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섹스와 공포>,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등과 함께 주문한 책은 손종섭 선생이 엮은 <손끝에 남은 향기>(마음산책, 2007)이다. 문화일보의 북리뷰를 보고 무슨 책인가 하여 알라딘에서 확인해봤다. '한시 번역'의 달인이라 할 정민 교수조차도 이런 추천사를 남기고 있었다: "선생의 작업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나는 기다렸다가 제일 먼저 읽었다. 선생의 글을 펄떡이는 물고기 같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꽃이 한 송이씩 피어난다. 젊은이의 감수성도 그 앞에서는 그저 머쓱할밖에 도리가 없다. 이런 큰 어른이 가까이 계신 것이 내 큰 복이요, 우리 문화계의 자랑이다." 몇몇 번역시들은 이러한 상찬이 허사가 아님을 입증해준다. 내가 읽은 리뷰를 같이 옮겨둔다.

문화일보(07. 02. 09) 우리말로 옮긴 漢詩의 감칠맛

남녀 문학인 몇 사람이 술을 먹는 자리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 화제가 됐다. 각자가 자신의 미관(美觀)을 피력하는데, 소설가 김훈씨의 한마디가 압권이었다. 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성이 겨드랑이 아래의 흰 살결을 드러낼 때 눈이 부셔서 어쩔 줄을 몰라 하지. 김훈씨의 말에 좌중은 실소했으나, 그는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의견을 다시 펼쳤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익살을 전하는 독특한 화법의 소유자다.

조선시대 문신인 유영길(1538∼1601)도‘절구질하는 아가씨(春杵女)’의 겨드랑 밑 흰 살결에 매료돼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절굿공이 사뿐사뿐 드놓는 연약한 팔/약방아 찧던 월궁 솜씨 여기서도 그대로고!/깁적삼 들릴 때마다 드러나는 저 살결!’

유영길의 한시를 이렇게 우리말로 옮긴이는 올해 만 89세의 한학자 손종섭옹이다. 손옹은 시를 해설하며 이렇게 적었다. ‘감출수록 신비롭고 거룩해지는 반면, 드러낼수록 알량함에 시틋해지는 여체!’

이 책 ‘손끝에 남는 향기’는 손옹이 선인들의 한시(漢詩) 280수를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덧붙인 것이다. ‘사랑’‘이별’‘기다림’‘그리움’‘회고’‘무상’‘정한’‘해학’‘달관’ 등 18가지 주제로 시를 나눠 담았다. 표제시는 고려말 문신 이제현이 고려가사를 한역한 것을 손옹이 현대어로 옮겼다.‘수양버들 시냇가에 비단 빨래 하노라니/말 탄 선비님이 손잡으며 정을 주네./손끝에 남은 향기야 차마 어이 씻으리?’

손옹의 한시 번역과 해설은 우리말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문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선생의 글은 펄떡이는 물고기 같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꽃이 한 송이씩 피어난다”고 상찬했다. 손옹은 책 머리글에서 “(한시도) 본디는 정감 어린 고운 우리말이었건만, 부득이 한자를 빌려썼던 것”이라며 “고운 우리말로 말문만 열어주면, 굽이굽이 정에 겨운 사연들이, 실꾸리에서처럼 하염없이 풀려나온다”고 말했다.

손옹의 번역은 한시를 시조 가락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기존 번역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서화담과 황진이가 주고 받은 시처럼 양장시조로 번역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전통적인 3장시조로 옮겼다. 한시에 숨어있는 선인들의 정감을 되살리기에 적절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옛 시절에 한시를 즐겼던 문신들뿐만 아니라 아녀자, 천민, 기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들어있다는 것. 손옹은 “설움 받던 계층의, 설움에 겨운 목소리들을 더 많이 발굴해서 실었다”고 밝혔다.(장재선 기자)

07. 02. 10.

P.S. 책은 내주에나 받아보게 될 터이니 소개된 한시 한 수만 더 옮겨오면 이렇다.

버들개지 하나
- 노긍

어디선지 버들개지 하나 사뿐 떨어지기에
무심결에 손 내밀어 고이 접어들고서는
유심히 들여다보다 도로 던져버리네.


怪來楊柳花 輕薄墮當地
偶然拾得之 促視還復棄

「子夜曲」

 

 

 

 

시 번역에 있어서 역자 또한 시인이어야 함을 입증해주는 사례이겠다. 그간에 손종섭 선생이 낸 책들 가운데 <다시 옛 시정을 더듬어> 같은 책은 서점에서 자주 봤던 것이지만 그저 그런 번역이겠거니 해서 특별히 주목해보지는 않았었다. 우리 고전과 한시 번역에 뜻이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전범이 될 만한 스승이 있어서 부듯하겠다...

 

 

 

 

문득 생각나서 보태자면 작고하신 김달진 선생의 고전, 특히 선시 번역 또한 일가를 이룬 것이었다. <당시전서>와 <한산시> 등의 번역시집들을 나는 갖고 있었다(시골집 어디엔가 꽂혀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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