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역사를 통째로 다룬 책들도 이젠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클라이브 폰팅의 <진보와 야만>(돌베개, 2007) 또한 '20세기 통사'이다. 특징이라면 유럽 중심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책이라는 점. 언론 리뷰들에서 많이 다루어졌기에 더 보탤 말은 없다. 문화일보의 리뷰가 자세하기에 관련기사와 함께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7. 03. 16) 진보, 야만을 낳다 - 20세기 인류발전의 빛과 그림자

[질문 1]지난 20세기 사람들의 사망 원인 가운데 질병과 기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다음 중 무엇이었을까. ⓐ교통사고 ⓑ제노사이드(Genocide·민족, 종교 등의 차이를 이유로 한 집단 학살 행위) ⓒ자연재해 ⓓ전쟁 [질문 2] 지난 20세기 세계 각국의 정부형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입헌군주정 ⓓ독재 [질문 3] 20세기 말 인류는 1900년에 비해 얼마나 늘어났을까. ⓐ1.5배 ⓑ2배 ⓒ3배 ⓓ4배

세 질문의 답은 모두 ⓓ다. 지난 세기 교통사고로 2500만명, 자연재해로 1000만명, 제노사이드로 1400만명이 죽은 데 비해 전쟁으로 인해 1억5000만명이 사망했다. 물론 기근으로 인해 죽은 인구는 이를 훨씬 웃돌았다. 또한 자유민주정부나 사회주의 정부보다 20세기를 지배했던 정부형태는 바로 독재였다. 인구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해 100년 사이에 약 4배로 늘어났다. 이 같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20세기지만 그 이면에 이처럼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은 역사의 진보 또는 발전이란 개념을 무색게 하는 것이 아닌가.



‘20세기의 역사’란 부제가 붙은 책은, 한마디로 지난 세기 인류가 이룩한 진보의 이면엔 야만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고 규정한다. 진보와 야만이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이젠 이러한 시각 또한 상식이 되어야 하겠다). 저자는 “20세기에 있었던 두 개의 가장 파괴적인 정치운동, 즉 공산주의와 나치즘은 유럽의 역사와 사고방식의 깊숙한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20세기의 야만성은)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로부터 물려받은 유럽적 유산의 훨씬 더 어두운 측면”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거대한 생산력 증대와 인구증가, 인간 수명의 획기적 연장, 세계의 통합 등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파시즘과 나치즘, 1·2차 세계대전과 집단학살, 국가폭력, 독재정권, 거대한 환경파괴 등 기괴한 야만을 낳았다는 것이다. 책은 이 같은 진보와 야만의 20세기를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보여준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자.

◆ 식량부족과 기아 = 1990년대 말에도 매년 4000만명이 굶어죽거나 그와 연관된 질병으로 사망했다. 물론 전 세계의 식량 생산은 크게 늘어났으나 인구증가율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게다가 분배의 측면에선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해졌다. 아주 보수적으로 추산하더라도 20세기 100년 동안 기근으로 인해 최소 1억명이 죽었다. 일생 동안 배고픔과 반(半)아사 상태에서 산 사람들의 수는 수십억 명에 달한다.

◆ 공업 생산의 편중 = 1953년 이후 20년 동안 세계 공업 산출량은 이전 150년간의 공업 산출량의 총합과 맞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단히 편중돼 있었다. 20세기 말에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세 나라의 공업 생산이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여기에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을 합친 7개국의 공업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의 4분의 3에 이르렀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비중은 더 하락했다.

◆ 부의 불균형 = 전 세계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증가했지만 이 역시 불평등한 현상이었다. 1900년에 가장 부유했던 국가들은 2000년에도 가장 부유했고, 최빈국들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간극은 줄어들기는커녕 훨씬 더 벌어졌다. 20세기 초 3배에 달했던 중심부와 주변부의 소득 격차는 20세기 말에는 7배 차이로 늘어났다. 1990년대 중반에 89개국 사람들이 1980년대보다 더 가난해졌고, 43개국 사람들은 심지어 1970년대보다도 가난해졌다.

◆ 국가폭력의 증대 = 20세기에 각 국 정부는 자국민을 얼마나 죽였을까. 최악은 5000만명을 기록한 공산당 치하 중국이다. 1700만명을 기록한 소련과 1000만명의 자국민을 죽인 국민당 치하 중국이 뒤를 잇고 있다. 아시아 공산주의 정권은 최소 400만명을 학살했으며, 독립 이후의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300만명에 가까운 자국민을 죽였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에 의해 학살당한 국민은 최소 1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진보가 이룩한 성과에 대한 지적 또한 잊지 않는다. 20세기에는 산업 생산의 거대한 팽창이 있었고, 이것은 19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었다. 전기를 비롯, 자동차·전화·TV 등 신기술은 인류의 삶을 변화시켰다. 20세기가 막 시작되면서 만들어졌던 원시적 수준의 비행기는 세기 말엔 수억 명의 사람들이 매년 지구 곳곳을 여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도약했다. 컴퓨터와 반도체, 로봇과 실리콘 칩 등과 같은 기술은 20세기 초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술이었다. 또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글자를 깨우쳤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20세기는 진보와 야만이 나란히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면서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야만성은, 세계가 매우 빈곤한 압도적 다수와 부유한 소수 사이의 거대하고, 더욱 증대하는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졌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주변부의 극빈국에서 중심부 국가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한국인들로선 선뜻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군부독재의 세월을 헤쳐왔던 우리 역시 이 같은 ‘진보와 야만의 20세기’를 극명하게 경험한 것이 아니겠는가.(김영번기자)

 

문화일보(07. 03. 20) "日 자본주의 급성장은 식민무역 덕”

영국 역사학자 클라이브 폰팅의 저서 ‘진보와 야만’에선 20세기 주변부 국가에서 반(半)중심부 국가로 지위 상승한 국가로 한국과 대만을 꼽는다. 1900년대 초의 세계 역학 구도가 20세기 말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 100년 동안 주변부 국가에서 중심부로 가까이 다가선 국가들은 찾아보기 힘드는데, 유독 한국과 대만이 그같은 ‘희귀한’ 사례로 꼽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이 그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어떤 원인과 과정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는 논문들을 집중 소개한 책이 최근 발간됐다. 한국을 비롯, 일본·대만 학자 11명이 힘을 합쳐 만든 ‘일본 자본주의와 한국·대만’(전통과 현대)이다. 1945년 이전의 일본과 한국, 대만의 경제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책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한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 하의 조선과 대만 경제를 실증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이 시기에 일어난 3국의 경제변동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와 관련, “식민지에서 공업화 전개나 생산력의 발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식민지 지배의 미화 또는 정당화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는 어떠한 궤변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한국 및 일본·대만의 고속성장 배경 = 호리 가즈오(堀和生) 일본 교토(京都)대 교수는 ‘일본제국과 식민지 관계의 역사적 의의’라는 논문에서 무역 분석 결과를 통해 1·2차 대전 사이의 일본과 조선·대만 간 관계의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무역량은 1930년대에 특이할 정도로 팽창했다. 1930년대 말 일본의 대 식민지 무역은 당시 최대의 식민 제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대 식민지 무역량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는 곧 식민지가 일본에 광대한 시장을 제공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식민지가 일본에 대량의 곡물과 식료품을 제공하면서, 역으로 일본으로부터 생산재와 자본재를 도입하는 무역 내용은 일본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맞물려 있다.

호리 교수는 “양차 대전 사이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분업관계, 즉 자본주의적 국제관계가 형성되어가고 있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서 “그것은 일본제국의 팽창, 침략과 전쟁, 식민지 지배의 강화라는 과정과 겹쳐 있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과정이 식민지 주민을 위해 진행된 것은 아니었으며, 때로는 식민지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이후 이 지역의 고도성장은 이같은 역사적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 호리 교수의 결론이다.

2차 대전 이후 거대한 미국시장의 등장이나 기술 이전의 가능성이라는 일반적인 조건이 다른 국가에도 있었음에도 유독 일본이 선진자본국으로 올라서고, 한국·대만이 신흥공업국(NICs)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시대 동아시아에서 형성됐던 역사적 조건에서 그 원인 중 하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식민지 및 종속지역 등의 주변 사회를 자본주의에 적합하게 재편성함으로써 일본 자본주의 발전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냈으며, 조선과 대만은 그같은 자본주의적 재편성에 의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산업사회로 변모해갔다고 호리 교수는 밝혔다.

◆ 조선과 대만의 공업화 = 김낙년 동국대 교수는 수록문 ‘식민지 시대 공업화 비교:대만과 조선’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체제는 자국의 제도를 식민지에 이식해 본국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추구했다는 점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즉, 식민지 시대 초기부터 토지제도 개혁에 착수했으며, 관세와 통화제도를 일본에 통합시켰다는 것. 이같은 제도적 통합은 대만과 조선경제에 매우 유사한 특징을 부여했다. 대일 무역이 급증,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형태로 변모했으며 일본 자본이 주도하는 이식(移植)공업화가 전개됐다.

김 교수는 “광복 후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 유형은 식민지 시대와 매우 흡사했다”면서 “이러한 연속성은 한국과 대만이 두 시기 모두 개방체제 하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 기인한 듯하다”고 추론했다. 즉, 2차 대전 이후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한 나라들은 개방체제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지만, 한국과 대만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대외 개방으로 정책을 전환한 데에는 이같은 식민지 하 개방체제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과 대만이 NICs로 발전할 수 있었던 하나의 조건이 됐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또 “광복후 경제가 식민지 시대와 비교해 두드러진 특징은 민족국가가 출현, 산업정책이 전개됐다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은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져 대만과 거시적 경제 운용 등에서 차이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김영번기자)

07. 03. 17-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