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평론집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강유정의 <오이디푸스의 숲>(문학과지성사, 2007)과 유희석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창비, 2007)이 그 나란한 책의 이름들이다. 연배상으로는 10년 터울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이 첫 평론집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강유정씨는 데뷔 2년만에, 그리고 유희석씨는 데뷔 10년만에 그간에 발표한(혹은 미발표한) 글들을 모아펴냈다. 비평적 지향과 입지는 다르더라도 한 언론의 표현을 빌면, '젊은 피'로서의 역할을 기대해보게 만든다(유희석씨는 40대의 나이이지만 창비쪽 스타일을 고려하면 '젊은 피'란 표현이 무색하진 않다).

먼저, <오이디푸스의 숲>은 "2005년 데뷔 후 문학과 영화, 문화 전반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평론가 강유정의 첫 비평집이다. 지난 2년간의 활동 중 한국 문학의 흐름과 작가론을 중심으로 한 20여 편의 글을 묶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재작년 신춘문예 3관왕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단했고(관련기사는 http://www.korea.ac.kr/webzine/KF4S02T02F00-view.jsp?idx=209783&page=3&search1=&search2=) 이후에 주목받는 만큼이나 활발한 행보를 보여왔다.

개인적으로 2005년 2월 1년간의 모스크바 체류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한 모임자리에서 처음으로 '강유정'이란 이름이 호명되는 걸 들었었다. 마치 '살아있는 전설'처럼. 외지에 있었던지라 내가 체감할 수 없었던 '경악'을 그이들은 연초에 경험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각인된 '강유정'이란 이름은 개인적으로 '장윤정' '채연' 등 연예인들의 이름과 나란하다. 모두가 '당신이 없는 사이에' 스타가 된 이름들이다(나는 공항에서 딸아이가 '어머나'를 흥얼거리는 걸 들었고, 집에 와서 TV를 틀어보니 '채연'이란 이름의 생소한 가수가 춤추고 있었다). 차이라면, 두 연예인과는 달리 비평가는 잠시의 휴지기도 없이 무소의 뿔처럼 진군하고 있다는 것. 그의 비평 속에서 '문학의 위기'는 그저 풍문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네 부로 나누어진 이 비평집에서 저자는 "2000년대 문학, 그 새로움을 향한 깊은 애정과 기대 뿐 아니라 사뭇 예리한 시선으로 동시대 문학의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다."고 소개된다. 2000년대 한국문학의 근황이 궁금한 독자라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명석하고 유창한 화법의 가이드와 함께 '오이디푸스의 숲'으로 떠나보시길(참고로, 영화평론가 강유정의 글들은 주로 필름2.0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최근 리뷰로는 <타인의 삶>에 대한 것이 있다.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385 참조. 한편 생각해보면 비평가란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닐까?).

영문학 전공의 평론가 유희석이란 이름을 내게 각인시켜 준 건 데뷔평론(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인 '보들레르와 근대'이다. 외국문학에 대한 비평으로도 평론가로 데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파격으로 여겨졌고 신선했다. 그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이번 평론집에 실린 글들도 절반은 서구문학과 문학론에 관한 것이다. 특히나 프랑코 모레티(프랑꼬 모레띠)에 관한 글도 두 편 포함돼 있어서(영미문학연구회에서 펴내는 학술지 <안과 밖>에서 이미 읽은 것이기는 히자만) 구내서점에서 바로 책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외국문학 전공자로서 어떤 자기몫을 찾을 수 있을지 유익한 시사가 되어준다.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안팎'이란 부제에서 '팎(밖)'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 '바깥(의 문학)'이다. 나는 한편으로 그것이 '문학의 바깥'을 향하는 것이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바깥'은 공시적이면서 또한 통시적이다. 문학을 넘어선 문학, 문학의 종언 이후의 문학, 사회적 주목을 받거나 말거나 이 시대 비평의 몫은 점점 많아지고 무거위지는 듯하다...
07. 04. 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