이다). 러시아 산문소설의 발전사를 살펴보려는 독자라면 필히 <벨킨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 번역상의 차이가 있는지는 새 번역본을 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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