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2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시공사)에 대해서 적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로 그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고 있는데, <파묻힌 거인>은 서너 차례 강의한 듯싶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는 중이다...
















주간경향(19. 04. 15) 노부부의 사랑을 유지시킨 망각의 힘


일본계 영국 작가로 부커상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1982년 첫 장편을 발표한 이래 모두 일곱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파묻힌 거인>(2015)이 현재로선 마지막 작품이다. 한 권의 단편집을 포함해 그의 모든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지만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 읽은 소설을 다시 읽는 수밖에 없다. <파묻힌 거인>도 그렇게 다시 읽었다. 물론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라서 가능한 일이다.

대표작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등 이시구로의 거의 모든 작품은 기억의 문제를 핵심 주제로 다룬다. 문학작품에서 기억이 결코 새로운 주제는 아니지만 이시구로는 주관적 기억과 진실 사이의 괴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함으로써 기억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좋은 소설은 이미 알고 있는 앎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되묻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다. 그 점에서 <파묻힌 거인>도 예외가 아니다.

전작들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판타지 형식을 빌림으로써 독자들을 놀라게 한 <파묻힌 거인>은 흥미롭게도 사랑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부부 간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소설은 미혼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거나 결혼한 부부가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주로 다루지, 부부 간의 사랑은 잘 다루지 않는다. 근대소설에서 세계의 본질이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는 공식을 다시 떠올려봐도 좋겠다. 부부 간의 관계는 지속적인 데 비해서 사랑의 감정은 이 지속을 대개 견디지 못한다. 통상 부부 간의 사랑이 미담의 사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걸작 소설의 주제로는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이시구로의 소설은 이러한 통념에 도전한다고 할까.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는 브리튼족과 색슨족이 반목하고 있고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경이 용의 수호자로 나온다. 그렇지만 이러한 판타지적 배경은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사랑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노부부다. 그런데 이들은 용이 뿜어낸 안개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망실한 상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들이 이들과 떨어져 있고 그 아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노부부는 아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이 여정은 동시에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여행이기도 한데, 소설의 말미에서 색슨족의 기사에 의해 용이 퇴치되고 안개가 걷히자 잊고 있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노부부는 과거의 아픈 기억과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은 망각 덕분에 오랜 시간을 같이해오면서 깊은 신뢰와 사랑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과거를 계속 기억할 수 있었다면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액슬이 비어트리스에게 던지는 질문은 작가 이시구로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도 읽힌다. 공통의 기억이 관계를 유지시킨다는 통념에 맞서 이시구로는 때로는 망각이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비결이 아닌지 묻는다. 상호 간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억은 적대감만을 부추길 수도 있다. 좋은 소설은 모든 문제를 더 복잡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


19.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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