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4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를 하면서 첫 작품으로 다룬 체호프의 <벚꽃동산>에 대해서 적었다. 역사적 과도기에 대한 성찰로 여전히 음미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주간경향(19. 10. 21) 과도기 러시아 사회 지배계급의 교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낡은 시대, 낡은 삶과의 작별을 통해서다. 그렇지만 이 작별은 순간의 의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의 교체, 혹은 이행은 일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안톤 체호프의 마지막 장막극 <벚꽃동산>(1904)이 이러한 이행기의 문제와 과제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처음 무대에 올려진 시기가 러시아 역사의 과도기였고 작품의 줄거리도 벚꽃동산의 주인이 바뀌는 이야기다. 어떤 교훈을 음미해볼 수 있을까.


작가가 ‘4막 코미디’로 부른 이 작품에서 주요 배역은 각각 두 계급을 대표한다. 지주 계급의 대표로는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가 있다. 선량하지만 세상의 물정에는 너무 둔감하며 게다가 게으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속받은 영지를 바탕으로 무위와 허영의 삶을 살아왔다. 점차 재산을 탕진하고 채무가 늘어가는 바람에 가장 아끼던 벚꽃동산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막연히 친척의 도움만을 기대한다.

연극은 아들을 잃고 5년간 외국생활을 하던 라네프스카야가 영지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 가운데 상인 로파힌이 또 다른 계급의 대표자다. 아버지가 라네프스카야 집안의 농노였기에 스스로 농부라고 칭하지만 로파힌은 수완을 발휘해 재력가가 되었다. 전통적인 지주 귀족계급과 대비해 새롭게 부상한 중간계급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푸념하지만 현실의 물정에 대해서는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로파힌이 라네프스카야를 기다린 것은 그녀에게 벚꽃동산의 경매와 관련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다. 비록 가예프에게는 “천박한 구두쇠”라고 조롱받지만 로파힌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라네프스카야를 곤경에서 구해주고자 한다. 그의 제안은 벚꽃동산은 별장지로 분할하여 임대하면 꽤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채무도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벚꽃동산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긴 하지만 경제적인 이익을 낳지는 못한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버찌는 판로도 없다. 파산 직전에 놓인 라네프스카야 남매로서는 귀담아 들어볼 만한 제안이지만 이들은 수용하지 않는다. 임대사업을 위해 아름다운 동산의 벚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로파힌이 보기에 이들은 “경솔하고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사람들”이다.

결국 아무런 방책도 세우지 않아 라네프스카야 남매의 벚꽃동산은 경매에 부쳐지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로파힌이 새 주인이 된다. 벚꽃동산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확장해서 보면 러시아 사회의 지배계급이 교체된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체호프는 다소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로파힌은 벚꽃동산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가련하고 착한 부인’ 라네프스카야가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것을 원망한다. 그래서 희희낙락하기보다는 모든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로파힌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성실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론 교양이 부족하고 사랑에는 숙맥인 인물로 그려진다. 아직 제대로 된 주인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의 사회적 풍경을 ‘코미디’로 감싸고자 한 작가가 체호프였다.


1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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