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5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달에 니콜라이 고골의 주요작에 대해 강의했는데, 그 가운데 <타라스 불바>에 대해서 적었다(어린이용 책으로는 여전히 <대장 불리바>라고 옮겨진 작품이다). <타라스 불바>는 1835년판과 1842년판 두 가지 판본이 있는데, 분량과 내용이 상이하다. 1842년판은 확장판으로 분량이 두 배 가까이 되고 러시아 민족주의적 요소가 강화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2009년에(고골 탄생 200주년) 새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했다. 


















주간경향(19. 12. 02) 러시아 전사집단 카자크의 영웅서사시


‘카자크’는 15세기에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형성된 유목민 자치집단으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카자크란 말은 ‘자유인’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유래했는데, 경제공동체이자 군사공동체로서 자주권을 지켜왔다. 종교가 다른 폴란드의 핍박을 버텨냈고, 러시아의 지배에는 봉기로 맞서다가 18세기 말에 복속된 이후에는 용병으로서 영토 확장의 전위대 노릇을 했다. 러시아문학에서 카자크는 대표적인 전사집단으로 묘사되는데 그 출발점이 된 소설이 고골의 <타라스 불바>(1842)다(20세기 소설로는 숄로호프의 대작 <고요한 돈강>이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타라스 불바>는 편의상 소설로 분류되지만 내용상으로는 영웅서사시에 해당한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장편 <죽은 혼>에도 고골은 ‘서사시’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고골은 근대 장편소설로 이행하는 대신에 중세적 서사시의 세계로 고개를 돌리고자 했다. 장르로서 서사시는 소설과 분명한 대립각을 형성한다. 근대 장편소설의 핵심 요건이 근대적 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데 있다면 고골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주인공 대신에 중세의 전사적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고골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페테르부르크의 하급관리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영웅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타라스 불바>의 주인공 불바가 대표적이다.

불바는 키예프의 신학교를 마친 두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이들에게 진짜 교육을 시키려 한다. 그에 따르면 신학교에서 배우는 온갖 책들과 철학 따위는 헛것에 불과하다. “너희들의 보물은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는 저 넓은 초원과 좋은 말이다.… 이 칼 보이지? 칼이 진짜 너희들 엄마다!” 불바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진짜 카자크들이 모여 있는 자포로제로 향한다. 자포로제는 가장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카자크 집단의 거점이었다. 그렇지만 자포로제에서도 두 아들은 전투 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카자크들은 훈련이 아닌 실제 전투에서 경험을 쌓았는데 당시는 폴란드와 평화협정을 맺고 있어서 전투를 치를 기회가 없었다. 음주와 방탕으로 대신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전쟁이 없는 생활을 불만스러워하던 차에 폴란드의 한 지방에서 유대인들이 정교도의 교회를 점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자포로제의 카자크들은 이를 빌미삼아 출정한다. 오랜만에 전투를 치르게 된 카자크들은 온갖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불바의 두 아들 오스타프와 안드리도 전투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맛보며 도취된다. 그런데 카자크들이 한 도시를 포위하던 중에 차남 안드리는 폴란드 사령관의 딸이 신학교에서 만나 자신이 흠모하던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도움을 요청하는 그녀를 만나러 비밀통로를 통해 도시로 잠입한 안드리는 사랑에 빠져 아버지와 카자크를 배신한다. 폴란드 귀족처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리고 아들의 배신에 격분한 불바는 전투 중에 마주친 안드리를 유인해 직접 응징한다.

폴란드 편에 지원부대가 도착하면서 전황은 카자크에게 불리해지고 오스타프마저 체포돼 참혹한 고문 끝에 처형당한다. 불바는 처형장면을 직접 목도하면서 장남을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그는 카자크의 전력을 총동원해 다시금 폴란드군에 맞서다 포로가 되고 비장한 최후를 마친다. 아버지 불바와 두 아들의 영웅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서사시적이지만 <타라스 불바>는 시대착오적이며 근대사회 속에서 개인의 고투과정을 다룬다는 근대 장편소설의 공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타라스 불바>는 그 성취보다는 한계를 통해서 고골 문학의 의의를 평가하게 해준다. 


1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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