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한겨레에 실은 연재를 뒤늦게 옮겨놓는다(당연히 옮겨놓은 줄 알았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 대해 적은 것이다.

















한겨레(19. 11. 01) ‘적‘과 ‘흑‘을 소망했던 흙수저 청년 이야기

근대문학은 청년의 문학이라는 것을 스탕달만큼 여실히 보여주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는 것도 가능한데, 스탕달의 문학은 청년의 문학이어서 근대문학에 값하며 근대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스탕달의 청년 주인공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물론 <적과 흑>(1830)의 쥘리앵 소렐이다. 가난한 평민(목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형들의 구박이나 받던 처지였지만 쥘리앵은 라틴어 성경을 암송하는 뛰어난 지적 능력 덕분에 레날 시장댁의 가정교사가 된다. 근대란 그렇듯 각자의 능력이 타고난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나 인생역전의 기회를 갖게 해주는 시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쥘리앵의 인생역전은 어디까지 가능했던가.















포괄적으로 ‘근대‘라고 적었지만 <적과 흑>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의 왕정복고기다. 1789년 대혁명 이후 구체제가 붕괴되었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한 이후에 프랑스는 다시금 성직자와 귀족이 지배하는 낡은 체제로 복귀한다. 혁명을 통해서 신분사회는 유동적인 계급사회로 탈바꿈했지만 이 유동성에도 제한이 가해진다. 능력이 기회를 갖게끔 해주지만 이 기회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쥘리앵이 그 대표적 사례다. 쥘리앵 소렐은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그가 나폴레옹 숭배자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코르시카의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포병 장교를 거처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나폴레옹은 신분상승을 꿈꾸는 당대 청년들에게 탁월한 롤모델이었다. 쥘리앵 역시 그런 나폴레옹을 꿈꾼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들어선 왕정복고체제는 더이상 그러한 꿈을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적과 흑‘은 그런 상황에서의 선택지를 잘 압축하고 있다. 군복의 색인 ‘적‘이 군인으로서의 출세길을 상징한다면 사제복의 색인 ‘흑‘은 성직자로서의 출세길을 뜻한다.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군대에서의 경력을 차단당한 쥘리앵에게는 오직 흑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성경 암송능력으로 교구신부의 추천을 받아 가정교사가 된 그는 마치 나폴레옹의 군사적 원정을 흉내내듯이 레날 부인의 유혹에 나선다. 그를 짝사랑한 하녀의 밀고로 부인과의 관계가 탄로나서 쫒겨나지만 다시금 파리의 대귀족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됨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잡는다. 쥘리앵은 이번에는 도도한 귀족처녀 마틸드에 대한 유혹에 나서며 아주 어렵게 성공을 거둔다.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마틸드의 처지를 고려해 후작이 그에게 귀족 신분을 마련해준 것이다. 쥘리앵 소렐이 기사 라 베르네이로 재탄생하게 되는 과정이다.

사실 귀족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기병 중위가 되면서 쥘리앵의 인생역전 이야기는 일단락될 수도 있었다. 줠리앵 자신도 ˝내 소설은 끝났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소설은 레날 부인과의 관계를 폭로하는 투서가 후작에게 전달되자 격분한 쥘리앵이 고향에 내려가 레날 부인을 총으로 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스탕달은 단순한 신분상승의 결말 대신에 계급투쟁을 선언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적 영웅의 결말을 선택한다.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정에 선 쥘리앵은 자신의 진짜 범죄는 하층계급 출신이면서 감히 상류사회에 끼어들려고 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배심원석의 부르주아들에게 비굴하게 자비를 구하는 대신에 당당하게 죽음을 맞는다. 라 베르네이라는 귀족의 지위도 어렵사리 얻어낸 쥘리앵은 스스로를 ‘일개 농부‘로 지칭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행위를 통해서 쥘리앵은 진정 귀족다운 태도를 부르주아들 앞에서 과시한다. 덕분에 <적과 흑>은 신분상승담을 넘어서 계급투쟁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승격된다.


1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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