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로그인 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새로나온 책들을 검색해보게 된다. 막상 가끔씩 서점에 가보면 전혀 생소한 책들과 대면할 때가 있어서 역시나 '온라인은 온라인일 뿐'이란 생각도 하게 되지만 또 거꾸로 서점에서 미처 둘러보지 못한 책들을 온라인에서 처음 접할 때 느끼는 반가움도 적지는 않다. '반가움'이라고 적었지만 실상은 묘한 감정이다. 새로 나온 책에 대한 부듯함과 함께 또 사서 읽어야 하나, 언제 읽나, 하는 부담감이 묘하게 결합돼 있는. 그런 반가움과 착잡함(?)을 동시에 느끼도록 해준 책이 또 출간됐으니 미국의 저명한 동시대 작가 존 바스(1930- )의 <연초 도매상>(민음사, 2007)이 그것이다.  

 

 

 

  

미국의 현대문학에 대해 약간의 견문이 있는 독자라면 이 작가의 이름과 작품에 대해 얼마간 면식이 없을 수 없다. 특히나 포스트모더니즘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에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존 바스였기도 했고. 이번에 출간된 <연초도매상>은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의 한권이기도 하니까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한다.

다소 놀라운 건 1960년에 발표된 작품이므로 작가가 만 30세(이전에!) 쓴 소설이라는 것. 768쪽이라는 방대한 분량(국역본은 3권 합계 1,600쪽이 넘는다!)의 작품을 20대에 쓰고서 그것이 당대의 걸작으로 꼽힌다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아무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회자되던 책이 (비록 '연착'이란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완역 출간되었기에 반갑다(비슷한 경향의 러시아 현대작가들의 소설들도 소개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연초 도매상'이라는 서사시를 남긴 17세기의 시인 에브니저 쿠크의 여정을 좇는 패러디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리얼리티의 충실한 재현보다는 리얼리티가 언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 리얼리티가 어떻게 모방되고 위조되는가에 관심을 보인다. 주인공 에브니저 쿠크는 17세기에 실존했던 시인이자 연초 도매상으로, 서사시이자 풍자시인 '연초 도매상'을 비롯한 몇 편의 시를 남겼다. 에브니저 쿠크의 시 창작 과정이 전개되고 메릴랜드의 식민 역사가 패러디되는 <연초도매상>에서는 문학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역사적인 글쓰기가 중심적인 관심사이다. 에브니저는 메릴랜드 주에 있는 아버지의 연초(담배)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간다. 그리고 여정 내내 해적과 인디언, 매춘부, 폭도에게 둘러싸여 예상치 못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는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무 개가 넘는 이야기를 듣는데,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그림으로 직조되고, 쿠크는 서사시 '연초 도매상'을 완성한다."

 

 

 

 

위키피디아의 '존 바스' 항목을 읽어보면 그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과 메타픽션의 대가라고 소개돼 있는데, 작품의 줄거리는 그러한 소개에 딱 들어맞는 듯싶다. 특히나 <연초 도매상>은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문학과지성사, 2001)와 필딩의 <톰 존스>(삼우반, 2007) 같은 피카레스크 소설에 대한 풍자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며 타임지의 평에 따르면, "<캉디드> 이후 가장 흥미로운 방랑 영웅이 등장하는 현대의 고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존 바스는 대부분 영문학자 김성곤 교수의 소개에 근거한 것이다. 대부분이 박스보관 도서인지라 다시금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미로 속의 언어: 현대 미국작가와의 대화>(민음사, 1986), <탈모더니즘 시대의 미국문학>(서울대출판부, 1998) 등의 책에서 존 바스가 언급되었던 듯하다. 더불어, '고갈의 문학'과 '소생의 문학'이란 표어로 잘 알려진 바스의 문학론은 <소설의 죽음과 포스트모더니즘>(글, 1992)에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전 교보에서 <고갈과 소생의 변증법>(한국학술정보, 2006)이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든 적이 있는데, 기대한 번역서가 아니라 존 바스 연구서였다.  

 

 

 

 

한편, 영미문학연구회에서 엮은 <영미문학의 길잡이2>(창비, 2001)에서는 20세기 문학의 마지막 작가들로 '존 바스와 토머스 핀천'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두 작가의 소설들이 국내엔 얼마간 소개돼 있다. 먼저, 존 바스(존 바드, 존 바아드)의 경우엔 <여로의 끝>(을유문화사, 1983), <여로의 끝/ 선상악극단>(학원사, 1984) 등이 영문학 교수들의 번역으로 출간된 바 있고, <키메라>(고려원, 1979)는 전문번역가 이윤기 선생의 번역으로 일찌감치 나왔고.

토머스 핀천(1937- )의 경우에도 <브이>(학원사, 1985; 민음사, 1991), <제49호 품목의 경매>(벽호, 1994)가 번역/소개된 바 있다(단행본 연구서도 두어 권 정도 나와 있다).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이번에 민음사에서 다시 출간됐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갖는 책은 아무래도 아직 번역되지 않은 <중력의 무지개>(1973)이다. 제목에 이끌려 오래전에 원서를 사두었지만 이 방대한 분량의 소설도 지금은 박스에 들어가 있다. <연초 도매상>에 견줄 만하지 않을까 싶은데, 마저 번역된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07. 03. 28-31.

P.S. 핀천의 경우엔 자신의 신변노출을 극히 꺼리는 작가로도 유명하여 인터넷에서도 그의 사진은 몇 장 찾아볼 수 없다. 알려진 에피소드 한 가지는 그가 코넬대 재학시 나보코프의 문학강의를 수강했었다는 것 정도. 정작 나보코프 자신은 핀천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두드러진' 학생은 아니었던 듯한데, 작문 채점을 도와준 그의 아내 베라가 핀천의 필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마디 덧붙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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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7-04-14 15:22   좋아요 0 | URL
커트 보네거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 이 세대가 이제 진짜 끝이구나 싶어서 남은 분들(;;;)을 생각해봤더니, 핀천과 바스가 살아 계시더군요;;; 아무래도 이 분들은 보네거트 님만큼 만만한 분들이 아니어서 읽은 적 없는데, 로쟈 님 포스트 보고 <연초 도매상>에 도전합니다. -_-;

로쟈 2007-04-14 20:42   좋아요 0 | URL
저도 뒤늦게(?) 보네커트의 책을 주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