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2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 강의에서 다룬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에 대해서 적었다. 유고작으로 나란히 나온 <노생거 사원>과 <설득>을 이번에 읽었는데, 모두 기대에 값한다. 오스틴 문학의 매력과 현재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작품들이다. 
















주간경향(19. 04. 01) 작가 오스틴의 소설에 대한 예찬


소설은 왜 읽는가. 제인 오스틴의 유고작 가운데 하나인 <노생거 사원>은 그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등장인물이 아닌 작가 오스틴의 견해인데, 소설이란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작품들을 가리킨다. 소설에 대한 최대치의 예찬 아닌가. 오스틴이 이렇게까지 소설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당대에 소설에 대한 평판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 독자들은 대개 소설을 깎아내리고 우습게 봤다.

<노생거 사원>의 등장인물은 소설을 읽는 부류와 안 읽는 부류로 나뉜다. 주인공 캐서린도 “신사든 숙녀든, 좋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형편없이 지루한 사람일걸요”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끌린다. 그렇게 캐서린과 헨리의 관계가 시작된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유돌포의 비밀> 같은 당대의 고딕소설이었다. 대저택에 여자를 감금한 악한이 등장하는 것이 고딕소설의 특징이었다. 

캐서린은 헨리의 아버지 틸니 장군의 초대를 받아 노생거 사원으로 가면서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과거 수도원이었던 노생거 사원은 틸니가의 저택으로 쓰이는 곳이다. 캐서린은 고딕소설의 배경인 노생거 사원에서 소설적 공상에 빠진다. 세상을 떠난 헨리의 어머니가 실제로는 남편 틸니 장군에 의해 감금돼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저택을 수색하기까지 한다. 그녀의 터무니없는 의심과 추측은 헨리의 비판을 받고서야 깨지게 되며 캐서린은 비로소 현실감을 갖게 된다. 잉글랜드 한복판에서는 그녀가 상상한 것과 같은 소설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일차적인 깨달음이다. 

고딕소설에 대한 패러디로 읽을 수 있는 장면인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이다. 캐서린 집안의 재산이 변변찮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틸니 장군은 아주 야박하게 캐서린을 저택에서 내보낸다. 이를 사과하러 찾아온 헨리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캐서린은 자신이 틸니 장군에 대해 상상했던 것이 결코 과장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에게는 아내를 죽이거나 감금하는 것 못지않은 잔혹함이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공포가 고딕소설의 공포와 맞먹는다는 것이 캐서린의 또 다른 깨달음이다. 

소설의 결말은 전형적인 오스틴 소설이다. 강압적인 아버지 틸니 장군에 맞서 헨리는 가출하지만 그의 누이동생이 명망 있는 귀족과 결혼하게 되어 모든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된다. 기분이 누그러진 장군의 허락하에 헨리는 캐서린과 결혼한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장군의 부당한 방해가 두 사람의 결합을 더 공고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분위기는 부모의 독재를 권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식의 반항을 보상해주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한편으로 이러한 결말은 틸니 장군 같은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고딕소설에서 헨리 같은 부드러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오스틴 소설로의 이행을 감지하게 한다. 캐서린과 같은 여성 입장에서 보면 ‘호통치는 남자’에서 ‘가르치는 남자’로의 이행이다. 그것이 오스틴의 시대 여성에게 결혼이 갖는 의미였을까.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오늘날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오스틴의 소설은 같은 질문을 다시 묻게 한다. 


19.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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