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에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1997)를 몇 페이지 들춰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와 타르코프스키'란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이후에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자료들을 나는 더 긁어모았고(그에 관한 논문이나 책을 쓰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핑계이다), 어제는 <순교일기>의 영역본 <시간 속의 시간(Time within time)>(1994)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 주문한 책을 얼마전에 대출해서 복사한 것이다.  

집에까지 들고 온 김에 몇 페이지만 다시 읽어보았다. 영역본은 국역본과 마찬가지로 지난 1989년에 나온 독어판 <순교일기(Martyrolog)>를 대본으로 한 것인데, 이 책의 러시아어본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짐작엔 아직 출간되지 않은 듯하다. 좀더 검색을 해보니 출간은 이미 기획돼 있고 원래는 작년말 정도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적어도 올해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독어본 일기는 1권(1970-1986), 2권(1981-1986) 두 권으로 돼 있는데, '편집자의 말'에 보면 "1권이 출간되고 난 뒤 그의 부인조차도 몰랐던 많은 양의 일기와 방대한 자료가 새롭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기적으론 1권과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2권이 다시 출간되었던 것. 아래가 그 2권이다.
 
 
짐작할 수 있지만 독어본 두 권은 71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본문 370쪽이 되지 않는 국역본은 당연히 발췌본이고 이에 대해서는 역자가 해명해 놓았었다. "이 일기를 모두 우리말로 옮겨 출판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그것은 너무 벅찬 일이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만을 골라서 책을 엮게 되었다. 일기의 선택기준은 타르코프스키의 인생관,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의 영화예술론, 작품의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의 예술이 소련의 이데올로기 및 영화당국, 관졔예술과 어떤 충돌을 빚어내고 그래서 어떻게 박해받았는가를 보여주는 것, 그가 즐겨 읽었던 작가, 예술가, 사상가는 누구이며, 가장 많은 감명을 받은 글은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주는 것 등을 중심으로 하여 글을 골랐다."(400쪽)
 
<봉인된 시간(Sculpting in Time)>과 마찬가지로 키티 헌터-블레어(Kitty Hunter-Blair)가 옮긴 영역본은 색인까지 포함해서 407쪽 분량이니까 국역본과 큰 차이는 나지 않으며 짐작에는 독어본의 제1권(만)을 번역한 듯하다. 부제가 '일기 1970-1986'라고만 붙어 있는 것도 그런 심증을 갖게 한다. 하지만 조금 읽어보니까 국역본에 누락된 대목들도 군데군데 포함하고 있다. 국역본보다는 조금 자세한 게 아닐까란 짐작을 해보게 된다. 겸사겸사 국역본에 몇 가지 교정사항(의문사항)이 있어서 적어둔다. 현재 품절되었다고 하니까 혹 재출간시(완역본이 나오면 더 좋겠고) 교정사항이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지난번에도 인용한 바 있지만, <순교일기>의 첫문장은 1970년 4월 30일 일기의 것으로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는 다시 한번 <도스토예프스키>를 영화화하는 작업에 관해 사샤 마사린과 이야기했다."이다. 여기에 나는 "역주에도 있지만, 마사린은 영화 <거울>의 시나리오 작업을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했었다"라고 덧붙였었는데, 영역본을 보니까 '사샤 마샤린'이 아니라 '사샤 미슈린(Sasha Mishurin)'이다. 사샤가 '알렉산드르'의 애칭이므로 공식 이름은 '알렉산드르 미슈린'이다. 국역본의 '등장인물해설'에는 또 '알렉세이 미샤린(Aleksei Mischarin)'이라고 표기돼 있다(374쪽). 이게 왜 이리 왔다갔다 하는 건지.
 
 
나타샤 시네씨오스가 쓴 작품해설 <거울>(2001)을 보니까 각본은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Alexander Misharin'이 맡은 것으로 기재돼 있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알렉산드르 미샤린'(사샤 미샤린)이라 해둔다('미샤린'이 '미슈린'으로도 불릴 수 있나?). 국역본의 '알렉세이 미슈린(1912-1982)'은 다른 러시아 영화감독의 이름이다.
 
'편집자의 말'에 보면 "등장인물의 표기는 독어판과 영어판을 대조해가면서 정확을 기하려 했으나 러시아어판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곳이 적지 않을 것이다."(403쪽)라고 했는데, 첫문장에서부터 그런 사례가 나오고 있는 것. 재판이 나온다면 <봉인된 시간>처럼 그냥 다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류들을 정정하여 보다 정확한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어지는 대목. 타르코프스키는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아닌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에 관한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적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성격, 그의 신, 그의 악령들, 그가 이룩한 일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톨야 솔로니친은 도스토예프스키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지적한 대로 '톨야 솔로니친'은 '톨랴 솔로니친'라고 표기하는 게 맞다. '톨랴'는 '아나톨리'의 애칭이며 아나톨리 솔로니친(1934-1982)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 배우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솔로니친을 도스토예프스키의 배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 아래 사진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솔로니친과 도스토예프스키. 타르코프스키는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배역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것.  

"이제 나는 우선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쓴 글을 모조리 읽어야만 하겠다. 그리고 그에 관해 쓴 모든 글들 그리고 러시아 종교철학자들인 솔로비요프, 베르쟈예프, 레온체프의 글들도 모두 읽어야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영화 속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 모든 것들의 총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25쪽)

여기서도 표기 하나. 레온체프는 영어로 'Leontiev'이며 러시아 철학자 콘스탄틴 레온티예프(1831-1891)를 가리킨다(러시아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는 바실리 레온티예프이다). 발음대로 하면 '레온찌예프'가 되지만, 관행에 따라 '레온티예프'라고 해둔다. 여기까지가 4월 30일의 일기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5월 10일자 일기. "1970년 4월 24일 우리는 므야스노예에 집 한 채를 구입했다"(26쪽)고 나오는데, '므야스노예(Myasnoye)'의 바른 표기는 '먀스노예'이고 타르코프스키 가족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타르코프스키의 아들 안드레이가 찍은 먀스노예의 사진들이며 영어본 폴라로이드 사진첩 <순간의 빛(Instant Light)>(2004)에 들어 있다.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분위기가 사진들에서도 묻어난다. 아래사진에 나오는 여인이 타르코프스키의 아내이자 안드레이의 어머니 라리사이다.  

아들 안드레이는 1970년 8월 15일 일기에 보면 "라리사가 8월 7일 6시 25분 아들을 낳았다. 안드류슈카(안드레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라는 구절에서 처음 이름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이름도 안드레이여서, 이 부자는 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유작 <희생>에서 자신의 영화를 아들 '안드류슈카에게 바친다'라고 나중에 적게 될 것이다. 

여하튼 그런 식으로 러시아 고유명사의 표기는 거의 매 페이지마다 문제가 된다. 가령 5월25일 일기에서는 "바스카코프 집에 갔었다."라고 시작하지만, 영역본을 보면 "바자노프 집에 갔었다"고 돼 있다. 둘다 일기에 등장하는 이름들이서 오타 문제도 아니다(러시아본이 빨리 출간됐으면 싶다!). 한 가지 덧붙이지면, 같은 날짜 일기에서 "점차 일이 진행되고 있다"로 시작되는 문단은 영역본에 6월 4일 일기로 돼 있다. 국역본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독자로서 '정독'하려고 하면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07.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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