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지라 '앨러리 퀸(Ellery Queen)'이란 작가가 "사촌형제간인 맨프리드 리와 프레데릭 더네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필명"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우리라면 '듀나' 같은 경우일 텐데, 그래도 필명/가명이란 티가 나는 '듀나'에 비하면 '앨러리 퀸'은 감쪽같다!). 지난달 컬처뉴스에 실렸던 한 '만담'기사를 읽으면서인데, 지난 연말에 터졌던 대필 사건들과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만담이기에 옮겨놓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이지만 '내부자'의 진술이기에 흥미롭다. 

컬처뉴스(07. 01. 26) 무림 출도를 고민하다: 출판시장과 유령작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Y의 비극』, 『Z의 비극』 등으로 유명한 미스테리 작가의 엘러리 퀸이 사망한 해가 1971년일까 1982년일까? 성급하게 답하자면 이 퀴즈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둘다 정답이며 둘다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엘러리 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의 필명으로 사용했으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후 버나비 로스라는 또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공식석상에서 한 명은 엘러리 퀸을, 한 명은 버나비 로스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는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전략이며 일종의 ‘장난기’였다고 한다. 여하간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 뒤에 숨었있던 ‘실존인물’ 더네이와 리는 각각 1982년과 1971년에 사망했다. (이 두 사촌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다 190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엘러리 퀸의 사망년도는 모호한 노릇이다

제법 길게 예전에 죽은 미스테리 작가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에 책, 혹은 글과 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알려졌던 『마시멜로이야기』와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가 썼다고 알려졌던 일련의 미술관련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소식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라도 이 소식을 못 접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요 포탈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표절’이라고 쳐보시라. 뉴스란에 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각종 게시판을 떠도는 말들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출판계에 잠시 몸담았던 박서방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이 사건들은 그리 낯설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들어온 원고를 면밀히 잘 검토해서 책을 만들거나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인한 얘기지만 출판 기획자에게 좋은 책이란 잘 팔리는 책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기 짝이 없는 출판업계에서 당장 현금이 안 도는 책이란 재앙이다. 책 한두권 대박 치면 1년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책 몇 권 죽 쒀버리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하는 출판사들이 적지않다. 그러니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책을 ‘제조’해 내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래야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자 이름 정도 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버렸고 글 팔며 먹고사는 ‘고스트 라이터’ (유령필자, 실명을 밝히지 않고 출판물 집필을 대행해주는 이들) 들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박서방도 출판계에 있을 때 명색이 초보 기획자였지만 실상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필자들의 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는 원고를 다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선거철 직전은 고스트 라이터들에게 가장 일거리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금뱃지에 눈이 먼 이들의 선거용 출판물 (자서전, 정치평론 등) 작업에 임할 때는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믿을만한 경로로 들어온 일을 받아야 하며 되도록 돈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원고를 의뢰한 자들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제로 한번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박서방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량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왔으며 (한동안 박서방을 몹시 괴롭렸던 소위 ‘카드돌려막기’의 원인이 되었다.) 박서방은 그 정객(인지 사기꾼인지)에게 강력한 신체적 보복을 행사하기 위해 한동안 그 인물이 출마했던 지역구 주변을 배회하곤 했었다.

얘기가 옆 길로 샜는데 지금의 고스트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의 존재는 꽤 오래됐다. 소설이 지금의 영화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인기있던 19세기에만 해도 한 명의 작가 이름으로 여러 필자가 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대중문학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대중문학의 인기가 급증했던 원인은 흔히 노동자 계층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무직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문맹률이 낮아졌던 것과 출판 기술 및 통신, 운송 수단이 화끈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흥밋거리를 담은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소설신문’(?)이 등장하게 되는데 양장본 소설책에 비해서 역시 화끈하게 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펄프픽션’은 바로 이런 매체에 연재되었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다루어졌던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연애담(아마도 박서방이 불타는 사춘기 시절 즐겨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류의 원조리라)이나 잔인한 범죄 이야기, 환상담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다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대부분 이런 소설은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명이 작업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 전성기 때 유명 작가들이 사실상 만화공장장 노릇을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상업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상표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글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필명이 출판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러리 퀸을 탄생시켰던 두 작가가 버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작가를 탄생시켰던 이유는 아마 앨러리 퀸이라는 상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었던 두 개의 (혹은 서 너개의) 사건은 상표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었었으며 그 상표 덕에 상품을 너무 많이 팔았던 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린 원인이었다. 한편으로 한젬마 씨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에 당초부터 고스트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부담스러운 경우기도 했다. 기획출판물이란게 대개 그렇지만 그 콘텐츠에는 상표 외에는 실상 별 게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데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표가 좀 과하게 작용한데다 그 바람에 상품이 너무 팔려버린 것이다. 상표를 보고 샀는데 상품이 짝퉁이라면 소비자들은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봐야 이런 사건이들은 들불처럼 분노를 일으켰다가도 바람처럼 잊혀져 갈 것이 뻔한 노릇이며 이미 발 빠른 기획자들은 또 다른 상표를 찾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출판물들도 있어야 고스트 라이터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 본다. 박서방도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 이상으로 치솟을 때면 글 팔며 연명하던 고스트 라이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분방했던 측면도 있긴 했다. 이렇게라도 자위하지 않으면 청춘의 기억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래서 ‘천마신군’이나 ‘초혼객’ 같은 이름으로 무협지나 쓰며 사는게 어떨까 하는 백일몽에도 잠겨본다. 몇 년간 글을 자주 안 썼더니 글이 너무 심하게 구려져서 별로 자신이 없지만.(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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