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4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인 <모두 다 예쁜 말들>(민음사)에 대해서 적었다. 강의에서는 이제 <핏빛 자오선>을 남겨놓고 있는데, '국경 3부작' 가운데 나머지 두 작품, <국경을 넘어>와 <평원의 도시들>은 현재 품절/절판 상태다. 강의에서 다루지 못하는 이유인데, 다시 나오면 좋겠다...
주간경향(19. 08. 19) 1940년대말 미국 목장소년의 성장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 같은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코맥 매카시의 대표작은 초기 걸작 <핏빛 자오선>(1985) 이후의 소설들이다. ‘국경 3부작’으로 불리는 일련의 소설인데, 전미 도서상 수상작인 <모두 다 예쁜 말들>(1992)이 그 첫 작품이다. 열여섯 살 소년이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지만 예순에 접어드는 작가의 원숙한 시선과 특유의 세계관이 독특한 문체에 실려 감동을 자아낸다.
매카시는 흔히 서부 장르소설을 고급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평과 함께 ‘서부의 셰익스피어’로 불린다. 이런 평가는 성장소설의 외양을 지닌 <모두 다 예쁜 말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40년대 말이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되는데, 주인공 소년은 목장에서 말들과 함께 성장하고 목장 사람들이 그렇듯이 목장이 천국 다음의 장소라고 믿는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로부터 목장을 상속받은 어머니는 바로 처분하고자 한다. 배우로서 사교적인 삶을 더 좋아하는 소년의 어머니는 남편과 오랜 별거 끝에 이혼수속까지 마친 상태이고 미성년자인 소년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상속문제에서 아무런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듯 소설의 앞장면에서 소년은 ‘그’라는 3인칭으로만 지칭된다.
근대소설의 주인공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난다. 가족은 해체되었고 그는 아무런 재산도 갖고 있지 못한 처지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올바로 서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찾기 위해서 방랑은 불가피하다. 방랑에 나서면서 소년은 비로소 존 그래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친구 롤린스와 함께 말을 타고 텍사스의 샌앤젤로를 떠나 멕시코로 향한다. 미국에서 목장은 수익을 내기는커녕 더 이상 현상유지도 어려울 만큼 세상은 변해가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존 그래디와 롤린스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 땅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블레빈스라는 소년과 인연을 맺게 된다. 롤린스는 이 인연이 불행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존은 소년을 선의로 대한다. 존과 롤린스는 멕시코인 대지주가 주인인 목장에서 일거리를 얻고 잠시 정착한다. 말을 길들이는 카우보이로서의 솜씨를 보여주고 지주의 인정도 받지만 목장주의 딸 알레한드라와 사랑에 빠지고 이것이 그를 재앙으로 내몬다. 블레빈스와 함께 둘은 말도둑 일당으로 몰려서 목장주의 묵인하에 경찰에 체포되고 악명 높은 감옥으로 가는 도중 블레빈스는 경찰에게 살해된다. 감옥에서 존과 롤린스의 운명도 블레빈스보다 낫지 않았다. 둘은 생지옥을 경험하고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알레한드라의 고모할머니가 존과의 결별을 조건으로 돈을 써준 덕분이었다.
존은 다시 목장을 찾아가지만 고모할머니로부터 비정한 세상과 인생에 대한 설교만 듣는다. 알레한드라와 어렵사리 재회하고 사랑을 확인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청년과 대지주 딸의 사랑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존 그래디는 분명 엄청난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서도 여전히 방랑자다. 그보다 앞서 돌아온 롤리스가 “여긴 썩 괜찮은 나라”라고 말하지만 존은 “하지만 나의 나라는 아니야”라고 응수한다. 여느 성장소설답지 않은 결말이면서 현대세계에 대한 작가 매카시의 부정적 전망을 읽게 해준다.
19. 0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