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밀린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이 교차하면서 여러 변이적인 일들까지 생산해낸다. '고립'을 자초하기 위해 도서관에 나가기 전에 그런 일들 몇 가지를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이 또한 시간과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이지만). 어제 충무로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지역서점에서 두 권의 책을 사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아먼드 마리 르로이의 <돌연변이>(해나무, 2006)이다. 거의 기억에 없는 책인 것으로 보아 어떤 이유에서든 출간 당시에 주목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모양이다(한겨레의 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42947.html).

 

 

 

 

'유전적 변이와 인체의 형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표지의 글이 선동적이다. "너 자신을 알라. 병리학적으로 네가 얼마나 연약한 거품인지를." 그런 문구만으로도 일단 눈길을 끄는 책이다. 소개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유전적/신체적 조건으로 태어나는 돌연변이들을 추적, 소개한 책이다. 눈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 기형아, 얼굴 전체에 털이 뒤덮인 다모증 가족, 외관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춘기가 되어서야 자신이 남성임을 깨달은 자웅동체의 수도원 여인 등등, 지난 역사상 등장한 기이한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지은이가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인체의 형성 과정의 신비이다.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변이가 일어나는 과정은 주로 자궁 안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고, 유전자 정보가 서로 엉키고 뼈와 살이 생겨나는 가운데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날 때부터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는 돌연변이를 평균적으로 300개 정도씩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즉 돌연변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도 돌연변이다!'가 되는 것이다.

어제 본 영화 <데리다>에서도 데리다의 가족이 '재키'(자크 데리다의 애칭이다)에게 가졌던 놀라움이  큰형인 르네 데리다의 입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데, 전혀 지적이지 않은 집안에서 세계적인 철학자가 배출된 것에 대해 그는 '커다란 수수께끼'란 말로 표현했다. 비록 어머니가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철학쪽과는 무관한 책들이었고 아들의 책을 그녀는 한권도 읽지 않았으며 이해할 수도 없었다(나중에 가족들은 모두 데리다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유명한 철학자가 된 것인지 경이로워했다). 그야말로 철학의 '철'자도 들어있지 않은 집안의 돌연변이가 데리다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체적 형질뿐만 아리라 지성(지적 능력)에 있어서도 '돌연변이'라는 게 엄존하는 듯싶다.

'개의 심장'을 가진 합성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불가코프의 소설 <개의 심장>(열린책들, 1998)의 표현을 약간 비틀어서 말하자면, 스피노자의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대단한 지성의 여성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우리 모두가 차여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패배하는 우연성의 게임"이기 때문이다(불가코프의 소설은 이것이 사회공학에 함축하는 바를 따져묻고 있는 풍자소설이다). 그리고 그게 '인간'이다. 돌연변이로서의 인간.

르로이의 <돌연변이>보다 1년 늦게 나왔지만 국내에는 1년 먼저 소개된 에른스트 피셔의 <인간>(들녘, 2005)에도 <돌연변이>의 내용이 소개돼 있다. "인간의 탄생과정은 경이롭지만 몹시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한 위험은 부모와 의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고 이제는 유전학자들도 그 위험성을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유전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새로 만들어지는 배아의 게놈에는 부모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수백 가지의 변형(돌연변이)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돌연변이 대부분은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지만, 그 중 몇 가지는(아마도 세 가지나 네 가지는) 단백질(효소)의 작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돌연변이를 겪는다. 그러므로 돌연변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들은 모두 돌연변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르로이는 2004년에 출간된 <돌연변이>에서 이런 사실을 지적했다."(189쪽)

책이 '돌연변이 사례집' 정도였다면 굳이 손에 들지 않았을 텐데, 젊은 진화생물학자의 이 첫번째 책에 대한 호평들이 결국엔 마음을 움직였다. 결정적이었던 건 바로 뒷표지에 씌어진 매트 리들리와 리처드 포티의 추천사.

"겉보기에 기괴하거나 뒤틀린,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괴물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인체의 성장에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르로이는 역사와 최신 유전공학을 세심하게 연구하여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가 <게놈>, <본성과 양육> 등의 저자 매트 리들리의 추천사이고, "<돌연변이>이는 최신 발생생물학과 유전공학을 통하여 인체의 경이를 과학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비정상은 정상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이며, 돌연변이는 성장과 발생의 미묘함과 경이로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준다. 르로이는 아주 훌륭한 작품을 일궈냈다."가 <살아있는 지구의 역사>, <생명> 등의 저자 리처드 포티의 추천사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주로 친구 따라 강남가는 편이다...

07. 04. 15.

P.S. 나는 집안에서 유일한 '도서애호증' 환자이다. 더불어 철학서들의 유일한 독자이다. 아마도 나의 '돌연변이성'은 그런 데 있는 듯싶다. 더불어, 내성적인 성격에 남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 아빠와 달리 모든 '발표'에 열성적인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부부는 간혹 "얘는 도대체 누굴 닮은 것일까?"를 궁금해 하는데, 그러한 '돌연변이'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면 되겠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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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5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5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5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15 22:33   좋아요 0 | URL
m님/ 일부러 미리 공지하지 않은 건데요.^^; 그리고 목요일엔 선약이 있습니다. 5월 중순에 한번 시간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h님/ 참고하겠습니다.^^
움님/ '돌연변이의 확장형'이라고 이름붙이겠습니다.^^

2007-08-09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