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다시 읽기‘에서 <데미안>을 다시 강의하면서 헤세 문학의 경로를 다시 생각한다. 알려진 대로 <데미안>(1919)은 헤세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작품. 당초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만약 신인문학상(폰타네상) 수상자로 지명되면서 커밍아웃하지 않았더라면 로맹 가리가 나중에 그랬듯이 에밀 싱클레어의 커리어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주로 <데미안> 이후 1920년대 작품들부터 강의에서 다루다 보니 헤세의 1910년대 작품이 강의목록에서는 빠지게 된다. 초기작 <페터 카멘친트>(1904)나 <수레바퀴 아래서>(1906)에서 곧장 <데미안>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게르트루트>(1910)와 <로스할데>(1914) 같은 예술가소설과 <크눌프>(1915) 같은 방랑자 소설을 정확하게 자리매김할 수 없었다(보통 주요작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분명 대표작을 다섯 편 이내로 한정하면 빠지게 되겠지먄 헤세 소설의 진화과정을 짚어보려고 하니 필히 검토가 필요하다.

<게르트루트>는 오래전에 <사랑의 삼중주>라는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중학생 때니까 대략 37년 전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손에 들었던 것 같은데 음악 연주 장면이 나온다는 것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로스할데>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작품이고. <요양객>과 <동방순례>까지 포함하면 내게 헤세 읽기의 남은 과제목록이다. 요즘 교양소설이 어떻게 예술가소설로 전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강의하다 보니 <게르트루트>와 <로스할데>의 자리도 새롭게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게는 헤세 읽기의 마지막 퍼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