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4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영국문학기행을 떠나는 아침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 그리고 도착해서 적은 리뷰라서 필립 페팃의 <왜 다시 자유인가>(한길사)은 문학기행과 무관한 유일한 책으로 이번 여행에 동행했었다. 저자의 공화주의와 비지배 자유에 대한 이해가 널리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른 책인데, 현단계 핵심과제로 부상한 검찰 개혁 역시 비지배 자유라는 공화주의 이념의 구현과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량상 그런 의의에 대해서는 적지 못했지만 행간에서 읽혔으면 싶다...














 


주간경향(19. 10. 07) 공화국 시민이 누려야 할 ‘비지배 자유’


<왜 다시 자유인가>라는 제목은 이 책의 초점이 자유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유를 다시 문제삼는 것은 자유가 제대로 이해되거나 향유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치철학자이면서 공화주의 이론가로 알려진 저자 필립 페팃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공화주의의 핵심 가치이자 이념으로서 ‘비지배 자유’를 자유의 이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자유의 개념을 새로 발명한 것은 아니다. 로마 공화정에 연원을 두고 있는 비지배 자유, 곧 비지배로서의 자유는 오래된 자유이면서 망각된 자유이다. 그것을 다시 복원하고 현실화하려는 것이 저자의 신공화주의 기획이다.


로마인들에게 자유란 어떤 것이었나. 노예제가 허용된 로마시대에 인간은 둘로 구분되었다. 노예와 자유인으로서의 시민이 그것이다. 주인은 자기 노예에 대하여 전권을 갖고 있었기에 노예는 주인의 사적 소유물에 불과했다. 반면에 시민은 어떤 지배자의 권력으로부터도 기본적 자유를 법에 의해 보장받았다. 시민이라는 말은 자유롭다는 말과 동의어였으며, 이때 로마 시민이 누렸던 자유가 비지배 자유다. 로마의 공화주의 전통은 모든 시민이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게 함으로써 어떤 시민도 다른 시민보다 더 큰 법적 권한을 지니지 못하도록 했다. 따라서 공화정 하에서 모든 시민은 수평적 관계에 놓인다. 비지배 자유는 그 자체로 평등을 함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의 이상은 기원후 1세기 로마 제정이 시작되면서 무너졌다.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야 마키아벨리에 의해 공화주의 사상이 다시 계승되고, 이후에 공화주의는 유럽 전역에서 개혁가와 혁명가들 사이에서 지배적 정치철학으로 자리잡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차츰 퇴조한다. 신로마 공화주의의 퇴조를 끌어낸 건 영국에서 새로 부상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다. 이 새로운 조류의 주창자들은 비지배로서의 자유 대신에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를 자유의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했다. 흥미롭게도 이 새로운 자유는 미국인들의 대의 권리와 독립에 대한 요구에 반대해서 영국의 식민 경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개발되었다. 이에 따르면 자유란 강제가 부재하다는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많은 자유에 대한 요구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자유관에 따르면 관대한 주인의 노예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주인이 관대해 아무런 실질적 간섭도 하지 않는다면 비록 노예라 하더라도 부자유를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비지배 자유와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자유다. 그 차이는 비지배 자유가 시민의 자유인 데 반하여 불간섭의 자유는 노예의 자유라는 데 있다. 즉 불간섭의 자유는 불충분한 자유이고 축소된 자유다.

필립 페팃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를 예로 든다. 입센의 이 문제적 작품에서 노라는 관대한 남편 토르발 덕분에 19세기 여성치고는 예외적인 자유를 누렸다. 남편은 노라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먹지 못하게 했지만 노라는 치마 안에 감추고서 얼마든지 몰래 마카롱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노라가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남편의 처분하에 놓인 노라는 제목처럼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일 뿐 결코 자유롭지 않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노라에게는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를 넘어선 그 이상의 자유가 필요하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선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사회적 조건, 그것이 공화국의 시민이 누려야 할 비지배 자유다.


19.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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