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작가와 문학사이'는 소설가 천운영(1972- )씨 편이다. '바늘'이란 데뷔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작가인데 기사에서도 '바늘'은 이 작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제시돼 있다. 몇몇 단편들을 더 읽어보았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편인 <잘가라, 서커스>(문학동네, 2005)를 아직 소장하고 있지 못하다. 서커스 구경을 갈 기회가 언제 생기려는지(이 작가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아마도 그녀의 '카니발리즘'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말미엔 첫 소설집 <바늘>(창비, 2001) 출간 이후에 진행된 인터뷰를 창비홈피에서 옮겨놓았다.

경향신문(07. 04. 07) [작가와 문학사이](13)천운영-‘바늘’로 우리를 자극하다
천운영은 ‘바늘’의 작가다. 특히 2000년도 신춘문예에 당선된 ‘바늘’이라는 단편은 바늘에 관한, 바늘에 의한, 바늘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은 이후 ‘원색의 고통과 절규로 점철된 사실화’로 상징되는 천운영식 소설을 직조하는 중요한 글쓰기의 도구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바늘은 여성적 도구로 인식되었다. 시대극의 여성들을 보자. 그들은 언제나 바늘을 들고 있다.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혹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느라,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자신들이 다소곳한 여성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들은 바늘을 든다. 바늘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적 여성상을 상징하는 수동적 도구로 동원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바늘은 ‘찌르고 꿰매는’ 동작에서 연상할 수 있는, 다분히 가학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능동적 도구다. 그리하여 이제 천운영 소설의 여성들은 더 이상 바늘을 바느질하는데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들은 문신사가 되어 바늘로 남성의 몸에 야만적인 상처를 내고 그 위에 자신의 욕망을 그려 넣는다. 그 순간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 같은, (중략)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바늘’)은 펜을 대신할 새로운 글쓰기의 도구로 탄생한다. ‘펜은 페니스다’(pen is penis)라는 가부장제적인 동어반복적 명제는 그 순간 부정된다.
그러나 천운영의 바늘로 글쓰기를 단순히 남성중심적 글쓰기를 부정하는 여성적 글쓰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바늘은 그 길쭉한 모양새 때문에 남성 성기의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멍 난 바늘귀 때문에 여성 성기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성적이되 강하지 않고 여성적이되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바늘로 글쓰기는 육체라는 텍스트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우리가 애써 부정하고자 했던 익명의 감각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도착적 글쓰기에 더 가깝다.

모든 욕망은 다 도착적이다. 그래서 모든 연애는 다 기괴하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욕망하지만 결코 사랑은 사랑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물고 핥고 빨고 삼키는 사랑의 행위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사랑을 충족시키려는 불가능한 몸짓인 것이다. 사랑의 대상을 삼켜버림으로써 완전히 합체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사랑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니 함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천운영의 바늘을 통해 감각되는 사랑은 그렇게 자기 상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상과 합체하고자 하는 욕망에 불타오른다.(‘명랑’의 주인공은 할머니가 죽은 뒤 유골을 갈아서 먹기도 한다.)
그래서 천운영 소설의 독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머물러온 삶과 질서의 세계 바깥으로 밀려난 낯설고 기이한 사랑의 감각을 체득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의 감각과 욕망은 확장되고 심화되면서 죽음과 무질서의 세계에 견인된다. 천운영의 바늘은 그렇게 우리를 낯선 감각의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도착적이되 도착적이지 않으며, 추하되 결코 추하지 않다. 천운영의 바늘에 찔림으로써 새롭게 눈 뜬 우리의 감각법에 따르면 말이다.

그러니 바늘을 든 작가 천운영을 두려워하지 말지니. 아무리 바늘에 찔려도 우리는 죽지 않으니. 물론 찔리는 순간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우리를 낯선 즐거움의 세계로 이끄노니. 고통을 동반한 쾌락의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할지도 모르니. 더불어 이 권태롭고 나른한 세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도 모르니. 그러니 천운영의 바늘로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심진경|문학평론가)
07. 04. 07.
P.S. 창비에서 가져온 아래의 인터뷰는 작가 천운영씨와 평론가 백지연씨의 대담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바늘'의 전문은 http://www.donga.com/docs/sinchoon2001/sub03_2_01.html 참조.

백지연(이하 백): 첫 소설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천운영(이하 천): 고맙습니다.
백: 등단과 동시에 주목을 많이 받고 활발히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등단한 다음해에 창작집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책을 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부담도 많이 될 것 같아요.
천: 부담이 많이 되죠. 작년부터 작품 발표는 계절에 한번씩 꼬박꼬박 했어요. 여덟편 발표했으니까요. 책 내기 한 일주일 전부터는 잠이 안 오더라구요, 부담이 돼서.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요.
백: 출간에 관련해서 인터뷰도 하고 책도 부치느라 요즘 바쁘시겠어요.
천: 조금 바빠요. 인터뷰 몇개 하는 것보다는 인사 다니는 것, 아는 분들께 책 부쳐드리는 것 그런 것 때문에요.
백: 현재 전업작가로 생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을 써서 원고료로 생계를 부담해야 하는 생활을 막상 시작하니까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천: 원고료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지요. 얼마전에 창작지원금 받은 것도 있고요. 처음에는 신춘문예 상금으로 몇달 버텼죠. 어떨 때는 원고료 나오기 전에 미리 필요한 돈을 쓰고 원고료로 막을 때도 있구요.
백: 작품을 쓰면서 평론가나 동료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을 들을 때가 있을 텐데요. 실제로 작품에 대한 일반독자의 반응을 직접 느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 신문에 「바늘」이 실렸을 때 팬레터를 몇통 받아봤어요. 그 작품에 문신 얘기가 나오잖아요? 교도소에 계신 분들이 자기한테도 문신이 있는데 그 작품을 읽고 감동받았다, 앞으로 꿋꿋하게 살아보겠다는 편지를 보내셨어요. 인터넷 문학 싸이트의 작가방 같은 곳에도 제 작품을 읽었다는 얘기들이 올라오구요.
백: 독자의 반응을 직접 실감할 때 기분이 어떠세요?
천: 처음에는 무작정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무섭더라구요. 발표한 것을 한편도 빼놓지 않고 읽은 분도 계세요. 게시판에서 제 작품이 실린 지면을 누군가 질문하면 제가 답하기도 전에 그 작품은 어디 언제 실렸고 다른 작품과 어떤 면에서 유사하다는 식의 답변을 올리는 분도 있어요. 그런 거 보면 놀랍고 겁도 나고 그래요.
백: 실제로 창작과정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쓸 때도 있습니까?
천: 요즘에는 좀 달라요. 어떤 독자들은 「바늘」을 비롯한 몇 작품의 강렬한 이미지들이 계속 등장하기를 요구하기도 해요. 그런 장면이 없으면 왜 이렇게 작품이 밋밋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분도 있죠. 도움이 되는 지적이기도 하지만 실제 쓸 때는 고정된 틀에 따르게 될까봐 의식하지 않습니다.
백: 창작활동을 구체화하게 된 건 아무래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니면서일 텐데요. 그 곳에서 문학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천: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서울예대에 들어갔죠. 서울예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함께 문학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계속 습작을 해왔던 것도 아니어서 친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친구도 얻었고요. 몇명이 모여서 모임 비슷한 것도 하고 그랬죠. 사실 최인훈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갔죠. 다른 분들도 많이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불행히도 제가 들어갔을 때에는 선생님이 안식년이어서 직접 못 배웠구요. 이제하 선생님께 문학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많이 얻었어요.
백: 지금 문단에서 가깝게 교류하는 작가도 있을 텐데요.
천: 조경란씨가 우선 친해요. 저는 언니라고 부르는데요, 언니 데뷔하고 제가 습작 계속하고 있을 동안 옆에서 봐주고 북돋워주고 그랬어요. 아마도 그 언니 없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백: 이제는 같은 위치에서 소설을 쓰니까 경쟁자이기도 하고 서로 자극을 주는 관계 아닌가요?
천: 언니는 등단 6년차잖아요? 저는 2년차고. (웃음)
백: 소설 공부하면서 선배 소설가들 중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누구죠?
천: 김소진의 작품에 한참 열광했었구요. 황석영의 단편소설이 주는 생생한 현실세계의 느낌, 성석제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활달한 입담을 좋아했어요. 좀더 위로 올라가자면 김유정의 단편소설들 아주 좋아했고요.
백: 본인의 소설과는 매우 다른 색채의 작품들을 좋아했군요.
천: 그렇게 써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구요. (웃음)
백: 소설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선배작가들을 의식하면서 이런 점에서 나는 뭔가 새로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텐데요. 천운영씨 소설의 어떤 부분이 기존의 문학적 규범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나요? 자기 작품이 동세대 작가들하고도 다르게 읽혀졌으면 하는 부분도 있을 테구요.
천: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 그게 제 문학의 관심사예요. 우리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많지만 실제로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잖아요? 제 소설에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들, 생활전선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저는 제가 잘 모르는 음악, 미술작품 같은 것을 작품에 동원하고 싶지 않아요. 특정한 지식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체험을 그리거나 일상인들의 생활체험을 배려하지 않는 작품을 보면 싫더라구요. 모든 사람이 읽어도 내 삶과 많이 다르지 않다, 혹은 다르더라도 아 이런 삶도 있었구나,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 하는 그런 걸 느끼게 했으면 좋겠어요.
백: 그런데 천운영씨 소설을 보면 직접적인 문화기호를 동원하진 않지만 상당히 미학적인 의도와 창작방식을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생활의 리얼한 반영이라는 측면보다는 미적인 작법이 두드러지고요.
천: 제가 그리는 사실적인 대상에도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요. 예를 들면 동태 지느러미를 손질할 때 어떤 방법으로 칼을 쓰는 게 좋다, 이런 건 미학적으로 사고하지 않아도 이미 그 안에 미학이 내재되어 있는 거죠.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요. 흔히 음악이나 미술•영화 등 예술적인 대상에만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들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는 오히려 아름다움의 절정이 일상의 밑바닥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백: 지금 이야기한 부분이 천운영씨 소설을 읽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일 것 같아요. 일상의 비루한 삶 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미적인 장치로 이끌어내는 것 말이에요. 이와 관련하여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매우 부지런히 취재를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횟집, 마장동 축산시장, 병원 등 작가가 기자처럼 그 삶의 장소를 직접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다닌 건지 궁금해요.
천: 이 소설집에는 취재뿐 아니라 제가 우연히 겪은 생활체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면 마장동 축산시장도 우연한 기회에 갔다가 순간적으로 「숨」의 줄거리가 떠오르더라고요. 『바늘』에 실린 아홉편의 작품 중에서도 「숨」은 대상을 보는 순간 '이거 내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에요. 그래서 일주일 정도 축산시장을 찾아다녔어요.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그때가 한참 마장동에서 소에게 물 먹이다가 적발되어서 난리가 났을 땐데요. 시장사람들이 저보고 여기자가 들어왔다고 난리쳤어요. 카메라 들고서 뭘 적고 그러니까요. 그때 정말 쫓겨날 뻔했지요. 그런데 다행히 소설 쓰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그럼, 소설 속에 제 이름을 좀 넣어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한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 아저씨가 일일이 칼 쓰는 법도 알려주시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줬죠.
그리고 제주도에서 한달 동안 횟집주방에 있으면서 회 뜨는 것도 배웠어요. 배우려고 배운 게 아니고 횟집에서 일하는 친구 좀 도와주겠다고 내려갔다가 우연찮게 배웠고요. 꼼장어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친구와 3개월 정도 직접 실내포창마차를 운영했었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 일부러 현장들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실제 저의 생활경험들이 배어 있어요.
백: 다이내믹한 여러가지 생활방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소설가가 아니었으면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겠는데요.
천: 이 인물로요? (웃음)
백: 신문기자도 어울릴 것 같아요. 다른 삶에 호기심이 많으니까요. 이제 개별 작품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아무래도 천운영씨 소설집에서 「바늘」 얘기가 빠질 수가 없겠죠. 어떻게 보면 모든 작가에게는 등단작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있잖아요? 「바늘」은 천운영씨의 등단작이기도 하면서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바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추악하고 그로테스크한 인물의 등장입니다. 이후의 작품들에도 천운영 소설 특유의 괴기스럽고 뒤틀린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데요. 이런 인물들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비참하고 고단한 일상의 삶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유독 이러한 인물형에 애정을 갖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천: 저는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비루한 삶에 눈길이 많이 가요. 예를 들면 김기덕의 「악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아주 추잡한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미워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주 비굴하고 나쁜 인간인데, 가만히 보면 미워할 수 없고 측은하고. 그런 인물들에 애정이 많이 가요. 제가 소설인물들의 외모를 일부러 괴상하게 그리는 건 아닌데 무의식적으로도 그렇게 설정이 되는 걸 보면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거지요.
백: 인물들의 외향도 그렇고 대체로 보면 소설 속 인물들이 의식하는 성(性)이 굉장히 황폐해요. 노화했거나 선천적인 성불구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거세된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인물들의 성적인 상징이 사회적인 의미도 띠고 있겠지만 그 자체로 대단히 강렬하고 섬찟한 이미지를 줍니다. 특히 인물들이 육식에 집착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띠는데요, 불구화된 자신의 육체적 성징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육체의 생생함을 갈구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심한 말로 작품 곳곳에 '피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은데요.
천: 작품집을 내기 전에 아홉편의 작품을 봤는데 정말 피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구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봤어요. 육식과 성적인 것에 내가 굶주려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웃음)
백: 작가의 실제 식생활이 그런 거 아니에요?(웃음)

천: 정말 저의 식생활은 소설 속 인물들과 비슷해요. 저는 육식과 날것을 좋아해요. 회도 좋아하죠. 그리고 닭도 퍽퍽한 살은 안 먹어요. 연골, 목뼈 이런 부분을 좋아하거든요. 인물들의 식성을 묘사하는 부분에는 제 모습이 조금씩 들어가 있어요. 「바늘」에서도 "쌀눈이 살짝 비치도록 말간 밥알에 약간 검어진 육류의 핏물이 스며들 때, 고기의 맛은 정점에 이른다"는 구절도 나오죠. 정말 저는 고기를 먹을 때 밥과 같이 먹는 그 느낌을 좋아해요.
백: 주인공들의 강렬한 캐릭터의 묘사는 작가의 전략적인 부분이기도 한데요. 중심인물의 강한 개성에 비해 그 인물들이 소설 내의 다른 인물들과 맺는 관계는 서사적인 연결고리가 좀 약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작가가 의도적으로 폭넓은 사회적인 관계를 차단하고 주로 가족, 핏줄의 이야기에 집착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예컨대 「바늘」에서 딸과 어머니의 삶이 겹치는 이유가 특정한 서사로 설명되기보다 운명적인 동질성으로 읽히구요. 어머니가 스님에게 느끼는 억눌린 욕망이나 딸이 문신해주는 남자들에게 암암리에 품고 있는 욕망이 상징적으로만 암시됩니다.
천: 저는 인물들의 관계를 표현할 때 실제 가족관계에 있어서의 억압이나 상처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기보다 그걸로 인해서 주인공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주로 표현하죠. 직접적인 사회관계를 맺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좀더 상징적인 것으로 쓰고 싶어요. 예컨대 욕망의 억눌림 역시 남성적인 거대제도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의 상징으로 쓰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이 사회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운명, 아버지라는 대상과의 싸움이 바로 사회와의 싸움이에요. 그런 점에서 어떤 분들은 제 작품의 인물들이 열려 있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시기도 하죠.
백: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인물의 특정한 행위를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무척 들인다는 건 확실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추악하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장면에서 대단히 아름답지요. 여자가 문신을 새기는 장면의 섬세함이라든지 소를 도살하여 다루는 장면 하나하나, 회를 뜨는 장면, 심지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무엇인가를 먹을 때조차도 예술적(?)입니다. 「등뼈」에서 여자가 닭튀김을 먹을 때 세심하게 뼈를 발라내는 장면은 바라보는 남자에게 놀랍고 매혹적인 장면이지요. 이러한 탐미적 경향 때문에 비루한 현실조차도 판타스틱하게 그려지는 게 아닐까요.
천: 「바늘」에서 제가 천착했던 게 '미'와 '추'였어요.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우리가 아름답다고 믿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것인가, 추함 속에 아름다움은 없을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작품을 구상할 때 2, 3주 정도 절에 보살로 들어가서 생활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스님이 저한테 툭 내뱉은 물음이 있어요.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왜 가냐?" 저는 장난삼아 "집 지으러 가겠죠"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파리가 어디에 집을 짓느냐"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네?" 하고 반문을 했더니 "파리는 변소에다 집을 짓는다. 거기서 새끼가 나오고 그 새끼들이 다시 변소통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좌선하는 동안에 계속 그 질문을 생각했어요. 정말 새가 왜 날아가지, 하고요.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질문이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건지도 모르고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 그려지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집'이라는 단어와 '아름답다'는 단어를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바늘」을 쓰게 되었거든요. 물론 다른 에피쏘드도 있었지만요.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백: 한 인간의 내면에 묻혀 있는 이미지나 관찰하는 사람의 시선에 포착되는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천운영씨의 소설을 영상적인 스타일과도 연관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천운영씨도 영화 보는 것 무척 좋아하지요? 어떤 영화가 특히 인상에 많이 남는 편인가요?

천: 네. 아까 김기덕의 영화를 이야기했지만 「하이 힐」(Tacones Lejanos)을 만든 뻬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의 영화도 좋아해요. 섬찟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영화들을 좋아해요.
백: 최근 영화작품 중에서 재미있게 본 것 있어요?

천: 여행을 갔다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낯선 극장에서 봤는데, 장면 하나하나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주인공이 단란주점에서 발가벗고 무표정하게 기타를 치는 장면도 그랬고 기타 선생님 얘기도 그렇고요. 인물들의 느릿느릿한 말투에서 나오는 그 생활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보이더라구요. 사람들의 표정이 콸콸 눈물을 쏟아내게 하진 않지만 은근하게 슬퍼지더라구요. 지나가다가도 문득문득 그 생각이 나요.
백: 영화 보고는 노래 부르러 가지 않았어요? 다들 이 영화 보면 노래 부르고 술 마시는 게 절차라고 하던데. (웃음) 형식적으로 시도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바탕에 자리한 생리적 감수성에 공감이 가나 보군요. 소외된 인물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요.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소설을 쓸 때 그 이미지들이 의식되지 않나요?
천: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우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연상시켜 쓰는 스타일은 아니예요. 소설을 쓸 때는 자세히 구상하는 편이지요. 실제로 학교 다닐 때 수학 과목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답이 딱 나오는 걸 참 좋아했어요. 소설 쓸 때에도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게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구성하고 생각해서 써요.
백: 예를 들어 역사소설 쓸 때 흔히 시도하는 인물 사건 도표 같은 걸 만들어놓으시나요?
천: 네. 전 도표를 만들어요. 장면마다 뭐가 나오는지, 거기서 상징으로 들어갈 단어 몇개 쓰고 이 장면의 분량은 몇 매쯤 되겠다, 이런 식으로 장면을 구성해요. 어쩌면 그게 영화 씨놉시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죠. 영화가 나에게 직접 들어온다거나 영화의 카메라 기법을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스토리 구성을 할 때 그렇게 하죠.
백: 그 방식은 추리소설가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기도 한데요.

천: 나중에 추리소설을 써볼까 생각도 조금 하고 있어요. 부커상(The Booker Prize)을 받은 맥완(Iwan McEwan)의 『암스테르담』(Amsterdam)을 보면 굉장히 추리소설적이지만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거든요.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추리소설 하면 판타지하고는 분리된 별도의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잖아요? 전 추리소설의 박진감 넘치는 부분과 문학적인 상상력과 상징들을 합쳐서 새로운 양식을 시도하고 싶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 열광했던 게 추리소설이거든요. 홈즈부터 시작해서 씨드니 쎌던까지요. 생각해보니 하이틴로맨스도 무척 많이 읽었네요. (웃음)
백: 여학생 시절 때 하이틴로맨스 안 읽어본 사람 없잖아요? 쉬는 시간에 가방에서 꺼내 서로 돌려 읽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는 그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였던 것 같아요. 백마 탄 왕자님을 찾아가는 다소 야한 이야기들…… 남학생들의 도색잡지보단 약하지만 하이틴로맨스가 유일한 성인로맨스의 분위기를 제공했던 것 같은데…… (웃음) 다시 소설쓰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품은 규칙적으로 쓰나요? 한번에 몰아서 쓰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조금씩 나누어서 쓰는지.
천: 쓰다 보면 보통 밤을 새긴 하는데요, 잘 쓰는 분들처럼 사오십매는 못 쓰고요 십매, 십오매 정도 하룻밤에 쓰죠. 전 한 장면씩 써요. 그 장면을 쓰고 다음날 다음 장면을 쓰고 그래요. 보통 한시에서 해 뜨기 전 일곱시까지 쓰고 그랬는데, 마지막 소설을 쓰면서 조금 바뀌었어요. 아침이 좋더라구요. 네다섯시쯤 일어나서 씻고 해 떠올라서 비출 때까지 썼어요.
백: 몸이 힘들 때도 많죠? 소설쓰기는 그야말로 체력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이야 젊으니까 못 느끼겠지만. (웃음) 작가로서 내가 관리해야겠다 하고 느낀 적은 없나요? 어떤 작가는 달리기를 규칙적으로 하기도 하고 헬쓰클럽을 다니는 분들도 있고 나름대로들 체력을 관리하는데……

천: 저도 한동안 조깅도 하고 수영도 하고 그랬는데요, 요즘은 통 안 해요. 소설쓰다 지치면 같이 사는 친구하고 고기 먹어요.
백: 고기요? (웃음) 천운영씨의 유일한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육식에서 나오는군요. 채식주의자들이 보면 놀라겠는데요. 지금까지 여러 작품 중에서도 「바늘」만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첫 소설집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다른 작품 이야기도 좀 해볼까요.
천: 네 있어요. 물론 「바늘」이야 첫 작품이니까 애착이 가고요. 저는 「월경」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첫 소설집의 모든 작품이 「바늘」 이후에 쓴 작품들인데, 「월경」만 그 전에 쓴 작품을 손질한 거예요.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이죠, 제목은 물론 그게 아니었지만. 아마도 이 작품이 최종심에 오르지 않았으면 소설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 작품 가지고 주어, 서술 시제 이런 걸 다 써봤을 거예요. 현재형으로도 써봤고 과거형으로 써봤고. 그런 연습을 제일 많이 했던 작품이죠. 인물도 특별히 애정이 가고요. 「월경」 마지막 부분에 "보름달은 스스로 몸을 허물어 경계를 지우리라"는 부분하고 여성성의 이미지하고 다 제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더 그렇죠. 그리고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애착이 더해요. 그 외에 「눈보라콘」은 아주 즐겁고 유쾌하게 쓴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요. 제 나름대로 여러가지 문화적 기호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재미있게 썼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에요.
백: 작가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웃음) 전 개인적으로 「눈보라콘」의 새로운 면도 주목하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 '눈보라콘'이라는 응집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려는 새로운 시도가 의도만큼 충분히 살아나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하나의 섬세한 이미지가 모든 인물들과 사건을 묶어주기에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 부분이 앞으로 천운영씨가 소설을 쓸 때 중요한 문제로 계속 부각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뭔가 방법론을 변화시켜나가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어요. 아마 앞으로 이 작품이 발단이 되어 여러 종류의 스타일을 보여줄 것 같아 이후의 작품이 궁금해지기도 해요.
어쨌든 천운영씨의 첫 소설집 『바늘』은 신인으로서는 상당히 과감하고 뚜렷하게 자기 스타일을 부각시키고 있는 편인데요. 작품집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고르고 짜임새가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모여 있어서 탁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성적인 특징이 이후의 작품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천: 네 부담이 많이 돼요. 한권을 묶어내고 나서 다음의 첫 작품이 특히 그렇죠. 사람들이 일단 주목을 할 테니까요. 또 이렇게 계속 나갈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고요. 제가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시선은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다만 방법적인 거, 소재나 묘사적인 부분들에 좀더 상상력을 넣는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설핏 하고 있어요. 그리고 '육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백: 현재 살아가면서 소설 쓰는 것만큼 좋아하는 일이 또 있나요? 전문가적인 식견을 쌓는 분야가 있을 것 같아요.

천: 소설을 위해서건 아니건 여행을 좋아하고요. 요리하는 것 좋아해요. 그래서 문화쎈터 같은 데서 요리강좌도 듣고요. 양식조리사, 중식조리사 그런 수업도 들었어요. 아마도 그래서 횟집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시장 보는 것도 좋아하죠. 시장 보고 요리하면서 모든 스트레스 다 푸는 것 같아요. 영화 「301 302」 보면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고 먹는 걸 보면서 만족감을 얻잖아요? 저도 그래요. 제 동거녀가 거의 모르모트죠. (웃음) 음식재료를 만지고 쓰다듬어보고 냄새 맡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백: 지금까지 주로 단편작품을 써오셨는데, 장편소설도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제의도 들어올 것 같고요.
천: 다들 좋은 중편, 장편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는데요, 아직은 제 호흡이 그렇게 조절이 안되는 것 같아요. 점차 늘려가려고 계획은 잡고 있어요.
백: 구체적으로 다루고 싶은 소재나 취재하고 있는 거 있나요? 물론 비밀이겠지만요.
천: 비밀인데요. (웃음)
백: 추리소설 얘기도 하셨지만 장르를 넘나들고 싶은 생각도 있겠죠?. 판타지에도 관심 많을 테고…… 또 작가들 보면 동화에도 관심을 갖는 것 같던데요.
천: 판타지에는 관심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동화는…… 제가 동화 쓰면 얘들이 무서워할 것 같아요. (웃음)
백: 동화가 항상 따뜻하고 예쁜 이야기만은 아니잖아요?
천: 사실 영국이나 독일동화 보면 상당히 현실적이고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어요, 때론 엽기적이구요. 늑대 배를 가르는 장면 같은 건 아이들 보기엔 잔인하다 싶구…… 제 소설에서도 가끔 그런 면을 들여오긴 하죠. 하지만 동화는 그래도 뭔가 아름답고 따뜻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백: 소설을 쓰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약속 같은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천: 『바늘』에 실린 소설 아홉편을 쓰면서 정말 빨리 달려왔거든요. 청탁 받은 거 쓰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완급도 조절해야 할 것 같고요, 조금 천천히, 좀더 깊이 생각하고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박완서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그 나이를 느낄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백: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천: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