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학 내지 문학 속의 여성을 주제로 한 강의도 자주 하기에(내년 봄학기에는 19세기 영국 여성문학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페미니즘 관련서를 챙기는 편이다. 그래도 하도 많이 나오고 있어서 빠뜨리는 책도 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조안나 윌리엄스의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별글)다. 제목과 부제 ‘왜 우리는 젠더 전쟁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가‘가 저자의 문제의식을 어림하게 해준다.

˝저자 조안나 윌리엄스는 다양한 통계와 세밀한 분석을 통해 페미니즘이라는, 가장 현대적인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옛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사상을 해부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남자를 태생적인 악마이자 파괴자로 간주해, 여자들에게 지나치고 그릇된 피해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도리어 여성의 지위를 더욱 격하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성별 간 불만을 가중할 뿐, 영광스러운 페미니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관건은 현재 혹은 현단계 여성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리라. ˝페미니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긍정적인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래서 전선을 어떻게 구성할지의 문제.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가 여성을 향한 제안과 호소라면 최근에 나온 마이클 코프먼의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바다출판사)는 젠더 전쟁에 임하는 남성들을 설득하는 책이다. ‘젠더 평등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가 부제. 젠더 평등을 위하여 더 격화된 젠더 전쟁이 필요한지, 아니면 전쟁의 종식이 요청되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한 토론거리를 제공해준다. 소설과 영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생산적인 토론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어제 본 영화는 생기가 부족한 소설(나는 ‘자료소설‘이라고 불렀다)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있어서 사줄 만했다. 다만 간접광고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해 아쉬웠다. 거실과 침실 서가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만 꽂아놓은 것은 과도한 설정 아닌가. ‘상업영화‘라는 걸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던 건지).

다른 한편으로 크리스틴 앤더슨의 <여성혐오의 시대>(나름북스)는 여전히 ‘전쟁상황‘임을 웅변하는 책이다. ‘페미니즘은 끝났다는 모함에 관하여‘가 부제. ˝교육, 문화, 직업, 성적 지향, 사회 계급 등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서 성 평등이 달성되었다는 통념은 급기야 성차별의 희생자가 남성이 되었다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이 책은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개인주의가 페미니즘을 대체하고 안티 페미니즘 정서가 사회에 확산한 현실에서 현대 여성혐오의 본질과 함의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제1세계에서 도착한 두 권의 정세판단이 이처럼 상이하기에 독자로서도 어려운 판단에 몰리는 것 같다. 젠더 전쟁은 과연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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