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와 모더니티'라면 하도 많이 다루어진 주제라서 무슨 새로운 얘기가 있을까 싶은데, '담론비평'에서 이 주제에 관한 새로운 학위논문을 요약해주고 있다. 자세한 건 논문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관심있는 독자라면 챙겨둘 만하다.

담비(07. 04. 04) 아방가르드와 결별한 21세기 보들레르
보들레르는 19세기 중엽 새롭게 등장한 '현대적 삶'이 예술에서의 변화를 요청한 장본인이라는 독자적인 인식에 근거하여 그러한 요청에 답하는 예술론을 모더니티 개념을 통해 정식화해냈다. 보들레르의 문제의식은 전통적인 재현론을 대체한 새로운 예술론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로, 이미 도덕적 가치를 내재한 대상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 동시대 변화된 삶의 제 양상을 재현하는 방식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따.
보들레르가 보기에 범죄자나 정치적 모사꾼, 혹은 첩과 같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현대적 삶을 재현하는 것이 새로운 예술의 임무이기에 도덕적으로 무의미한 그런 인간군상을 심미화하는 것, 즉 도덕으로부터 미적인 것을 분리시키고 심미적인 것에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새로운 재현론의 성격이었다.

이런 보들레르의 예술론은 그가 프랑스혁명 이래 제2공화정 기간 누구보다도 공화주의에 헌신한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혁명의 실패, 연이은 국민투표가 입증한 프랑스 국민들의 정치적 무능함과 기만성, 그 결과물로서의 제2제정 사회의 등장 및 나폴레옹 3세의 등극을 보면서 보들레르는 혁명과 대학살, 진보와 데카당스가 반대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라고 믿게 됐다.
보들레르는 물직적인 풍요로움에 근거하여 역사의 진보에 심취해 있는 동시대인들의 타락한 면모를 비판하기보다는 진보의 신화에 가리워진 동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전개했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그가 제시한 대안적 삶은 댄디즘이다. 개인이 따를만한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가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독자성은 보존이나 발굴이 아니라 발명의 문제라고 보들레르는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산업화, 문명화된 동시대 삶이나 예술의 일차적인 조건 혹은 사실은 일시성이었다. 도시적 삶은 덧없이 스러져가는 순간에 대한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 과연 일시성과 순간성이 경험의 조건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영원성에 헌신하려는 노력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한 뒤 보들레르는 일시성으로부터 영원성을 끌어내는 임무를 '현대적 삶의 화가'에게 부여하게 된다.

따라서 보들레르의 관심은 들라크루아나 마테나 쿠르베와 같은 위대한 화가들이 아니라 신문에 삽화를 그리는 풍속화가 기의 작업방식에 대한 성찰로 나타난다. 기를 통해 보들레르는 일시성으로부터 영원을 끌어낼 수 있는 화가의 힘을 보았고, 예술가 주관의 심미적 변형의 능력이 일시성을 영원성의 위치로 승격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모더니티 개념에 담긴 이러한 보들레르의 생각은 20세기에 들어서 아방가르드 개념의 영향력 아래에서 잊혀져 버리고 보들레르의 모더니티는 그저 일시성의 미학으로서 제한적으로 해석, 수용되었다. 그 결과 보들레르의 모더니티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시작을 알리는 이른바 새로움 숭배의 기원으로 잘못 평가되었다.
이런 보들레르 수용에 반성이 인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기존 보들레르 문학에 대한 제한된 해석을 수정하려는 것과 보들레르 모더니티 개념의 본래적 의미를 새롭게 발굴하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아방가르드 모더니즘과 맺어진 끈도 떨어져나갔다.

양효실 서울대 강사는 최근 이러한 요지를 담은 박사학위논문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개념에 대한 연구'(2006, 서울대학교)를 제출했다. 그는 보들레르의 모더니티는 아방가르드 개념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를 부정하는 데 헌신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재의 부정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구제일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으며 형식 개념처럼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삶과의 연관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 독자적 가치를 동시대 삶의 맥락 안에서 모색한 예술론이라고 결론 내린다. 아방가르드 모더니즘과 형식주의 모더니즘을 둘 다 뛰어넘는 예술적 인식론을 보들레르를 통해 새롭게 정초해보자는 제안인 것이다.(리뷰팀)
07. 04. 04.-05.

P.S. 이 리뷰 기사에 눈길이 간 건 마침 새로 편집돼 나온 벤야민의 보들레르론 <현대적 삶의 작가(The writer of modern life : essays on Charles Baudelaire)>(2006)을 구해보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벤야민과 보들레르에 관한 글도 언젠가는 쓰고 싶은데, 그 '언젠가'는 언제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