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독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밀의 <자유론>에 대해서 적었는데, 참고한 번역본은 책세상판 외 몇 종이다(대여섯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는 듯싶다)...
한겨레(19. 02. 16) 밀의 '자유론'을 수시로 들춰보는 이유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1859)은 그의 대표작이면서 동시에 가장 유명한 ‘자유론’이다. 자유라는 주제를 놓고 숙고하거나 토론할 때 기본서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한번 읽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수시로 참고하고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밀의 기본 견해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침해는 자기 보호(번역본에 따라서는 자기방어)를 위해 필요할 때만 허용된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권력 행사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즉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가 아닌 한에서 개인은 각자가 주권자이다.
타인에게 주는 영향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지만, 밀은 자유에 대한 주장의 전제로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과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통해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시대”를 들고 있기에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기본 원칙에 대한 합의만 있다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견해 충돌은 성숙한 개인들의 토론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다.
<자유론> 덕분에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대표자로 간주되지만 밀은 당대를 대표하는 공리주의자이기도 했다. 효용(이익)을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그의 공리주의자로서의 면모는 확연하다. 다만 밀은 그 효용이 항구적인 이익에 기반을 둔 넓은 의미의 개념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 가령 우리는 각자가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가 고통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면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이 밀의 생각이다. 공리주의의 주창자 벤담과는 계산법이 좀 다른 것이다.
자유에 대한 제한이 최소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 거꾸로 말하면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바탕에는 공리주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자유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하기에 좋은 것이라는 관점이다. 밀은 <자유론>의 제사에서 훔볼트의 말을 인용하는데 핵심은 인간 발전에 있어서 다양성의 절대적 중요성이다. 그런데 이 다양성은 오직 자유가 허용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자유가 제한받는 곳에서는 관습의 전횡이 극에 달하게 되고 이는 발전을 가로막는다. 밀은 흥미롭게도 중국의 역사를 사례로 든다. 중국은 한때 아주 운이 좋게도 훌륭한 관습을 갖고 있었고 이 때문에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관습은 결코 지속적인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없다. 근대 시기 중국의 정체와 쇠퇴는 관습이 더는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기에 빚어진 일이다.
반면 이러한 중국식과 대비되는 것이 유럽식 발전모델로서 다양성이 그 핵심이다. 유럽을 유럽답게 해주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으로 “개인이나 계급, 그리고 민족이 극단적으로 서로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개별성 속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생성된다. 바로 그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밀은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옹호하고 다양한 삶의 실험을 찬양한다. 우리는 각자가 자기 개성을 최고도로 발휘하려고 노력할 때 사회는 물론 인류 전체의 이익도 증진하게 된다. 통상 소극적 자유의 옹호론으로 읽히지만, 밀의 <자유론>의 통큰 계산법에도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
19. 0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